[탁류세평]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영강 정책에 대한 소고
[탁류세평]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영강 정책에 대한 소고
  • 고대신문
  • 승인 2020.07.25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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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용 사범대 교수·교육학과

  필자는 2009년 미국 고등교육학회(Association for the Study of Higher Education)에서 고려대 영어강의(이하 영강) 정책을 주제로 쓴 ‘Englishmedium teaching in Korean higher education: policy debates and reality’란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이 논문에 대한 토론을 맡았던 William & Mary 대학의 Virginia McLaughlin 교수는 고려대의 영강 정책에 대해 “so weird!”란 말로 당혹감을 표출한 바 있다. 과목의 성격이나 교수, 학생의 준비도에 관계없이 20038월 이후로 임용된 모든 교수는 모든 과목을 영어로 가르치고, 학생은 졸업을 위해 영강을 들어야 한다는 획일적 정책이 자율과 합리성을 강조하는 미국인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주지하다시피 고려대에서는 20009모든 학과에서 최소 한 개의 영어강의를 개설할 것과 모든 학생들이 다섯 과목이상의 영어강의를 수강할 것을 졸업요건으로 의무화했다. 아울러 ‘20038월 이후 임용된 교원들은 모든 강의를 영어로 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이후 영강 자율학과 도입 등 일부 변화가 있긴 했지만 이것이 지난 20년간 고려대에서 시행되어 온 영강 정책을 뒷받침하는 기본적 원칙으로 기능해왔다. 교육정책을 전공하는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획일적인 영강 정책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초 국제화의 압력 속에서 영어의 역할은 나날이 높아져가고 있었고, 무엇보다 정부와 언론의 대학평가에서 영강의 중요성을 맹목적으로 강조하는 상황에서 대학본부의 입장에서는 강제적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영강 비율을 높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게다. 아울러 당시 범람하던 영강을 통해 전문적 지식과 함께 영어 실력을 동시에 늘릴 수 있다는 검증되지 않았지만 솔깃한 논리도 쉽게 거부할 수 없었던 달콤한 유혹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고려대의 영강 도입은 시행 규모와 방식 측면에서 많은 문제점이 있기는 했지만, 새롭게 대두된 혁신적 교수법이었던 영강의 효과에 대한 일종의 사회적 실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전혀 시행해 보지 않고 영강의 장단점과 효과성을 운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이러한 사회적 실험의 결과를 활용하는 대학본부의 태도와 접근방식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영강의 시행 여부는 무엇보다 영강이라는 새로운 교수법이 학생들의 성취와 발달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 라는 근본적 질문에 대한 답을 기준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고려대 맥락에서 나타나는 영강의 효과성에 대한 체계적인 자료 수집과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고려대에서는 이제까지 영강에 대한 형식적인 학생 만족도 조사 외에, 영강의 효과에 대해 공식적으로 수행된 체계적인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역량을 가진 교수가 어떤 과목을 어떤 학생을 대상으로 영강을 할 때 효과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없이, 영강을 도입한 2000년대 초나 20년 동안에 걸친 사회적 실험을 거친 현시점에서나 별다른 차이 없이 영어로 강의하면 전문적 지식과 함께 영어도 함께 늘겠거니 하는 막연한 기대만을 가지고 여전히 관성적으로 영어강의를 강제하고 있을 뿐이다.

  필자가 수행한 연구를 포함하여 영강의 효과성을 연구한 결과들은 서로 의견이 갈리지만, 한 가지 일관된 발견사항이 있다면 모든 상황에서 영강이 항상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과목의 성격, 교수나 학생의 준비도 등에 따라 영강의 효과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필자가 수행한 한 연구에서 면담했던 상당수의 학생들은 영어는 수업에서 지식을 배우기 위한 수단일 뿐이므로 이를 통해 영어실력을 늘리기에는 한계가 있다. 더욱이 교수나 학생의 영어실력이 제한적인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교수의 전달력이 부족해 강의내용을 충분히 전달받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학생들은 등록금을 내고도 마땅히 받아야 할 양질의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격렬히 비판하고 있었으며, 교수들도 교육자로서 본인이 생각하는 가장 적절한 교수법이 아니라 규정에 따라 영강을 강제받는다는 것이 매우 불합리하다는 지적을 하고 있었다.

  우리 고려대와는 달리 외국의 대학들에서는 교수에 따라 영강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영강을 시행하는 독립적인 학사 단위(예컨대 국제학부) 혹은 기관(예컨대 국제화 지향 대학)을 설립하고 여기서 영어 강좌를 집중적으로 제공하는 형태로 영강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국제화 대학으로 유명한 일본의 리츠메이칸 아시아 태평양 대학교, 우리나라 우송대학교의 솔브리지 경영대학 등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대학에는 당연히 외국인 교수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고, 국내 학생뿐만 아니라 외국인 학생들도 많이 재학한다. 다른 학사 단위에 재학 중인 국내 학생들도 필요에 따라 이러한 독립적 학사 단위에서 영강을 수강할 수 있다. 교수의 임용 시기에 따라 명확한 비전과 체계없이 영강을 제공하는 고려대와는 달리, 이런 대학들에서는 교육과정의 정합성이 높고, 학생의 필요에 맞추어 영강이 제공된다. 이에 따라 영어강의의 질적 수준과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은 것은 당연하다.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다가올 시대에는 AI를 통한 외국어 통번역 기술의 혁신적 발전이 예상된다. 어느 정도 수준의 의사소통과 번역은 AI 기반 프로그램으로 가능해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는 단순한 어학 능력보다는 전문 지식의 함양과 이를 상황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창의력이 훨씬 중요해진다. 20년 전 우리가 도입했던 영어강의는 당시 상황에서는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지난 20년의 사회적 실험 결과를 미루어볼 때 현재 고려대의 영강 정책은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영강은 영어와 전문 지식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어떤 방식의 영강 시행방식이 우리 학생들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지 보다 진지한 고민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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