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 주위 사람들은 꼭 두 분류로 나뉜다. 주식을 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 주식을 하는 사람도 두 분류로 구분할 수 있다. 미국 주식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다. 굳이 나를 분류하자면 주식은 하지만 미국 주식에는 투자하지 않는 사람에 넣을 수 있겠다.

  코로나19가 안긴 선물인 줄로만 알았던 재택근무는 참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다. 일 년 가까이를 집에만 있는 내게 오늘은 어제고 내일은 오늘이다. 똑같은 일상의 반복 속에서 주식은 유일한 재미다. 모든 것이 멈춰있는 듯한 내 일상에 유일한 불확실성이기 때문이다.

  내게 주식은 오락이다. 월급에 못 미치는 푼돈을 굴리면서,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듯한 기분을 만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런 내게 최근 위기가 찾아온 것은 얼마 전이었다. 사기만 하면 주가가 오른다던 역대급 불장이 펼쳐졌고, 너도나도 투자 성공담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왜 더 사지 못했을까, 왜 쓸데없이 신중해버렸을까란 자책을 할 새도 없이 나는 벼락거지가 돼 있었다.

  박탈감이란 건 애당초 내 인생에 들어온 적이 없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부러움은 감추기가 힘들었다. 나는 왜 제자리에 멈춰있을까. 부러움은 후회로 밀려왔다.

  그러던 중 미 국채 장기물 금리가 오르면서 흔히 말하는 미장이 연일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호황에 대한 기대가 무르익기도 잠시,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들자 마치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시장이 아주 깊게 푸른 한숨을 내뱉기 시작했다.

  미장으로 재미를 좀 봤다며 으스대던 지인들이 내게 더 깊은 하소연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도 이맘때쯤부터다. 그래서일까. 요즘 나는 정작 얻은 것 없이 돈을 번 것 같은, 약간은 벼락부자의 기분을 느끼고 있다. 돈도 돈이지만, 무엇보다 누구 탓을 하느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좋다.

  내가 처음 주식을 해보겠다고 했을 때, 나의 배우자가 힘을 준다며 했던 말이 있다. “본전이면 잘 한 거다.” 그의 말에 대입하면 나는 아주 잘하고 있지 않은가. 벼락거지의 기분도, 벼락부자의 감정도 느껴보니 아무래도 이번 생엔 고위험 고수익은 내 것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그렇다고 리스크가 알아서 나를 피해가주는 건 아니다. 모든 투자에 신중을 기해야함은 나 같은 현상 유지어터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오늘도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오가는 틈틈이 아슬한 줄다리기를 하며 어제와 같은 또 오늘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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