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알바’여도 스트레스 받아

학교 이해하는 계기되기도

작은 감사에 마음 ‘사르르’

 

  제시간에 가면 명랑하게, 조금 늦은 날은 의기소침하게. 먼저 오신 직원들께 인사를 드리며 일과를 시작한다. 컴퓨터 전원을 누르기 전, 먼저 고소한 커피 한잔. 적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블루투스 스피커 전원을 켠다. 이제야 일할 맛이 난다. 장기화된 코로나19의 여파로 캠퍼스는 휑하지만, 그럼에도 맡은바 성실히 일하며 학교 곳곳의 빈자리를 메워 주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근로장학생이다. 교직원과 학생, 그 중간 어디쯤 있는 근장 13명의 하루를 담아봤다.

 

  근장은 꿀알바?

  업무가 생각보다 빨리 끝났네. 슬쩍 네이버 웹툰을 연다. 다른 알바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같이 근무하는 교직원분들께서 근무 중에 딴짓하는 거에 전혀 눈치를 안 주세요.” 여타의 알바들은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시작해 가()가 빠진 결말을 맺지만, 근장은 다르다. 과학도서관 단행본실에서 사서 업무를 담당하는 김승엽(공과대 전기전자19) 씨는 우리나라에 이보

미디어학부 행정실에서 업무를 보고있는 권태준씨

 

다 꿀 떨어지는 알바는 없다며 격찬했다. “저희 과학도서관 단행본실은 정말로 가족 같아요. 함께 일하는 4명이 동고동락하며 아주 돈독하게 일하고 있답니다.”

 

  코로나19로 어려워진 가게 사정 때문에 강제로 잘릴 일도 없다.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카페 알바나 식당 알바는 합격이 취소되거나 업무 시간이 강제 조정되기도 한단다. “대학생 신분으로 교외에서 이 정도 근무강도에 최저시급을 받는 직종은 찾기 힘들어요.” 미디어학부 행정실에서 일하는 권태준(공과대 전기전자16) 씨는 맡은 일에 아주 만족 중이다.

  “업무가 별로 없어서 가끔은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많아요.” 남는 시간이 많아 지루할 것으로 생각한다면 크나큰 오해다. 개인 시간은 자기계발을 위해 사용한다. 서류 보조와 휴게실 물품 관리를 맡고있는 문과대 A씨는 빠르게 업무 처리를 하고 남는 시간에는 습작을 하거나 토익공부를 하곤 한다고 말했다.

이세빈 씨는 중앙광장 지하에서 학생들의 발열 체크를 담당한다.

 

  ‘꿀알바라 소문났지만, 매번 반복되는 업무가 따분한 건 어쩔 수 없다. 중앙광장 지하에서 발열 체크를 하는 이세빈(문과대 한문19) 씨는 “7시간 내내 같은 곳에 앉아 있다 보니 답답하다고 전했다. 학생이라 무시받기도 한다. 법학전문대학원 원장실에서 업무 보조를 했던 안유림(문과대 서문18) 씨는 법조계 분들을 대하면서 가끔 학생이라고 낮잡아 보시는 분들이 있어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다수 근장이 꿀알바라는 건 반박하기 어려운 팩트.

 

  근장이 되고 비로소 보이는 것들

  일반 학생일 때는 몰랐다. 학교가 이렇게 바쁘게 돌아갔나. 세종창업교육센터에서 일하는 조장현(문스대 국제스포츠16) 씨는 일반 학생일 때는 학교 직원들의 민원 대응이 엄청 느리다고만 생각했다근장으로 일하면서 직원들의 서류정리가 끝이 없다는 것을 보고 이해가 갔다고 말했다.

  민원이 들어와도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구나. 기자재 관련 업무를 맡은 B씨는 근로장학생이 되고 학교행정 과정을 가까이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긴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승인 절차가 워낙 복잡해 각 부서 직원분들이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제가 별로 없었음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학교 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일해주시는 분들에게 무관심했던 과거를 반성하기도 했다. A씨는 직원분들이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일해주시기 때문에 학교가 유지된다는 걸 깨달았다모든 구성원에게 감사를 느꼈다고 말했다.

 

  은근한 미소를 건네며

  하나과학관 보과대 행정실에서 근무하는 소윤(정경대 경제18) 씨는 강의실을 찾지 못하는 학생들을 보고 결심했다. 내 힘으로 이들의 헛걸음을 멈추리라. 그래서 하나과학관의 구조를 설명하는 글과 그림을 에브리타임에 게시했다. ‘핫게에 올랐다. 소윤 씨는 나 역시 길을 헤맨 적이 있어 다른 학생들에게 지도가 필요할 것이라 생각했다생각보다 게시글을 스크랩하는 분들이 많아서 놀랐고 도움이 된 것 같아 좋았다고 전했다.

 

중앙도서관의 데스크를 책임지는 김지윤 씨는 이용자들이 감사인사를 건넬 때 뿌듯함을 느낀다.

 

  근장은 학생 가장 가까이에서 도움을 주는 존재다. 부족하지만 더듬더듬 학생들에게 다가간다. “가끔 외국인 학생을 응대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부족한 실력이지만 영어로 도움을 드렸던 것이 특별한 경험이 됐어요.” 중앙도서관 자료실에서 데스크 업무를 담당하는 김지윤(사범대 지교17) 씨가 말했다.

  “피곤해도 친절하게 응대하려고 해요.” 창업지원단 업무 보조로 일하는 문과대 C씨는 조금 황당한 문의나 요구가 올 때 당황스럽지만 일반 학생이었을 때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나도 그랬으리라. “최대한 상대방이 무안하지 않게끔 응대하고,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가능한 한 도와주고자 하는 편이에요.(웃음)”

 

  제발 이것만은

  당연하지만 참 지켜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미시오에 당기고, ‘당기시오에 미는 민족이 아니던가. 무시해도 티는 안 나지만, 학교 곳곳 약소한 소망을 내비치는 근장생도 있다. 박상록(경영대 경영16) 씨는 백주년기념관 1층 문지기로서 학생에게 호소한다. “제발 학생증을 타대생에게 빌려주지 말아주세요.” 정경대 행정실에서 대관업무를 담당하는 김시은(문과대 노문18) 씨도 정부지침 상 업무와 관련되지 않은 학생 차원의 대관은 불가능하다대관을 끝까지 요구할 때 입장이 난처해지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직장 생활을 미리 경험한 느낌이에요.” 업무 자체는 어렵지 않다지만, 학생 신분으로 교직원이 짊어지는 부담감과 책임감을 몸소 느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학생의 입장에서 학교를, 학교의 입장에서 학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근장생 서현일(사범대 국교18) 씨는 인사 한 번의 소중함을 깨우쳤다. “마스크 위로 눈웃음 한번. 각자 위치에서 묵묵히 일하는 근장에게는 더없는 힘이 됩니다!"

 

성수민·송정현 기자 press@

사진제공김지윤·권태준·이세빈씨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