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유기 경희대 교수 사학과

 

  1016일 파리 외곽 소도시 거리에서 이슬람 근본주의자에게 참수당한 중학교 역사지리 교사 사뮈엘 파티를 추모하는 열기가 프랑스에서 뜨겁다. 사뮈엘은 수업시간에 마호메트를 희화한 만평을 보여주며 표현의 자유를 가르쳤고, 미리 이슬람 신자로서 불편한 학생은 나가있어도 된다고 밝혔다. 수업내용은 방과후 자연스럽게 학생의 부모에게 알려졌고, 이후 SNS에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위협이 발생했고 결국 사뮈엘이 희생당했다. 29일에는 니스의 성당에서 기도 중이던 노인이 참수되는 등 3명이 이슬람 근본주의자의 테러로 희생되었다.

  프랑스인들은 시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무엇보다 중시하고, 정치와 결합되는 종교에 비판적이며, 공교육이 세속성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믿는다. 계몽사상가 볼테르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이의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싸우겠다며 관용과 표현의 자유를 강조했다. 보수적 정치세력과 결탁한 가톨릭 교권주의와 싸우며 민주공화국을 건설해갔던 프랑스인들은 세속적 공교육을 공화국의 민주시민을 기르는 요람으로 중시한다. 마크롱 대통령은 21지성의 전당소르본 대학에서 열린 정부 주최의 사뮈엘 추도식에서 자유와 이성을 위한 싸움을 계속할 것이라며 표현의 자유와 세속적 공교육의 중요성을 환기시켰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언명은 신이 나의 존재를 증명한다는 중세적 믿음을 극복한 합리적 근대인의 상징들 중 하나이다. 생각하는 바를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의 보장은 내적·외적 억압에서 벗어나 개인이 주체적 자아임을 확인하는 전제이다. 사뮈엘이 보여준 만평은 2015년 사무실 총격 테러로 12명이 사망했던 시사풍자만평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에 실린 것인데, 이 주간지는 마호메트뿐 아니라 교황, 각국의 정치지도자들 모두를 풍자와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다.

  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필수적 기본권임을 부정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테러 이면에는 다문화사회 공존의 기술에 관한 복잡하게 뒤엉킨 매듭의 실타래가 존재한다. 이슬람 이민자 문화와 프랑스 사회의 가치체계가 크고 작은 마찰을 일으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여학생의 히잡 착용을 금지했던 교육 당국은 이를 종교적 상징으로 인식해 십자가, 유대인 상징물 등 모든 종교적 상징물 착용을 금지하는 프랑스 공교육의 세속성 원칙을 무슬림이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히잡을 복식문화의 일부로 보는 이들은 다문화를 존중하고 개인의 자율성을 보장하라고 맞선다. 사실 이런 갈등은 전후 호황기에 이민자를 대거 수용하던 시기에는 발생하지 않았다. 경제가 위기에 빠지고 점차 세를 부려간 극우정파가 이민자들이 사회보장비용을 축내고 고유한 문화와 가치를 파괴한다고 비판하면서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문화갈등이 표출되었다. , 다문화 갈등에는 사회경제적 문제가 뒤엉켜있다.

  다양한 피부색과 상이한 출신 배경의 선수들로 구성된 국가대표 축구팀이 1998년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며 프랑스는 잠시 사회통합의 효과를 과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5년 발생한 파리교외의 이민자 청소년 폭동은 이민자에 대한 차별과 사회적 배제의 현실을 드러냈다. 이후 국가 정체성, 다문화, 사회적 차별과 배제 극복에 관한 많은 논쟁이 전개되고 다양한 정책들이 펼쳐지고 있지만, 사회적 대화로 갈등을 조정하고 완화하는 것 외에 다른 묘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파리 외곽 소도시와 니스 테러를 자행한 이들은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이다. 테러는 규탄을 받아야 하고 결단코 어떠한 갈등에 대해서도 답이 아니다. 하지만 이민자 청소년들을 종교적 맹신과 테러로 이르게 한 것이 무언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다문화 사회에서 공존과 번영을 위해서는 구성원들 간의 사회경제적 차별, 문화와 가치관의 차이,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갈등 등 여러 양상이 뒤엉킨 매듭의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가는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라도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시민적 덕성을 존중하는 모든 이들의 표현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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