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 작가는 “글을 쓸 때는 주제나 소재가 먼저 떠오르고, 그다음에 어떤 장르로 풀어야 적합할까를 고민한다”고 말했다. 사진제공│정세랑·민영주
정세랑 작가는 “글을 쓸 때는 주제나 소재가 먼저 떠오르고, 그다음에 어떤 장르로 풀어야 적합할까를 고민한다”고 말했다.
사진제공 │ 정세랑·민영주

  ‘보건 보건 교사다. 나를 아느냐 나는 안은영.’

  중독성 있는 OST와 아름답고 묘한 이야기로 화제를 모은 넷플릭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은 불공평한 세상 속에서 친절함을 잃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동명 원작 소설의 작가이자 드라마 각본에도 참여한 정세랑 작가는 통통 튀는 문체로 장르문학과 문단문학을 자유롭게 오가고 있다.

  그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 좋은 사람들에 관해 쓴다. 사회의 소외당한 사람들에게 세심한 위로를 건네고 따뜻한 결말을 적는다. 그의 문학세계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하나같이 미래는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현재의 어려움과 맞서는 이유다.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안은영은 여린 존재들의 고충을 함께 고민하고 복잡한 세상과의 싸움에서 지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의 소설이 지친 사람들에게 건네는 농담이 됐으면 좋겠다고 하는 정세랑(역사교육과 03학번) 교우를 만났다.

 

-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이 마니아층을 양산했다

  “드라마를 봐주신 모든 분께 감사해요. 저는 전반부 각본에 많이 참여했어요. 원작의 어떤 에피소드를 고를지, 각기 다른 에피소드에 나오는 인물들을 어떻게 연결할지를 가장 고민했습니다. 소설에서는 몇 년에 걸쳐 등장했던 학생들을 드라마에서는 한순간에 서로 만나게 하고 그사이에 일어나는 화학 반응에 주안점을 뒀어요. 개인적으로는 각자의 이야기 속에 떨어져 있던 래디와 혜민이를 만나게 한 것이 제일 만족스러워요. 두 사람이 서로의 외로움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 원작에 있던 오리 에피소드가 드라마에서는 빠졌던데

  “많은 독자분이 오리 에피소드가 빠진 것을 아쉬워하시고, 관계자분들도 무척 넣고 싶어 하셨어요. 그런데 저는 굳이 사람들의 즐거움을 위해 동물들한테 연기시키는 것이 부담스러웠습니다. 아예 빼고 싶었는데 너무 아쉬워하셔서 오리들이 걸어 다니게 하는 정도로 타협했어요.”

 

예리함과 따뜻함으로 사회를 바라보다

  1년도 되지 않아 10만 부 넘게 판매된 <시선으로부터,>는 불운한 시대에 살았던 20세기 여성 예술가를 재조명한다. 시대를 앞서갔던 여성 예술가들은 여러 억압 속에서 비참한 결말을 맞았다. 정세랑 작가는 비참한 결말을 적나라하게 쓰는 대신, 참혹한 현실을 이겨내고 후대에 온당한 평가를 받은 가상의 인물 ‘심시선’을 주인공으로 설정했다. 심시선과 그의 후손들을 통해 후대 세대가 앞선 세대에게 보내는 공감과 지지를 따뜻하게 그린다. 이처럼 그의 글은 소외된 사람들을 조명하며 사회 문제를 예리하게 지적한다. 작품의 이야기 하나하나는 가볍지 않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다정한 위로를 전한다.

 

- 소설 속 세상을 낙관적으로 그려내는 이유는

  “절망이나 냉소가 언뜻 어른스러워 보여도 사실은 가장 쉬운 길을 택하는 것이 아닌가 해요. 상황이 나쁘다고 포기하는 게 세상을 많이 본 사람의 태도일 수 있지만 무책임한 태도일 수도 있잖아요. 사회의 허리 세대가 돼가면서 좋은 어른이 되는 방법을 많이 고민합니다. 현실에 꺾이기도 하고 실수도 하지만 끝내는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좋은 어른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캐릭터들을 쓰고 희망적인 결말을 쓰려고 노력하죠. 세계는 사람들이 원하는 속도만큼 빠르게 변하진 않지만, 천천히 나아간다고 느꼈어요. 속도 때문에 조바심이 나더라도 기다리고 있으면 결국 옳은 방향으로 수렴한다는 걸 믿는 것 같아요.”

 

장르보다 이야기가 먼저

  정세랑 작가는 판타지와 SF, 문단문학을 넘나들며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이야기를 담는다. 고대 비법서로 소환된, 장승을 닮은 배우자가 사람들의 절망을 흡수하고(<옥상에서 만나요>), 욕망으로 이루어진 젤리를 보는 보건교사가 장난감 칼과 총으로 학교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보건교사 안은영>). 판타지 기법을 빼고 파주에서 자란 여섯 친구의 성장을 다룬 이야기도 있다(<이만큼 가까이>).

 

-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창작의 비결은

  “다양한 대중문화를 접한 세대라 여러 장르에 마음이 열려 있었어요. 작가로서뿐만 아니라 독자로서도 경계 없이 창작물들을 좋아해요. 글을 쓸 때는 주제나 소재가 먼저 떠오르고, 그것을 어떤 장르로 풀어야 가장 적합할까를 이른 단계에 고민해요. 리얼리즘적인 방식으로 쓰고 싶을 때는 문단문학으로 써요. 판타지나 SF로 거리감을 벌리고 큰 비유를 쓰고 싶을 때는 장르문학을 선택해요. 스타일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자연스레 따라가는 것 같아요.”

 

- 소설을 쓸 때 주안점을 두는 건

  “사람과 사회의 복잡성에 초점을 맞춰 소설을 씁니다. 한두 문장으로 거칠게 요약하기에는 현실은 너무 복잡해요. 복잡한 것은 복잡한 대로 쓰자는 생각입니다. 좋은 사람에게도 단점이 있을 것이고 악인도 어떤 순간에는 악하지 않을 겁니다. 각각이 선 자리에서는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를 인정해야 그나마 정확하게 세계를 묘사할 수 있어요. 단순하게 쓰면 전달이 쉬울 수도 있지만, 딱 떨어지지 않아도 다양한 면면이 드러나게 쓰고 싶어요. 소설은 결국 해석의 결과물이고 현실을 일그러지게 반사하겠지만 큰 왜곡을 막으려면 복잡함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 같아요.”

 

“지구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어요”

  <지구에서 한아뿐>은 익숙한 사랑 이야기에 환경 이야기를 결합해 재밌게 전달하는 판타지 소설이다. 주인공 ‘한아’는 낡은 옷을 리폼하는 디자이너로 자원이 함부로 버려지는 것을 막는다. 환경을 생각해 채식을 즐기고 건강한 삶의 양식을 추구한다.

  정세랑 작가는 환경 문제에 가장 관심을 쏟고 있다. 그는 “최근 사람들 사이에서 환경 문제가 대두되는 것은 사회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앞으로 다가올 위기는 한 국가, 한 지역의 노력만으로는 막을 수 없는 위기이기에 전 지구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 소설가로서 환경 문제를 다루는 방법은

  “기후 변화와 멸종 위기를 해결하려면 시야를 넓혀 지구상의 모든 것들이 연결되어있다는 걸 지금의 우리가 분명히 이해해야 합니다. 저는 한 집단 안의 이기심과 이타심, 미래 세대를 착취하지 않는 방향으로의 전환에 대해 꾸준히 고민하고 있어요. 저는 과학자도 정치인도 아니기 때문에 연결성에 대해 계속 얘기하는 게 의무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중요한 주제일수록 강경하게 말하기보다 부드럽게 스며드는 방식일 때 전달이 잘 되지 않나 싶어요. 여러 사람이 다양한 방식으로 계속 연결성을 이야기했으면 좋겠습니다.”

 

-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2020년은 즐거운 순간에도 한껏 즐거워하지는 못했던 해였어요. 연결성은 행복에도 적용돼서, 건강하고 안전하지 않으면 손안에 쥔 행복이 지속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동안은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다른 세계에 머리를 푹 담글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을 것 같아요. 올해는 무엇보다 회복의 해가 되길, 개인적으로는 다양한 플랫폼으로 독자들에게 많은 것을 드리는 해가 되길 바랍니다.”

 

글 │ 조은진 기자 zephyr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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