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동생하고 으르렁대도 떡볶이에 들어 있는 계란 하나를 반반씩 나눠먹는 건 우리 사이 암묵적인 룰이다. 가끔 아빠 쫄면 위에 올려진 계란 반쪽을 두고 치열하게 젓가락 대결을 해도 떡볶이 계란만큼은 공평하게 나눠 먹는다. 그런데 그 계란이 누군가의 접시 위도 아닌, 싱크대에 홀로 버려진 날이 있었다.

  어느 누구도 먹지 못한 계란은 엄마의 손에 의해 식탁을 떠났다. 우리 집 식탁에서 사라진 음식은 그뿐만이 아니라, 각종 유제품, 그리고 모든 육류다. 정확히 2년 전, 사촌언니와의 행복한 유럽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 엄마는 수화기 너머로 당차게 한 마디를 경고했다. “나 이제 채식할 거야! 너도 이제 집에서 채식해!”

  엄마의 선언 이후 두 번의 여름이 지났다. 엄마의 다짐은 우리 가족 식사부터 동생과 함께 시켜 먹는 배달음식까지 가족 모두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 그나마 그동안 자취를 하면서 그 영향력 밖에 있었지만, 이번 학기마저 비대면으로 진행되어 결국 본가의 영향권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떡볶이의 계란은커녕 비엔나 소세지도 못 먹는 집밥이라니.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가 많아질수록, 메뉴에 대한 선택 폭이 좁아질수록, 엄마와의 사소한 갈등들이 늘어났다. 엄마의 선택을 딸로서 얼마큼 존중해야 하나 깊은 고민이 들기도 했다. 가족의 결정을 어디까지 따라가야 하는 것일까. 아무리 엄마가 견고한 다짐을 했더라도, 채식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 육류 소비를 줄이는 장점들이 넘치도록 많아도 입에 들어가는 모든 음식을 제한할 순 없다.

  그럼에도 내가 본가로 들어가기 전부터 아빠와 동생은 자발적으로 엄마의 결정에 녹아들고 있었다. 그렇게도 고기를 좋아하던 부녀는 함께 육류 소비를 줄이면서 일어나는 긍정적 변화들에 힘입어 채식 집밥, 그리고 그걸 준비해주는 엄마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엄마가 외출한 사이에 아빠와 셋이 시켜 먹는 피자나, 할머니께서 해주시는 해물볶음 등, 엄마 말의 영향력은 분명 사각지대가 많았다. 하지만 그 사각지대 안에 들어갈 것인지는 온전한 나의 결정이었다. 이제 나는 적어도 집 안에서는 엄마의 식탁에 앉기로 했다. 이미 자리한 아빠와 동생의 모습을 보며, 나도 채식이 줄 긍정적 변화를 기대하면서, 오늘도 엄마의 집밥을 이해하고 사랑한다.

김민영 기자 drat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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