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시선집

 

  시라는 장르는 낯익은 모습을 낯설게 바라보면서 새로운 감각을 전달해 줄 때 비로소 쾌감이 느껴진다. 그런데 낯익은 모습을 그냥 풀어내면서도 그 안에서 깊은 울림을 주는 시인이 있다. 바로 정호승 시인이다. 시 읽기를 어색해하는 사람이라면, 삶에 치여 치유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삶을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정호승 시인의 시선집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산산조각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이 책에서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시는 산산조각이라는 시다. 긴 설명보다는 한번 소개하는 것이 더 와 닿으리라 생각하기에 여기 실어본다.

  부서지면 모든 것이 헛되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보기 좋게 깨주는 시다. 평상시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하면서 살고 있던 삶 자체를 뒤돌아보게 해주는 역할도 해주었고,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 도전을 두려워하고 있을 때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이렇듯 읽을 때마다 다른 의미로 다가와서 힘을 주는 시였기 때문에 추천하고 싶었다.

  ‘어떤 시가 좋은 시일까?’라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개개인 모두가 특별한 존재고 고유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겪는 경험도 각양각색이다. 그에 따라 좋아하고 싫어하는 분야가 나뉠 것이며 을 좋아하는 독자들 사이에서도 시가 해석되는 관점은 서로 다를 것이다. 사람들에게 좋다고 평가받은 시, 유명한 사람이 쓴 시, 교과서에 실린 시 등 많이 읽히는 시는 있을 수 있다. 이 시들이 작품성이 뛰어나고 문학적 가치가 높더라도 내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한낱 의미가 결여된 단어들의 뭉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시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라고 질문을 바꿔보고 싶다. 이 시선집을 읽고 어렴풋하게 답변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좋은 시가 되기 위해서는 독자가 그 시를 읽고 그들만의 의미를 가지도록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 독자를 움직이게 만드는 시가 좋은 시이며, 정호승 시인의 시에서는 독자에게 생각을 던져주는 지점들이 많다고 여겨진다. 그의 시 속에서 사람의 새로운 시선과 삶의 모습, 그리고 사랑의 묵직한 감동을 느껴보는 것이 어떨까.

 
맹주형(생명대 생명과학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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