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운동이 전부였던 대학시절

불모지서 포기 않고 노력해

국민들 희망의 크기 키우겠다

허영 의원은 '말이 아닌 마음으로 정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70년간 춘천은 단 한 번도 진보진영의 국회의원이 당선되지 못한 보수진영의 텃밭이었다. 올해 21대 총선에서 허영 교우는 처음으로 춘천·철원·화천·양구 갑 선거구에 더불어민주당의 깃발을 꽂았다. 그가 꺾은 상대는 재선의 현역의원 김진태 후보. 20대 총선에서의 패배를 설욕한 것이다. 세 차례 도전 끝에 새내기 국회의원이 된 허영 의원. 고려대의 제25대 총학생회장을 지냈던 그를 지난 18일 의원회관 835호에서 만났다.

 

  ‘권위주의 의식 부수자다짐

  고등학교 때 연극을 했던 그는 사실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해 배우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행정고시를 보길 원했기에, 1989년 본교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그가 신입생이었던 당시, 대학가는 등록금투쟁이 한창이었다. 등록금이 학교에 사용되지 않고 사학의 재산을 부풀리는 데 사용되자, 배우를 꿈꿨던 그 역시도 열렬히 시위에 참여했다.

  등록금투쟁이 학원민주화투쟁으로 이어지던 시절, 하루는 학생들이 본관 앞 인촌동상을 끌어 내리려 했고, 이를 막으려는 교수들과의 몸싸움이 일어났다. “한 교수님이 제 옆에 있던 친구 목을 조르면서 했던 말이 엄청난 충격을 줬어요. ‘교수는 학생을 죽일 권리가 있다.’ 그 말 한마디가 모든 기득권과 권위적이고 부조리한 체제를 설명하는 문장처럼 다가왔어요. 이걸 부숴야겠다는 다짐이 절 학생운동과 민주화 투쟁의 길로 들어서게 했죠.”

제25대 총학생회장 당시의 허영 국회의원이 학생들 앞에서 연설하고 있는 모습이다.

 

  - 1991년 제25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됐다

  “총학생회장이 되겠다는 생각을 적극적으로 하진 않았는데 주변 학생운동 동지들과 선후배들이 나가보라고 권유했죠. 당시 고대학생운동은 대한민국 전체 학생운동을 주도하는 리더였고, 총학생회가 그 상징이었습니다. 사회 민주화가 완전히 이뤄진 것도 아니었기에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총학생회장 후보로 나가게 됐죠. 부총학생회장 후보는 허화영이었어요. 둘 다 강원도 사람이었죠. 강원도 감자 바윗골 촌놈들이 러닝메이트로 나오니까 학생들이 신선하게 보기도 했죠(웃음).”

 

  민주화를 향한 열정 속에 그는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다. 총학생회장 당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중앙위원이었던 그는 이미 전국 수배가 내려진 상태였다. “19926월에 동국대 경주캠퍼스에서 열린 총학생회장단 모임에 참석하려다 경찰이 회의 장소를 급습하는 바람에 체포됐죠. 장소를 여러 차례 바꿔가며 보안에 각별히 신경 썼는데, 결국 발각됐어요.” 경찰조사에서도 묵비권으로 일관하며 신분을 철저히 숨기고 화장실을 통해 탈출 계획까지 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동국대 학생들이 경찰서로 몰려와 고대총학생회장 허영을 석방하라!” 구호를 외치는 바람에 신분을 들켜버렸다. 그렇게 40일가량 안기부, 경찰, 검찰 조사를 마치고 7개월간 수형자 신분이 됐다.

 

  ‘있어야 할곳에 가다

  졸업 이후 네트로21’이라는 벤처기업을 설립했지만, 사업은 몇 년 만에 망했다. 사업 실패 이후 유학을 준비하던 그는 선배의 손에 이끌려 김근태 의원을 만났다. 선배는 있어야 할 곳을 찾지 못하는 사람이 제일 바보라며 그를 설득했고, 결국 김근태 의원의 비서관으로 본격적인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그 손을 잡아준 선배가 이인영 통일부장관이다.

  고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그에게 정치적 아버지. “그분은 고문을 당하는 현장에서 빛이 들어오는 걸 보고 내가 저빛을 보고 희망을 느꼈듯, 정치를 통해 국민에게 희망을 주겠다다짐하셨대요. 그분의 말씀이 제 정치의 목표가 됐어요.” 허영 의원실 책상 옆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김근태 전 의장의 판넬이 세워져 있다. 매일 그를 보며 초심을 다잡는다는 그는 정치를 희망에 비유했다.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희망의 크기가 커지도록 하는 게 정치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2008년에 춘천으로 내려가 출마를 준비한 것도 쉽게 당선될 수 있는 서울이나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 내려가 더디더라도 열심히 준비하는 게 대한민국의 정치와 지역을 발전시키는 것이라는 김근태 의장의 유언과 같은 말 때문이었다. “연속 두 번 떨어지고 12년간 준비해가며 희망을 품고 도전했죠. 희망의 꽃을 10년 이상 준비해서 피운다면, 분명히 이 과정 자체가 국민과 후배들에게 또 다른 희망의 꽃을 보여줄 계기가 되리라 생각하고 버텼습니다. 정말 힘들었어요. 수년 동안 한 번도 민주당을 선택하지 않은 곳에서 서러움도 느끼고, 쓰러질 각오로 했어요.”

 

  - 2020년 총선에서 당선 요인을 어떻게 생각하나

  “10년 동안 지역 밑바닥서부터 차곡차곡 성장해온 허영이라는 정치인에 대한 평가를 해주신 것 같아요. 10년 동안 가만히 있었던 게 아니라 100만 장 정도의 연탄을 나르면서 지역사회에 봉사활동을 끊임없이 했어요. 상대였던 김진태 후보가 정치인으로서 실망스러운 행동과 발언을 해온 전력도 있고, 춘천의 변화에 대한 전국민적 염원도 작용한 것 같고요.”

 

  - 국회에 들어온 이후 내세우고픈 의정활동은

  “그동안 스무 건의 법안을 대표 발의했는데, 두 가지가 제일 뿌듯합니다. 먼저 공공건축특별법인데 공공건축물에 디자인과 환경, 그리고 복지를 입힐 수 있는 법안을 만들었어요. 학교, 도청, 동사무소와 같은 공공건축물을 보면 붕어빵 찍어내듯 특색이 없잖아요. 친환경적이지도 않고요. 공공건축물이 그 지역의 보석 같은 존재가 돼 마을을 빛내야 한다고 생각해 이 법안을 제정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토양환경보전법개정안이에요. 춘천의 미군 부대가 평택으로 이전해 간 뒤 그 부지에서 폐기름통이 발견됐어요. 토양 오염이 심각했죠. 이 땅을 춘천시가 샀는데 또 춘천시민이 낸 세금을 들여서 토양 회복을 할 순 없잖아요. 그래서 토양오염 조사를 다시 하고 오염의 유발한 사람들에 대한 책임성을 명확하게 할 법적 근거를 마련했어요.”

 

  - 서울,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대한 더불어 민주당의 결정에 여론이 좋지 않다

  “당헌과 당규를 지키는 것은 국민들과의 약속이에요. 그 부분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치인은 선거를 통해 심판을 받죠. 물론 당헌, 당규에 있는 약속을 지켜 스스로 심판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우리나라 1, 2대 도시인 서울과 부산의 자치단체장을 뽑는데 여당이 후보를 내지 않는다면 또 다른 폐해를 낳을 수 있어요. 잘못된 과거를 극복할 올바른 리더를 내세우고 선택받는 과정을 통해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비전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당대표도 계속해서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있고, 이 과정을 통해 심판받겠다고 한 거죠.”

 

  - 국회의원으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는

  “조금 추상적이긴 하지만 허영을 보면 웃음이 나와,’ ‘희망이 느껴져같은 말을 듣고 싶어요. ‘정치인하면 떠오르는 막말, 망동, 자극적인 이벤트 같은 게 국민을 피곤하게 하잖아요. 그보다는 저를 통해 희망을 느끼고 미소가 저절로 지어지는 정치인이 되려고 합니다.”

 

진서연 기자standup@

사진김소현 기자sosoh@

사진제공허영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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