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심화에 ‘편취’ 발생하기도  

지나친 용처 규제, 연구에 방해

“학문을 시장경제에만 맡길 수 없어”

 

  지난달 13일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권인숙 의원은 본교 전 총장과 산학협력단장 등 교수 5명이 2007년부터 10년간 학생 연구원 인건비를 연구원이나 교수 명의 공동관리 계좌로 빼돌리는 수법으로 16억여원을 편취했다고 공개했다. 지난 5월 이들 중 4명에게 500만 원에서 1500만 원 사이의 벌금형을 받았고, 8억여 원을 편취한 1명은 지난 93000만 원의 벌금형이 선고됐다. 연구비가 용처에 따라 사용되지 않는 연구비 부정 집행 사례들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연구비 부정 집행 문제를 해결하고자 용처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구계획서에 용처를 미리 보고하지 않으면 연구에 필요한 물품도 구매할 수 없을 정도로 규제가 강화되면서 오히려 연구자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강태경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정책위원장은 편취 문제가 발생한 품목 중심으로 제재하는 방식은 연구에 지장을 주고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국내 연구중심대학에 재직 중인 A교수는 미리 계획서에 기재하지 않아 연구에 필요한 방진복을 연구비로 구입할 수 없어 곤란했다연구비로 사용할 수 없는 비용은 교수에게 지급되는 연구수당으로 충당한다고 전했다.

  용처에 대한 규제는 강화됐지만, 정작 학교 차원의 징계는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문제 제기도 있다. 서유리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장은 교수님들의 비위 행위를 억제하기에는 처벌 강도가 약하다학교 차원에서 교원에게 현재보다 더 강력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전했다.

  교내 징계 절차 역시 불투명하다. 현재 본교는 비공개로 교원 징계위원회를 구성하고 징계 절차가 진행된다. 본교 보과대 소속 B교수는 연구비 부정 집행 예방을 위해서는 교수들에 대한 학교의 징계가 중요하다현재 교수끼리도 징계내용을 정확히 알 수 없다고 전했다. 서유리 원총 회장은 공정성을 명목으로 징계 절차가 공개되지 않데, 이는 오히려 징계의 공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연구비 분배 시스템 재고 필요

  연구비 부정 집행 문제를 두고, 연구자들은 교수 개인의 도덕성 문제와 함께 불안정한 연구비 수급 구조를 지적한다. 불안정한 지원금 수급으로 연구비가 부족해지면, 인건비 체불과 편취를 감수하며 연구비를 충당하려는 교수가 생긴다는 것이다. 강태경위원장은 교수 개인의 책임에서만 해결책을 찾을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시스템상의 문제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연구비 부족 문제는 연구비 총량이 부족하기 때문은 아니다. 2018년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펴낸 기초연구사업 확대에 따른 대학 R&D 정책 방향보고서에 따르면, 정부와 민간이 지원하는 연구비는 모든 석·박사과정 학생들에게 최소 인건비를 지급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들 모두에게 인건비를 지급(2018년 하한선 기준)하기 위한 총액은 12231억 원이고 대학 연구비에서 인건비의 비중은 평균 27.8%, 인건비를 충당하기 위한 연구비는 약 44000억 원으로 추산된다. 2018년 기준, 대학 R&D 투자금액은 정부와 민간, 지자체 연구비를 모두 포함할 경우 필요 연구비를 약 5000억 원 이상 초과한다.

  그런데도 연구비가 부족한 연구실이 생기는 이유는 연구비에 비해 박사 학위자 수의 증가 폭이 더욱 높아서다. 우리나라는 교원 1인당 평균 0.17명의 박사를 배출한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다. 연구비 지원 구조가 유사한 미국과 비교하면 2배 이상에 달한다. B교수는 우리나라 대학원 진학자가 많은 편이라며 호주의 경우는 국가가 인건비를 부담해주는 학생만 대학원에 진학한다고 했다.

  상위 대학에 연구비가 편중되는 문제도 크다. STEPI가 발간한 ‘2019년도 전국대학 대학연구활동실태조사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연구비 규모 상위 20개 대학의 연구비가 전체의 62.9%를 점유하고 있다. 연구비를 지니계수로 산출했을 때도 불평등 정도는 분명하다. 2018STEPI가 전임교원 수의 누적비율 대비 1인당 연구비 누적비율을 그래프로 표시해 연구비 *지니계수를 산출한 결과, 0.6 이상의 높은 값이 나왔다.

  교수 인력의 과잉 공급, 연구비 수급 불평등은 교수 간 경쟁을 과열시키는 기제가 된다. 연구비 확보는 연구 성과와 직결되기에, 교수사회에선 연구비 확보에 대한 부담을 공통적으로 호소한다. 김우재(하얼빈공과대·생명과학연구센터) 교수는 대부분의 과학 분야에서 연구비 수주 경쟁이 심하다연구비 수주 성공 확률이 10% 이하일 정도로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연구부정행위의 원인이 다름 아닌 교수 간 경쟁 심화에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우재 교수는 연구비를 따내기 위해 논문과 연구성과를 많이 내야 하다 보니 교수들이 논문 조작 등 연구 부정을 저지르기도 한다고 했다.

  랩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연구 규모를 일부러 줄이는 경우도 있다. A교수는 연구자로서 최대한의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랩을 꾸리는 입장에서는 안정적으로 랩을 꾸리기 위해 연구 규모와 안정적 랩 운영 사이에서 타협한다고 했다. 연구비를 안정적으로 수급받기 위해서 기존 연구를 답습하는 경향도 나타나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과열 경쟁을 완화하는 국가적 시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사업 경쟁률을 일정 수준으로 맞추고, 대학 연구비 지원 구조도 세심한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우재 교수는 학문조차도 시장경제의 원리에 맡겨지는 것이 과연 옳은지 생각해봐야 한다연구비 수주를 위해 인기가 많은 분야에만 연구개발이 집중될까 우려된다고 했다. 강태경 위원장은 시장가치와 학술 가치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경쟁을 완화하는 국가적 지원의 확대가 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니계수: 소득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소득분배지표로 0~1사이의 수치로 표시된다. 분배가 불평등할수록 1에 가까워진다.

 

이정우 기자 van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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