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청년 실업률은 21년 만의 최대치인 10.7%를 기록했다. 매번 역대 최고를 기록하는 실업률 증가 추세 속에서 20대 취준생들의 피로감은 극에 달했다. 지나가는 청춘을 희생하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는 것밖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 막연한 희망이 오늘의 그들을 움직인다.

  622, 인천국제공항공사는 보안검색요원 1902명을 청원 경찰의 형태로 직고용하겠다고 발표했다. 512일 이전 입사자는 간단한 전환절차를 통해 본사에 직 고용되고 512일 이후 입사자는 경쟁 채용을 통해 정규직 전환이 결정된다. 정규직화를 통해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성을 높이겠다는 정부 정책에 따른 결과지만, 청년들은 정책이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분노했다.

  14인국공 사태에 대한 취준생들의 생각을 듣기 위해 노량진을 찾았다. 점심시간이 되자 노량진 컵밥 거리와 곳곳의 골목은 쏟아져 나온 공시생들로 붐볐다. 행정직 7급 공무원을 준비하는 이민지(·25) 씨는 암기 노트를 옆구리에 낀 채 점심을 먹으러 길거리로 나왔다. “몇 년 동안 몇백만 원씩 투자하며 공부하고 있는데 빨리 합격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에요. 그래서인지 인국공 생각하면 더 허탈하죠. 그냥 로또 맞은 사람들보는 느낌이에요.”

  로또 맞은 사람들. 취준생이 인국공 정규직 전환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정당한 노력으로 거머쥔 성공이 아니라 생각한다. 복권처럼 순전한 행운이었단 거다. 2년간의 노력 끝에 공기업 입사에 성공한 A씨는 인국공 정규직 전환자가 본인의 노력과 비할 바 없게도, 너무 쉽게 정규직의 문턱을 넘었다고 주장했다. “저도 인국공 지원했었는데, 작년 하반기에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어요. 직무 경험을 쌓는다고 지방까지 내려가 인턴도 했어요.”

  서류통과를 위한 토익, 자격증, 인턴 경험은 기본. 돈 들여 시험, 면접 위한 학원도 다녀야 했다. 취준생들이 공기업 취업에 이르기까지 준비하는 문턱들이다.

  “정규직화 과정에서 시험이나 경쟁 절차를 사실상 거치지 않았잖아요.” 이민지 씨가 말했다. 시험, 경쟁과 같은 절차 아래 진행된 채용이 아니기에, 이들은 인국공 채용 과정이 공정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공기업 지원 자격기준이 대체로 높고, 그동안 엄격한 채용 과정을 거쳐왔다는 점을 청년들은 분노의 근거로 삼는다. 배규한(백석대 사회복지학부) 석좌교수는 공기업 정규직은 한번 채용되면 대부분 정년이 보장되기에 지원 자격 기준이 높다며 청년의 분노를 이유 있는 항변이라 설명했다.

  청년 분노와 결 다른 현실

  하지만, 청년들이 말하는 사무직 정규직과 이번에 정규직이 된 보안검색요원의 문법은 다르다. 인천국제공항의 상당수 비정규직 직군은 안전, 보안을 다루는 현장직이다. ‘보안검색과 같은 경험이 중요한 서비스직 분야에서 시험, 절차가 중요한 평가 요소가 아닌 것은 사실이다.

  정부는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 발표에서 국민의 생명 및 안전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업무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안전 관련 업무는 업무 경험과 숙련도가 업무 수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라 판단한 것이다.

  정이환(서울과기대 기초교육학부) 교수는 취준생이 전환 절차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일반적인 공채와 현 상황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 지적했다.

  실제 정규직으로 전환된 이들의 처우도, 공기업 정규직의 일반적인 처우와는 다르다. 임금은 기존 정규직의 절반 수준이 안된다. 윤인진(문과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에 정규직화된 이들은 사실상 무기계약직에 가깝고 또 전환 트랙 자체가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다른 직군, 다른 상황임에도, 하나의 프레임으로 묶여 청년들의 분노를 산 것엔 언론의 왜곡 보도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인진 교수는 언론에서 정규직화 과정을 과장되게 일반화한 측면이 취준생에게 편파적으로 전달이 되니까 분노를 유발한 것이라 말했다.

  두 노력의 무게를 달리할 수 있나

  “언론에서 과장해서 보도하는 측면도 있겠지만, 우리가 분노하는 이유는 형평성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7급 행정직을 준비하는 이지은(·25) 씨는 인국공 사태로 우리 사회의 형평성이 무너졌다 말했다. 형평은 평등과 다르다. 동등한 것은 동등하게, 동등하지 않은 것은 동등하지 않게 대우한다는 뜻이다. 능력과 성취의 정도가 크면 보상도 그만큼 커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국공 보안검색노동조합 김대희 공동위원장은 자신들의 경험은 동등한 노력이 아니냐 되물었다. “공부, 시험만이일자리를 얻기 위한 노력으로 인정받는 현실이 가슴 아픕니다. 우리가 일하면서 들이는 노력과 땀, 그간의 경험들도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해요.”

  왜 청년들은 지적 노동과 생산 노동의 땀의 무게를 다르게 평가할까. 전문가들은 뿌리 깊이 내린 사회구조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우리 사회가 직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여부에 따른 일종의 신분제 사회의 틀을 구축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윤인진 교수는 대기업이나 사무직, 행정직만이 귀한 것이 아니고 청소부, 기계 제작자, 상인 등도 똑같은 가치가 있는데, 사회적으로 받는 대우가 낮아 상대적으로 천시받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규직, 비정규직 간 실질적인 임금과 대우 차이가 있는 것도 차별적 인식의 고착화에 영향을 끼쳤다. 윤인진 교수는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의 임금 격차만 없애도 상당한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했다. 근본적으로 공기업으로의 쏠림을 막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선 동일노동동일임금의 원칙이 관철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정이환 교수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통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를 줄이고 공기업, 대기업 등의 일자리가 성역화된 현 상황을 타개해야 청년 취업난도 비교적 해소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청년들을 둘러싼 사회 자체가 불평등, 불공정 아래 유지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당장의 미래가 불안한 청년들은 앞길만 내달릴 뿐이다. “허무하고 허탈하지만, 우리 같은 취준생들은 분노만 할 뿐 오늘도 들어가서 공부하는 것밖에 답이 없어요.” 공기업 준비생 이민호(·27) 씨가 말했다.

신용하 기자 dragon@

일러스트조은결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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