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 평화시장에서 한 젊은이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이를 본 시민들은 사회 속 소외계층의 열악한 상황을 인식하게 되었고, 각성하게 되었다. 전태일 열사의 타인을 위한 숭고한 불꽃은 사회 이면에 밀린 사람들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었고, 사회 변화의 도화선이 된 것이다. 그의 사후, 시민들과 노동 계층 노동자들은 그들의 권리를 자주적으로 주장하고 보호하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연간 노동시간이 1000시간 단축되었다.

  그러나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와 태안화력발전소 사고, 택배 상하차 사망 사건 등을 보면 여전히 수많은 노동자가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안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착취당한다. 또 요즘 유행하는 열정페이같은 말이나 비정규직 문제 등은 전태일 열사의 외침을 무색하게 한다. 이런 현실에도 일부 악독한 기업들은 경제난과 취업난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을 악의로 착취한다.

  결국 전례 없는 취업난을 이용해 일부 기업은 불법적으로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노동자들은 어찌할 도리 없이 사각지대 속에서 일방적인 폭행을 당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쩌면 많은 노동자는 마음 한 곳에서 제2의 전태일을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바라는 오늘날의 전태일은 누구인가? 현대사회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고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고 함께 행동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있지만, 결국에는 서로가 서로의 유일한 전태일이라고 생각한다. 전태일 열사가 대통령에게 보내는 탄원서에 자신보다는 더욱 소외되어 있던 여공들의 삶을 도와달라고 호소한 것처럼, 현대에 사각지대에 있는 소외계층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우리다.

  그렇다면 50년 전의 청년이 꿈꾸던 그날은, 단순히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세상이 아닌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주는 세상이 아니었을까. 그가 진정으로 추구했던 사회는, 구성원 모두가 부당함에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사회가 아니었을까.

  개인주의 시대가 만연한 현대사회에서, 전태일이 진정으로 지키고자 했던 가치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조영욱(사범대 영교19)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