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만나 밴드결성까지

청년이 마주한 세상 담은 노랫말

“타협하지 않는 노래 만들 것”

 

  담담하면서도 진솔하게 청춘을 노래하는 인디 록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는 따뜻한 가사와 잔잔한 멜로디로 오랜 시간 대중의 마음을 두드려왔다. 처음 들으면 흠칫할 법한 밴드명에는 예상외로 특별한 뜻이 없다. 2005년 데뷔 당시 인디 음악계에서는 예쁘고 화려한 밴드명을 달면 조롱받았다고 한다. 팀명을 짓기 위해 이상하고 납득할 수 없는 이름 수백 개를 무턱대고 써 내려갔다. ‘엄마 쟤 흙 먹어’, ‘아빠 야근하지마’, ‘초광폭 베란다’ 등 수많은 후보 중 가장 고급스럽고 세련되게 느껴진 이름이 ‘브로콜리 너마저’였다.

  제멋대로 정해진 이름처럼 제 멋을 찾아가길 어느덧 17년 차, 이제는 인디계의 대선배가 됐다. 2008년 정규 1집 ‘보편적인 노래’부터 2019년 발표한 정규 3집 ‘속물들’까지 쉴 틈 없이 달려왔다. 유난스럽게 내세우진 않지만, 음악적 성과도 뚜렷했다. 정규 1집은 별다른 마케팅 없이 오직 ‘입소문’만을 통해 4만 장 이상 판매를 달성했고, 타이틀곡 ‘보편적인 노래’는 2010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모던록 노래’로 선정됐다. 또, 2010년에 발표한 ‘졸업’으로 2년 연속 동일 부문에서 수상했다.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음악에 누가 되고 싶지 않아요.” 급변하는 시대적 유행에 편승하기보다는, 그저 잘 할 수 있는 노래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그들이다. 상도동 지하 연습실에서 다져진 끈끈한 케미를 자랑하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덕원, 잔디, 류지를 홍대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브로콜리 너마저'는 "특정 세계관에 갇힌 음악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브로콜리 너마저'는 "특정 세계관에 갇힌 음악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 밴드를 결성하는데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다

  서울대학교 노래패 ‘메아리’에서 만난 덕원과 잔디. 음악이 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합심해 2005년 밴드를 결성했다. 두려움이나 불안감은 없었냐는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은, “하고 싶은 걸 하는데, 용기가 필요하나요?”

  덕원|“입학할 때부터 대학 생활에 적응을 못 했던 것 같아요. 학교에서 내가 있을 곳을 찾아 헤매던 차에, 오래전부터 막연히 하고 싶었던 밴드 동아리에 가입했어요. 악기도 배우고 노래도 쓰면서 지루했던 대학생활 속에 재미를 느꼈습니다. 군대 다녀오고 나서도 밴드 생활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밴드를 결성하는 데 용기가 필요하지는 않았어요. 직업으로 삼으려고 시작한 게 아니라서,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지금 학생들과는 시기적으로 차이가 있다 보니까 일찍부터 취업을 준비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덜했어요. 제가 대학 들어갔을 당시에는 ‘대학에 오면 놀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했습니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큰 준비나 확신이 없이 그냥 하고 싶은 것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잔디|“밴드 활동을 시작할 때 저는 대학병원 응급실 간호사였어요. 일이 워낙 힘들다 보니까 저에겐 일종의 도피가 필요했었던 것 같아요. 그땐 체력도 좋았고요. (웃음) 간호사는 전문직이다 보니, 일을 잠시 그만둬도 얼마든지 다시 취업할 수 있을 거라는 배수진이 있었어요. 그래서 미래를 걱정하거나 불안해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들에게 음악은 일상의 돌파구이자 미래를 담보하지 않은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음악 생활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여느 밴드가 그렇듯, 갓 발걸음을 뗀 ‘아마추어’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얻기는 쉽지 않았다. 교내 가요제와 대학 가요제에 여러 번 도전했지만, 예선에서 일찌감치 떨어지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그렇게 고군분투하기를 2년만인 2007년, 연습실에서 녹음한 첫 EP ‘앵콜요청금지’를 세상에 발표했다. 큰 기대를 걸지 않았지만, 감성적인 가사로 청춘의 아픔을 뜨겁게 위로한 앨범은 대중들에게 스며들었고, 1년 동안 3000장이 팔리는 등 아마추어 밴드로서는 드문 성과를 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곧바로 정규 1집 ‘보편적인 노래’를 발표했다. ‘브로콜리 너마저’ 특유의 음악적 감각이 본격적으로 빛을 보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 정규 2집 타이틀곡 ‘졸업’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넌 행복해야 해. 행복해야 해….’ 2010년 발매한 정규 2집 ‘졸업’의 후렴구다. 2013년 고려대 정경대 후문에 붙은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를 계기로 전국 곳곳에서 코레일 파업, 국정원 선거 개입 논란 등 당시 사회 현실을 꼬집는 대학생 집회가 열렸다. ‘졸업’은 그 시위들의 한복판에서 단골로 불린 노래다. 안녕할 수 없는 사회에 분노하는 대학생들에게서 큰 공감을 얻은 것이다. ‘그 어떤 신비로운 가능성도 희망도 찾지 못해 방황하던 청년들은 쫓기듯 어학연수를 떠나고’, ‘우리는 팔려가는 서로를 바라보며 서글픈 작별의 인사들을 나누네’ 등의 노랫말로 청년이 마주한 암울한 시대상을 노래했다. ‘졸업’의 가사에는 ‘이 미친 세상에’가 16번, ‘행복해야 해’와 ‘잊지 않을게’는 총 6번 나온다. 미친 세상에서도 행복만은 놓지 말라는 따뜻하고 간절한 당부의 메시지다.

 

  덕원|“제가 졸업할 쯤부터 소위 ‘스펙’이 대두되기 시작했어요. 미래를 향한 불안, 사회적 압박감이 청년들을 괴롭혔죠. 정치적으로도 납득하기 힘든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노래를 통해 불만의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가사에서 특정단어나 문장을 반복하면 강조할 수 있는 효과가 있잖아요. ‘이 미친 세상에’를 계속 반복한 이유도 그렇죠. 우리 노래의 가사 대부분이 과하지 않고 은은한 편이라, ‘이 미친 세상에’라는 그 한 번의 표현이 대중에게 더 강렬하게 느껴진 것 같아요. 실제로 ‘졸업’의 가사 앞부분은 평온한 편이에요.”

 

- ‘청춘의 삶’을 노래하는 밴드로 불리는데

  덕원|“많은 분께서 저희 노래를 듣고 ‘청춘’을 느끼시는 건 아마 저희가 ‘질문’을 던지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는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일상 속에서 아이가 하는 질문들에 대답하다 보면 제가 모순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껴요. 그럴 때마다 ‘안 돼’,‘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말하는 제 스스로에게 매번 부끄러워져요. 때가 묻으면 묻을수록 숨기고 싶은 게 더 많아지잖아요. 반면에 혈기 왕성할 청춘일 때는 불합리한 것들에‘왜?’라고 의문을 던지고, 직접 나서서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죠.

  저는 곡에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질문하는 느낌으로 이야기하려고 해요. 저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기성세대에 가까워지는 걸 느끼고 있지만, 질문을 많이 하고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태도를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저희 가사를 들으면 무언가를 더 생각하고 고민하게 된다는 점에서 우리가 청춘을 노래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 곡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덕원|“가사를 구상할 때 시간을 많이 들이는 편이에요. 물론 음색이나 멜로디 등 다른 부분들도 무척 신경 쓰지만, 특히 가사를 더 잘 전달하고 싶더라고요.

  가사 속에는 이야기나 감정을 충실히 담으려고 노력해요. 또 곡과 잘 어울리는 가사를 쓰려고 해요. 줄글로 보면 이상하지만, 곡과 함께 고려했을 때 잘 맞는 스타일의 가사도 있거든요. 그리고 요즈음 유행하는 스타일이 있더라도 우리가 좀 더 잘 할 수 있는걸 하려고 합니다. 분위기나 유행에 타협하고 싶지 않아요.”

 

  때로는 거창한 위로보다 담담한 말 한마디가 가슴을 울린다.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랫말이 그렇다. 담백하고 단순하다. 그래서 더 진실된 공감을 부른다.

 

‘만약 지금이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면 그건 참 유감이네. 그동안은 아직 나는 행복하지 않았거든…’

- ‘서른’ 中

 

‘그래 우리는 속물들. 어쩔 수 없는 겁쟁이들. 언제나 도망치고 있지만…’

- ‘속물들’ 中

 

‘울지마. 네가 울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 뭐라도 힘이 될 수 있게 말해주고 싶은데. 모두 다 잘 될 거라는 말을 한다고 해도. 그건 말일 뿐이지 그렇지 않니…’

- ‘울지마’ 中

 

- 추구하는 음악은

  덕원|“세계관도, 지향하는 음악도 딱히 없어요. 대신,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충실히 하려고 해요. 음악을 오래 하고 싶습니다. 세계관이나 음악관을 정해버리면 특정한 이미지가 만들어질 거고, 그걸 유지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그저 생긴 모양대로 음악을 하고 싶어요. 결국은 우리가 만들어온 음악에 누가 되고 싶진 않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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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무대를지켜주세요' 페스티벌에서 덕원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 관객을 마주하기 어려운 요즘이다

  류지|“공연할 때 아쉬움이 큰 것 같아요. 처음 무대에 올라갈 때 긴장되는 분위기, 관객들의 상기된 표정이 정말 그리워요. 관객의 호응이나 앵콜을 외치는 소리를 정말 좋아하는데, 지금은 전혀 볼 수 없어서 아쉬워요.”

  잔디|“관객의 따뜻한 눈빛도 그리워요. 언택트 공연을 하다 보면 관객의 반응을 댓글로 마주하게 되는데, 피드백을 텍스트로 추측해야 한다는 것이 매우 힘들어요. 또 제가 눈이 나빠져서 댓글이 잘 안 보이는 점이 불편한 것 같아요. 공연이 끝나고 모니터링을 하면 화면 속에서 제가 계속 눈을 찡그리고 있더라고요. (웃음)

  대중문화나 공연계가 지금보다는 나아질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바라봐주시면 좋겠어요. 정책적인 부분에서도 변화가 시급해요.”

  덕원|“관객분들이 저희뿐만 아니라 많은 뮤지션에게 애정을 가져 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요새 분위기를 보면 공연을 즐기는 문화가 정말 ‘잊혀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소규모 클럽이나 라이브 공연이 점점 줄어들면서 대중들에게서 멀어지고 있는데, 이러다 정말 사라지는 건 아닐지…. 공연문화가 유지되도록,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리가 지켜온 자리를 앞으로 어떻게 지켜가야 할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뭐든지 할 수만 있을 것 같았던 당찬 20대를 지나, 어느덧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아이를 키우는 멤버도 둘이나 있다. 부담 없이 시작한 밴드는 이제 마냥 자유롭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곡도 계속해서 발표하고, 유튜브나 온라인 공연 등 여러가지를 이것저것 해볼 계획이에요. 많은 분께서 가벼운 마음으로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보편적인 노래를 너에게 주고 싶어…’ 가사에 담은 바람처럼, ‘브로콜리 너마저’의 보편적인 노래는 계속될 것이다.

 

글 │ 진서연 기자 standup@

사진 │ 정채린 기자 cherry@

사진제공 │ #우리의무대를지켜주세요 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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