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표 위의 생명, 인간과 ‘다시 붙이기’
부표 위의 생명, 인간과 ‘다시 붙이기’
  • 이성혜 기자
  • 승인 2020.11.29 02: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리산국제환경예술제(JIIAF 2020)’ 스케치

자연과 인간을 잇는 환경예술

업사이클링으로 환경파괴 경고

접촉, 연결, 분열, 순환의 과정 담다

 

  점, , 면 표현의 이면엔 예술가가 있고, 그를 둘러싼 환경이 있다. 예술인을 둘러싼 환경, 그 속에서 형성된 예술가의 가치. 상호 영향을 주고받은 환경과 인간이 만들어낸 걸작이 환경예술이다.

  지난 1028일부터 지리산 구재봉 자락에 생명, 다시 자연이란 주제로 5회 지리산국제환경예술제가 진행되고 있다. 에릭 사마크(Erik Samakh), 크리스 드루리(Chris Drury) 등 세계적인 환경예술가의 자연주의, 업사이클링 형식의 실내외 설치작품이 자연이 그리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인간과 자연의 접촉, 연결, 분열, 순환의 의미가 담긴 예술작품들을 둘러봤다.

<Leaves Leave> - 김순임 作

 

  #1. 접촉 - <Leaves Leave>

지리산 하동의 가로수 밑에서 만난 이파리. 나무에 붙어있을 때는 미감으로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하고, 인도와 도로 위에 떨어진 잎들은 매일 폐기물 봉투에 넣어 치워진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는 잎들은 여전히 빛나고 아름답게 바람을 타고 흐르는데, 이를 대하는 사람의 행위는 너무나 다르다. (김순임)

  길을 지나던 중 낙엽과의 찰나의 접촉, 하강하는 낙엽과 전진하는 는 서로 다른 존재다. 김순임 작가는 1년을 주기로 잎이 나고, 지고를 반복하는 나무의 흔적을 모아 전시공간에 한데 엮었다. 그리고 이를 나무의 시간과 공간을 잠시 멈추게 했다고 표현한다. 불규칙적으로 나부끼는 이파리의 움직임을 멍하니 들여다보면, 무엇이 흐르고 무엇이 정체된 것인지 잠시 잊게 된다. ‘흐르는 것들은 끝일 수 없으며, 죽음일 수 없다.’ 외형을 넘어 작가와 낙엽의 본질이 조우하는 순간이 담긴 예술이다.

 

<소리나는 돌> - 에릭 사마크 (Erik Samakh) 作

 

<Jirisan TEA LINE> - 크리스 드루리(Chris Drury) 作

 

  #2. 연결 - <소리나는 돌>, <Jirisan TEA LINE>

  자연주의 현대미술의 거장, 에릭 사마크는 새소리, 바람소리가 어우러진 지리산 자락에 돌 하나를 세웠다. 그리고 천명한다. ‘이 돌은 지리산과 피레네 산맥 사이에 있는 하나의 문입니다. 이 소리나는 돌은 우리를 이동시키는 하나의 우주선입니다.’ 피레네 산맥은 유럽 남서부 프랑스와 에스파냐 양국의 국경을 이루는 산맥이다.

  연결의 접점은 소리. 설치한 돌에는 피레네 산맥의 자연 소리가 녹음돼 있다. 예술제의 집행위원장인 김성수 예술감독은 작품이 있는 길에 들어서면 센서가 작동돼 피레네 산맥의 새소리, 바람소리가 재생된다. 지리산의 소리와 섞이면, 지리산과 피레네 산맥은 연결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뚱딴지같은 돌덩이에 골몰하기 보단, 잠시 눈을 감는 거다. 어디서 오목눈이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면, 피레네를 경유하는 양떼의 우짖음이 들리는 듯도 하다.

  크리스 드루리의 <Jirisan TEA LINE>은 선을 매개로 사람과 땅, , , 산을 연결지었다. 가지런히 놓인 12개의 자연석이 지리산 정상을 대면하고 있고, 자연석 사이 차나무가 돌을 휘감는 형세다. 일렬로 심은 차밭은 아니다. 건설공사로 매몰될 위기에 놓인 차밭을 발견한 드루리는 차나무를 일부 전지해 이곳에 심었다. “녹차를 옮겨 심으면 잘 죽는다고 하던데, 다행히 잘 살아서 작품이 됐다고 김성수 감독이 설명했다. 차를 사랑하는 영국 출신의 예술가, ‘차를 마시듯 산 끝부터 내려온 기운의 흐름을 느낀다면 우리는 곧 자연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내가 북극이다> - 전창환 作
<다시 붙이기> - 김등용 作

 

  #3. 분열 - <내가 북극이다>, <다시 붙이기>

  자연과 인간의 연결이 늘 향긋한 차 내음을 불러들이는 것은 아니다. <내가 북극이다>라는 제목의 업사이클링작품이 실내 전시장에 네 발로 서있다. 내가 곧 북극이라 말할 정도로 자연과 나를 동일시하고 있지만, 결국엔 인간의 욕심이 빚어낸 파국적 결말의 경고를 상징한다.

  해당 작품은 뼈만 남은 북극곰을 모티브로 포장용기로 쓰인 스티로폼을 연결해 북극곰의 형상을 만든 것이다. 굶주린 수컷이 암컷과 새끼를 잡아먹은 후 뼈만 남은 채로 죽어간다는 북극의 상황을 전해 듣고, 전창환은 인간이 파괴한 북극의 현저한 진실을 예술로 표현했다. ‘최고 포식자임에도 극한의 삶을 살고 있는 북극곰이 곧 라고 한다면, 결국 그 비극의 끝에는 인간도 함께할 것임을 암시한다.

  다시 떨어트려 자연과 인간을 멀어지게 한다면, 이 비극이 끝날까. <다시붙이기>는 포장 등에 쓰인 테이프를 다시 붙여 하나의 긴 면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마찬가지로 업사이클링한 작품으로, 기존의 테이프와는 사뭇 다른 감각을 부여한다. “우리 일상을 보면 스티로폼과 마찬가지로 테이프 없이 거의 못 살 거다. 과연 테이프 없이 살 수 있을까?” 김 감독이 물었다. 푸른빛의 형상이 마치 거대한 파도 같다. 빠르게 나를 향해 달려온다.

- 홍지희 作
<부표 위의 산> - 홍지희 作

 

  #4. 순환 - <부표 위의 산>

  자연과 인간의 존재를 예술로 접합했기에 거듭되는 반목에 대한 고민도 작품에 녹아있다. 인간과 자연은 어떤 과정으로 접촉하고, 연결되고, 분열하고, 다시 접촉할까. 매커니즘의 핵심은 순환이다. 결국, 자연도 사람도 뿌린 대로 돌아온다. 순환의 정신을 예술에 구현한 작품이 있다.

  홍지희의 <부표 위의 산>이다. 백자토로 만들어진 부표 안에는 하동에서 채집한 돌과 씨앗이 들어있다. 지금은 실내에서 전시되고 있지만, 전시가 끝나면 이 작품은 바깥으로 옮겨진다. 소멸의 순간이지만, 이를 기점으로 작품은 새 생명을 태동한다. 비가 오고, 백자토가 녹아내리면 씨앗이 땅 위에 떨어진다. ‘자연 발화. 이때 부표는 앞으로 태어날 생명의 위치를 표시하는 역할을 한다.

  ‘소멸 뒤에 생명이 찾아오듯 자연은 오뚝이처럼 되돌아오고 순환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부표 안의 돌은 부표가 넘어지지 않고 중심을 유지하게 해준다. 이들 작품도 부표 속 돌과 다름없다. 자연에 대한 숙고, 염려, 성찰. 하동의 돌처럼 단단하게 자리 잡은 환경예술의 의미가 여기에 있다.

 

이성혜 기자 seaurchin@

사진이다연 기자 idayeoni@

사진제공JIIAF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