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급생이라도 실력 차 커
교수가 수준별 분반 나누기도
교수법 공유 등 함께 고민해야
올해 서어서문학과에 입학한 새내기 A씨는 여름방학 중 한 달간 스페인어 학원에 다녔다. 대학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서다. 그는 “1학기에 외고 출신이나 재외국민 친구들과의 수준 차이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며 “앞으로 수준차를 극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학기 초만 되면 본교 커뮤니티에는 이른바 ‘양민학살’을 당할까 두렵다는 어문계열 신입생들의 하소연이 올라온다. 실제로 어문계열 신입생들은 학과 내 실력 격차를 체감하고 있었다.
전공어 모르는데, 수업진행이 전공어
어문계열 신입생 중에는 원어민 수준의 능통자부터 알파벳도 모르는 상태로 입학하는 일명 ‘노베이스’까지 있다. 같은 신입생이더라도 수준 격차가 크다. 대학에서 처음 전공어를 접하는 학생들은 수업 적응부터 난항을 겪기도 한다. 김가은(문과대 독문19) 씨는 “입학 후 처음 듣는 ‘교양독일어초급’과 ‘전공독일어’는 외국어 강의라 새로운 언어를 그 언어로 배우다 보니 많은 학생이 버거워했다”고 말했다.
대학 입학 전 3년간 전공어를 배웠던 최제윤(문과대 서문20) 씨 역시 “이미 스페인어를 배운 학생들은 ‘교양스페인어중급’과 ‘전공스페인어’을 수강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춰 수강생 간에 격차가 생긴다”며 “교양스페인어중급은 한국어 설명도 따로 없어 ‘노베이스’ 학생들이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다.
‘교양독일어중급’을 가르치는 김인순(본교·교양교육원) 초빙교수도 독어독문학과 학생 간 실력 차가 크다는 점에 동의했다. 그는 “입학생 중 3분의 2 정도는 알파벳을 모르는 상태로 들어오고, 미리 독일어를 배우고 들어온 학생 내에서도 실력 차가 크다”고 말했다.
일부 학생들은 수업을 따라잡기 위해 방학 때 사교육을 받는다. 김가은 씨는 “방학 때의 예습 여부가 수업에 영향을 미치는 경험을 했다”며 “다른 학생들도 외국어 학원을 다닌다”고 말했다. 박민영(문과대 서문19) 씨는 “입학 후 처음 듣는 수업에 외국인 교수님이 오셔서 초반에는 이해를 거의 못 했다”며 “학교에서 제공하는 강의 외에 인터넷 강의나 학원을 통해 따로 공부했다”고 밝혔다.
분반·개인지도 등 배려 필요해
교수자가 따로 학생 간 실력 차를 고려하지 않는 경우, 학생들은 실력 차에서 나오는 어려움을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 현재 어문계열 내의 실력 격차 문제는 순전히 교수자 개개인의 재량에 달렸다. 중어중문학과 일부 교수진은 사전 설문조사를 통해 수준별로 그룹을 나눠 시험을 보도록 한다. 문과대 중어중문학과에 재학 중인 B씨는 “a 그룹은 외고를 나왔거나 중국에서 산 경험이 있는 학생, b 그룹은 어느 정도 배운 적이 있는 학생, c 그룹은 완전 ‘노베이스’로 나눠 시험을 친다”고 했다. 함다인(문과대 노문17) 씨에 따르면, 노어노문학과 내에서는 암묵적으로 구사자(러시아어 능통자)와 비구사자를 나눠서 수업을 진행한다.
김인순 교수는 1~2주간 학생들의 수준을 지켜보고 수준 차가 나는 학생들끼리 짝을 만들어 주고 수업을 진행한다. 그는 “독일어를 어려워하는 학생도 도움을 많이 받고 원래 잘하던 학생도 가르치면서 더 많이 배우게 된다”며 “처음에 수업을 힘들어하던 학생들도 따라가다 보면 미리 독일어를 배우고 들어온 학생과 성적 격차가 그리 크지 않다”고 했다.
유재화(본교·불어불문학) 강사는 수업에서 공통 과제를 주고 학생 개개인의 수준에 맞게 피드백을 제공한다. 또, 학생이 전공어에 두려움과 소외감을 갖지 않도록 하는 배려를 강조했다. 그는 “전공어의 실력 격차 문제는 공론화되지 않아서 그렇지 모두가 아는 사실”이라며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교수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터놓고 서로의 노하우를 공유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글┃이정우 기자 vanilla@
사진┃김민영 기자 drati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