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가을, 답사를 위해 찾은 동대문의 평화시장을 찾은 적이 있다. 청계천에 이르러 숨돌릴 겸 멈춰선 곳엔 전태일이 분신자살한 장소임을 알리는 낡은 동판이 있었다. 누군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그저 서울시의 과거를 기념하는 안내판 정도로 생각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어쩌면 동판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전태일의 생애는 지나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전태일 열사는 50년 전, 10대 후반의 나이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고 넉넉지 못한 형편임에도 평화시장에서 일하며 자신보다 약자인 여공들을 도우며 노동운동에 눈을 떴다. 그러던 중 노동자의 인권 보호를 위한 근로기준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를 도와줄 지식인이 없었던 터라 어렵게 근로기준법을 이해하게 됐고, 이를 지키지 않는 현실에 부당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렇게 부당한 현실에 저항해보지만, 주변의 냉소와 언론의 기만, 노동자를 보호해야 할 노동청의 묵살, 정부의 무관심에 좌절한 그는 결국 근로기준법과 함께 불길에 휩싸였고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생을 다했다.

  그의 죽음으로 대한민국의 노동인권은 분명 개선되었다. 하지만 어린 여공들과 같이 착취당하고 억압당하는 근로자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해외에서 취업을 목적으로 일하러 온 이주 노동자들 중 일부가 이러한 열악한 노동환경에 처해있다. 한국인이 기피하는 3D 업종이나 산재 고가 많이 일어나는 노동환경에서 노동을 제공하며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 불법체류를 조장하는 일부 고용주들이나 불법체류를 목적으로 한 이주 노동자들은 본질적으로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이처럼 법의 보호를 받기 어려운 것은 이주 노동자뿐만이 아니다. 열정페이를 강요받는 사회초년생들, 기업의 내부고발자들, 경비원 갑질 사건 등의 직장 내 괴롭힘 사례들처럼 우리와 그다지 멀지 않은 일이다.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라는 시구는 정치적 무관심의 위험성을 일깨워 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전태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부당한 현실을 바꾸는 것이 그저 외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 그저 남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는 점에서 많은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철(사범대 지교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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