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시대라지만, 그래도 얼굴 봐야 ‘친구’죠
비대면 시대라지만, 그래도 얼굴 봐야 ‘친구’죠
  • 이성현·이주은 기자
  • 승인 2021.02.28 1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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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채팅 서비스 ‘연고링’ 체험기
화면 너머 친구 사귀는 랜선 만남 유행

대학생 온라인 소통 서비스 인기
대면 만남보다 적은 부담감에도
익명의 거리감 극복엔 한계

 

  대학생들은 랜선 만남을 통한 관계 형성에 점차 익숙해져 간다. 학내 친목 도모 행사 대부분이 비대면으로 이뤄지며, 대학생들 간의 교류를 활성화하는 온라인 플랫폼 역시 여럿 등장했다. 랜선친구 만들기 앱 보틀’, 서울대생 간 1:1 소개팅 앱 결정샤등이 대표적이다. 그중 고려대·연세대 연합 창업학회 인사이더스 소속 WERO팀이 개발한 대학생 익명 채팅 서비스 연고링은 오픈 7일 만에 1700명 이상의 가입자 수를 달성했다.

  비대면 생활에 익숙해진 우리, 이제 얼굴 모르는 사람과도 막역한 사이가 될 수 있을까? 화면 속 대화만으로 친구를 사귈 수 있을지 알아보고자 본사 기자 2명이 채팅방 속으로 뛰어들어 2주간 각각 13, 17명의 상대와 대화를 나눴다.

 

이주은 기자본격적으로 랜선친구를 사귀기 위해 연고링 사이트에 접속했다. 가입 시 제공해야 하는 정보는 학교, 나이, 성별, 그리고 MBTI. 혹시라도 지인을 마주칠까 걱정돼 나만 알아볼 수 있는 닉네임을 설정했다. 마지막으로 입력한 건 성격과 한 줄 소개. ‘차분한 스타일, 편하게 연락하며 지낼 친구 구해요.’

  걱정 반 설렘 반의 기다림도 잠시, 30여 분만에 카톡!’ 소리와 함께 랜선친구가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우리 일상 얘기하는 거 어때요? 취미가 뭐예요?” 프로필 사진에 본인 얼굴을 내건 남성이었다. 전공마저 속인 나에게 당당하게 본인을 내보이는 상대는 충격이었다. 긴 고민을 끝내고 답장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영화 보는 걸 좋아해요.”

  첫 대화 이후 일주일에 걸쳐 총 13명의 랜선친구를 만났다. 비슷한 대화들에 슬슬 떨림보다는 지루한 감정만 커지던 즈음, 프로필을 보고 대화 상대를 직접 고를 수 있는 커뮤니티 창을 둘러봤다. 시선을 사로잡은 건 21학번 새내기였다. 동기와 친목을 쌓으려 애쓰던 작년의 내 모습이 떠올라 이번엔 직접 메시지를 보내봤다. 먼저 오는 연락을 기다릴 때와는 다른 떨림이 느껴졌다. ENFJ의 여자 후배라니, 왠지 모르게 잘 맞을 것 같았다

  “선배님, 반가워요! 여자 선배님은 처음이에요.” ‘힐링씨는 집콕하며 심심하던 차에 연고링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부담스럽지 않으시다면, 어디 학과인지 말해주세요!” 마음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이번엔 학과와 학번을 공개한 채로 대화를 시도했다. 이름도 모르는 후배지만, ‘밥약못지않게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일주일간 카톡을 이어갔다. 힐링 씨는 저랑 되게 잘 맞는 분인 것 같아 인스타그램 아이디라도 여쭤보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취재 후 남는 아쉬움에 그와는 맞팔까지 이뤄냈다.

 

이성현 기자익명의 힘은 강하다. 익명 랜선 만남의 분위기는 실제 만남과 사뭇 달랐다. “저는 오픈된 사람이라 학과 오픈 가능합니다. 계좌번호도 오픈 가능!” 편한 사이에서나 주고받을 법한 실없는 말들이 초면부터 오갔다. 스스로 오픈 마인드라 칭하며 농담을 건네는 냠냠. 조금 난감했지만 태연하게 답장했다. “입금은 못 해줘요!”

  다소 당황스러운 일도 있었다. “저도 힙합 좋아하는데, 누구 좋아해요?”라는 엽떡씨의 물음에 재키와이요!”라고 대답했지만, 응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재키와이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었을까?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더 이상 말을 걸 수 없었다. 어느 한 쪽이 답장을 안 하는 순간 끝나버리는 관계라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동갑내기 꿀꿀과는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나이도 같고 집도 가까우니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밴드부에서 기타를 치고 있다는 꿀꿀은 내 동아리를 궁금해했다. 별생각 없이 보도사진학회를 한다고 대답하니, “그럼 기자야?”라는 그의 날카로운 답변이 돌아왔다. “아니, 그냥 사진 찍는 거 좋아해서라고 얼버무린 후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난 후 생각해보니 꿀꿀도 정말 기타를 치는 친구는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있는 고깃집 아는데, 같이 갈래요?” 몇 마디 나눠보지도 않았으면서 과하게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고대씨는 부담스러웠다. “에이, 뭘 또 가서 먹어요.” 미적지근하게 답변하자 그는 곧장 나가버렸다. 채팅방은 다가오는 것이 쉬운 만큼 떠나는 것도 쉬운 곳이었다.

 

학교·MBTI·성별 등 친구도 선택해서 사귄다

  가입 시 학교 메일 인증이 요구되는 연고링은 본교를 포함한 11개의 서울 소재 대학 재학생만 이용할 수 있다. 일각에선 이런 제한적인 서비스는 명문대 학생들의 급 나누기가 아니냐는 비판과 본인과 비슷한 사람과 어울리고자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심리라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선다. 연고링 이용자인 사범대 20학번 이모 씨는 같은 학교 사람이라는 점만으로도 공감대 형성이 쉬웠다익명이지만 다들 서울권 학교의 학생들이라 가까이 사는 친구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연고링 이용자는 프로필에 각자의 MBTI를 기재해야 한다. 연고링 개발자 박상민(연세대 정보산업공학16) 씨는 한정된 정보 속에서 대화를 나누고 싶은 상대를 고를 때, MBTI가 재밌는 요소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이용자들은 만남을 시작하기 전 상대의 프로필로 성향을 파악하고, 나와 잘 맞을 것 같은 상대를 선택해서 대화할 수 있다는 점에 만족했다. 연고링 이용자 박모 씨는 “MBTI나 한 줄 소개 등의 정보로 이상형과 가까운 사람을 골라 대화를 할 수 있어 기대감이 컸다고 전했다.

  대화 상대의 성별을 선택할 수 있어 이성과의 대화를 목적으로 가입하는 학생도 많다. 연고링 개발자 정이든(정보대 컴퓨터18) 씨는 여성 이용자의 경우 남성 이용자의 연락이 너무 많아 피로도가 높다는 피드백이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2명의 여성 기자에게 먼저 말을 건 24명 중 22명이 남성이었다. 본지 남성 기자도 연고링에 가입했지만, 아무에게도 먼저 연락이 오지 않았다.

 

익명의 벽은 아직 높기만 하다

  채팅만으로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본지 기자들이 직접 체험해 본 결과, ‘진짜 친구를 사귀기는 어려웠다. 연고링을 통해 기자들과 대화했던 27명 중 12명은 작별 인사도 없이 일방적으로 대화 창을 나가버렸다. 오랜 시간 연락한 5명의 친구에게 기자임을 밝히고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오직 2명에게만 회신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인터넷 공간이 주는 장점도 있다. 손가락만 몇 번 움직이면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지루함을 해소할 수도 있고, 서로의 존재를 모르기에 거리낌 없이 얘기를 나누는 것도 가능하다. 얼굴 한 번 마주보기 힘든 요즘, 메시지로나마 친구를 만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서로의 존재를 알 수 없다는 익명 소통의 특징은 관계 형성에 독이 되기도 했다. 연고링 이용자 박모 씨는 신원을 밝히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흥미로웠지만, 대화를 나눌수록 답답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연고링 이용자 정경대 21학번 김모 씨는 요즘처럼 외출을 자제해야 하는 시기엔 온라인 대화가 의미 있겠지만, 랜선 대화만 하는 사이는 결국 자연스레 멀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필 사진이 얼굴을 대신하고, ID가 곧 서로의 이름인 세상에 적응했다고 생각했지만, 화면 너머 친구와의 거리는 멀기만 하다. 여전히 말풍선만으로 전하기 힘든 마음이 있는 법이다.

 

이성현·이주은 기자 press@

일러스트조은결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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