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박은홍</strong> 성공회대 교수·정치학과<br>
박은홍 성공회대 교수·정치학과

  군부 쿠데타로 미얀마/버마 민주주의가 다시 위기에 놓였다. 2016사람 중심의 포용적이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표방하고 출범한 아웅산 수치 민족민주동맹(이하 NLD)정부가 집권 2기에 진입하기 직전 군부에 의해 붕괴된 것이다. 이제 미얀마/버마는 10년전 정치개방이 단행되기 이전 폭압의 시대,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30년전 군부가 NLD의 압도적 총선 승리를 총과 칼로 무시하면서 군부에 의해 관리되는 규율 민주주의를 준비하던 어둠의 시대로 회귀할 것인지 기로에 섰다.

  미얀마/버마는 19세기에 제국주의 국가로서 맹위를 떨치던 영국의 사냥감이 되었다. 꼰바웅 왕조가 무너지고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반식민지 민족운동이 시작되었다. 이어 독립과 건국 과정에서 버마족과 다른 소수종족간의 평화공존을 꾀하던 아웅산 장군이 피살되자 미얀마는 버마족과 독립을 또다른 신식민주의로 받아들인 소수종족간의 내전 상태로 빠져들었다. 이 와중에 항영(抗英)무장투쟁 속에서 형성된 서방혐오주의와 국가혼란을 종식시킬 수 있는 유일한 주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던 네윈 군부세력이 민정을 뒤엎고 쿠데타를 단행했다. 그러나 이들이 내세운 자력갱생노선으로서의 버마식 사회주의는 민주주의, 경제 모두를 이전보다 후퇴시키면서 완벽한 실패로 끝났다. 이것이 19888월에 일어난 반군부 시민항쟁의 배경이다. 그리고 20년가량이 지난 2007년 계속되는 경제파탄에 불만을 갖고 시민들과 승려들이 대거 거리로 나왔다. 이른바 샤프론 혁명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시민불복종운동(CDM)은 이러한 승계정통성’(backward legitimacy)을 갖고 있다.

  현재 NLD 민선정부를 무너뜨린 민아웅 흘라잉 군부세력은 군의 행동이 헌법에 따른 조치임을 주장하고 있다. 물론 2008년 헌법 11장에 따르면 국가비상사태 상황에서 군총사령관이 정치권력을 접수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군이 주장하듯이 지난 해 11월 선거부정으로 국가가 비상사태를 선언할 만큼 혼란한 상황에 놓였다고 보기 힘들다. 오히려 쿠데타 이후 2만여 명의 범죄자들을 석방하면서 의도적으로 혼란을 조장하고 있는 당사자가 민아웅 흘라잉 군부세력이다. 이들이 만든 2008년 헌법에서 보아도 이번 군부의 행동은 불법인 것이다.

  현행 2008년 헌법은 의회 의석 25%를 군이 점유하고, 군이 내무장관, 국방장관, 국경장관을 지명하도록 하고 있다. 민선권력이 넘볼 수 없는 성역으로서의 군의 특권을 명문화한 것이다. 여기에다가 군은 주요 기업체를 소유하고 있는 경제권력이기도 하다.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NLD 민간정부가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쿠데타를 주도한 군 최고 지도자 민아웅 흘라잉이 지난 2019년 중국의 시진핑 주석을 만나 양국간의 군사협력과 일대일로사업(BRI)의 미래에 대해 논의했다. 그리고 이웃 태국을 자주 방문하면서 2014년 쿠데타를 주도한 쁘라윳 찬오차 군부세력과의 관계를 돈독히 해왔다. ‘국가안의 국가로서의 미얀마 군부의 실체를 보여준 것이다.

  아웅산 수치 정부가 20163월 출범했을 당시 내건 공약으로는 악법인 2008년 헌법 개정 뿐만 아니라 소수민족과의 화해를 통한 평화정착, 그리고 빈곤으로부터 탈피, 즉 경제부흥이 있었다. 만일 이번 쿠데타가 성공으로 끝나 폭압적 군정 시대로 회귀한다면 평화와 경제회복은 기대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이미 NLD 정부와 휴전상태에 있던 일부 소수종족 무장세력들은 쿠데타 군부세력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나섰다.

  또 미얀마 위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아시아 민주주의를 확연하게 후퇴시킬 것이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쿠데타 군부세력과 맞서고 있는 연방의회대표위원회(CRPH)를 정부대행기구로 인정하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군부를 압박한다면 민아웅 흘라잉 군부세력은 퇴각할 수밖에 없다. 만일 미얀마의 비폭력 시민불복종 운동이 성공한다면, 그래서 민정이 회복된다면 유사한 위기 상황에 놓여 있는 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민주주의 회복과 진전에 매우 고무적인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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