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파울로 코엘료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죽음을 앞두고서야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 맛있는 한 끼 식사를 음미할 수 있다는 사실과 상쾌한 공기가 폐부를 부풀리고 있다는 데서 오는 경이로움 같은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 앞서 라는 존재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다가온다. 나는 지금껏 잘 살아왔나? 나의 인생에는 아무런 후회도 남지 않았나? 나는 어떤 사람이지?

  ‘당장 내일 죽는다면?’. 고전적이지만 핵심을 꿰뚫고 있는 질문이다. 베로니카는 어느 날 이 질문을 떠올리며 세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자신의 세상은 언제까지고 변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당장 내일, 아니 오늘 죽는다고 해도 후회가 없으리라는 베로니카의 판단은 결국 자신의 세상이 지루하고 무의미하게 멈추어있다는 데서 느껴지는 무료함에서 나오며, 이는 그녀를 자살시도로까지 이끈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인지 죽지 못하고 깨어난 베로니카는 시한부 판정을 받는다. 자살을 또 시도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정신 병동에서 생활하게 된 그녀는 죽음의 문턱 앞에서 자신에게 남은 날들을 하루하루 세어보면서야 비로소 을 실감한다.

모든 것이 용인되었다. 어쨌거나 그들은 정신병자였으니까.”

  정신 병동이라는 특수한 공간은 베로니카에게 그 어떤 미친 짓이라도 망설임 없이 행할 수 있도록 자유를 부여한다. 그녀는 병동 안의 사람들에게서 지극히 정상적인 면모를 발견하며, 마침내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내재된 광기가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지금껏 그녀 자신이 완전히 무언가에 미친채 살지 못했다는 사실에 통탄한다. 그녀가 자살을 기도하기 이전의 삶이 지루하다고 느꼈던 것은, 그만 자신의 삶이 영원하다고 믿는 보편적인 실수를 저지름으로써 진짜 원했던 일을 항상 나중으로 미뤘기 때문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사춘기 시절, 그녀는 뭔가를 선택하기에는 아직 때가 이르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었을 때는, 뭔가를 바꾸기에는 이제 너무 늦었다고 체념했다. 지금까지 무엇을 하느라 내 모든 에너지를 소비한 거지? 그것도 내 삶에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게 하느라고.”

  혹시 나도 세상이 나를 떠미는 대로만 살고 있지는 않았는지 모두가 돌아보았으면 좋겠다. 파울로 코엘료는 베로니카에게 열흘 남짓이라는 짧은 시간만을 남겨준 뒤, 코앞에 닥친 죽음 앞에서 네 삶은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묻는다. 베로니카는 그때서야 제 존재를 흐리던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닌, 꿈꾸는 대로 살려고 용기를 내지 않았던 그녀 자신의 무기력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비로소 세상과 분리되어 오롯이 존재하는 자기 자신을 선명하게 느낀다. 우리 모두에게 언젠가 죽음은 닥쳐온다. 당장 내일 죽는다면, 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지금 바로 실행해보는 것은 어떨까.

김나영(미디어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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