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안가도 괜찮은 사회를 만들고 싶어요”
“대학에 안가도 괜찮은 사회를 만들고 싶어요”
  • 송다영 기자
  • 승인 2021.05.02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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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거부자들을 만나다

 

  매년 수능철이 다가오면 대부분의 고3 수험생들은 수능을 위한 막판 스퍼트를 내기 위해 학원가를 찾지만, 투명가방끈 회원들은 대학거부선언을 위해 광장에 나선다. 2011년, 대한민국 입시제도의 불합리성을 주장하는 이들이 청계광장에 모였다. 수험생부터 대학 비진학자, 대학 자퇴생까지, 이들은 대학이라는 기관의 존재가치에 의문을 던졌다. 그렇게 모인 이들은 투명가방끈을 설립했고, 매년 공개적인 대학거부선언을 진행했다. 단체를 통해 대학(입시)거부선언을 한 사람은 총 96명이다. 본지는 5명의 대학거부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이들에게 던진 공통 질문은 ‘이런다고 학벌주의가 없어질까요?’였다. 이들은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 “당장 바뀌지는 않겠죠, 그래도 세상에 작은 균열 정도는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서열화’ 대신 ‘평준화’가 필요한 이유

  2011년 10월 14일 서울대 학생회관에는 대학서열주의와 과열된 입시 경쟁을 비판하며 자퇴를 선언하는 대자보가 붙었다. 대자보의 주인은 당시 사회과학대학 3학년생이었던 공현(본명 유윤종) 씨. 10년이 지난 지금, 공현 씨는 투명가방끈 운영회원으로서 청소년 인권 운동을 지속하고 있다.

  그가 경험한 사회에서 대학은 선택이 아닌 필수, 강요였다. 중·고등학생은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으레 대학을 준비하고, 편의점아르바이트를 구할 때도 대졸자를 찾는 사회가 이상했다. 무엇이 문제일까를 생각해보니, 우리 사회 기저에 깔린 학벌주의가 원인이라고 판단했다. 이 생각은 곧이어 대학거부선언으로 이어졌다.

  거부선언으로부터 10년, 학령인구는 꾸준히 감소 추세를 보이는데도, 입시 전쟁은 점점 치열해져만 간다. 공현 씨는 10년 전과 달라진 점에 대해 입시 경쟁을 바라보는 태도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과열된 입시 경쟁’을 문제시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애썼다면, 지금은 경쟁에 방점을 찍는 것 같아요. 과열된 것은 어쩔 수 없으니 어떻게 하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거죠. 아젠다가 본질로부터 많이 멀어진 느낌이 들어요.”

  공현 씨는 입시 경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결국 대학 서열이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학 서열화는 교육과 사회를 왜곡시켜요. 학생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입시를 위한 교육을 받게 되고, 커서는 학력과 상관없는 직무에서도 학력으로 차별 대우를 받게 되니까요.”

  투명가방끈이 말하는 대학의 본질은 깊이 있는 학문을 교육하고 연구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학문’에 뜻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공부를 하는 곳이다. 공현 씨는 애초에 대학이 입학허가를 위해 학생의 수준을 판가름하는 일 자체가 부질없다고 말했다. 교육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는 평등하게 보장돼야 하기 때문이다. 대학서열화는 학문을 위한 공간으로서 작용하지 못하고 있는 대학의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고 볼 수 있다. “대학은 서열을 높이기 위해 교육의 질을 높이는데 애쓰는 것이 아니라 취업이나 시험합격률을 높이는 방식을 취하고 있고. 이게 진정 교육을 위한 경쟁인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대학 가지 않으면 동정받는 사회

  난다(본명 한지혜) 씨 또한 2011년 투명가방끈을 통해 대학거부선언을 했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대학입시 경쟁에 회의를 느끼고 자퇴했다. 수능도 보지 않았다. 대학 비진학자로서의 삶은 불편했다. 전공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학을 가지 않았다고 답하면, 왜 대학을 가지 않았는지 설명해야 했다. 자의로 대학진학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하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다시 생각해보라는 걱정과 동정이 뒤따랐다. “아직도 대학에 가지 않은 것 자체가 비정상으로 치부되는 사회에요.”

  대학 비진학자로서 현실적으로 골머리를 앓았던 건 거주 문제였다. 사회적 기반을 다지지 못한 채 사회에 나온 사회초년생은 하루 몸 누일 곳 찾기가 그렇게 힘들었다.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던 활동가들이 2018년부터 공동주거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거부하우스라는 셰어하우스를 운영했다. 투명가방끈의 활동을 지지하는 후원자들의 후원금과 활동가들의 사비를 모아 탈가정·탈학교 학생이나 대학 비진학자와 활동가들의 공간을 마련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주택공급사업을 통해 청년층의 주거문제 해결을 시도하고 있지만, 그 대상이 주로 신혼부부, 대학생, 사회초년생이다. 때문에 진로탐색을 위해 알바를 하거나, 취업하지 못한 대학 비진학자에게는 혜택이 돌아가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난다 씨를 비롯한 투명가방끈 활동가들은 다다다협동조합을 설립해 대학비진학자 사회주택 프로젝트를 논의하고 있다. “대학 비진학자들은 자칫 정책의 사각지대 속에 방치될 수 있어요. 대학이 진정 선택이 되기 위해선 비진학 이후의 삶 또한 막막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주거 안정을 보장함으로써 비진학자 이후의 삶 또한 보장돼야죠.”

 

‘왜 못 갔어?’ 아니라 ‘왜 안 갔어?’

  2017년 대학입시거부선언을 한 피아(본명 장주연) 씨는 고등학교 재학시절 줄곧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전형적인 우등생이었다. 하지만 성적순에 의한 야간자율학습반 배정, 교사의 노골적인 성적 차별 대우 등 성적으로 학생을 계급화하는 학교 환경에 압박감을 느껴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여기에 일시적인 난독증까지 찾아와 도저히 공부를 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나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성적밖에 없었는데, 공부를 못하니 나 자신을 잃어버린 느낌이었죠.” 이후에도 입시경쟁에서 패배자가 되면 사회에서 낙오될 것이라는 주변의 압박에 시달렸고, 결국 견디지 못해 학교를 그만두고 투명가방끈을 찾았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신념이라기보다는 고등학교 때 어렴풋이 문제라고 느꼈던 부분이 대학입시와 연결돼있었기 때문이다. 대학거부선언에 참여한 이래 ‘대학이 너를 거부한 것이다’, ‘네가 뭔데 대학을 거부하냐’, ‘가고 나서 얘기하면 들어주겠다’ 등의 비판·비난에 한동안 속앓이를 하기도 했다.

  피아 씨는 대학 비진학자에게 묻는 질문이 ‘왜 못 갔어?’가 아니라 ‘왜 안 갔어’가 되는 사회가 와야 한다고 역설했다. “대학입시라는 것이 단순히 개인의 선택 영역에 있지 않아요. 어렸을 때부터 우린 대학입시를 제대로 치르지 못하면, 대학에 가지 못하면 낙오자가 될 것이라 학습하고, 그걸 내면화하잖아요. 투명가방끈이 말하는 ‘거부’는 입시경쟁시스템에 불복종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어요. 지금의 방법에 불복종이라는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구조의 변화를 촉구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대학입시를 거부하고 있는데, 그냥 ‘안 가면 그만이지’라는 식의 태도는 잘못된 시스템을 외면하는 거죠.”

 

다시 대학을 선택한 이유

  김한률 씨는 2015년 투명가방끈을 통해 대학입시거부선언을 했다. 당시 눈 한쪽을 가린 머리와 날카로운 눈빛으로 반항적인 이미지로 대학입시를 ‘목숨을 건 치킨게임’이라 비판했던 그의 영상은 인터넷에서 큰 화제가 됐다. 고등학교 시절 입시실패를 이유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수험생 뉴스가 쏟아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입시에 떠밀려 죽는 사람들 소식을 접하는 게 담담해지는 자신이 무서워졌고, 이는 대학입시거부선언으로 이어졌다. “당시에도 누군가가 죽기까지 하는 한국 입시 경쟁이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동시에 대학이라는 고등교육 기관까지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고요. 단지 한국에서 대학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죠. 대학에 진학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길을 가는 것. 이 둘이 사회적으로 동등한 취급을 받지 못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한국이 정말 대학에 가지 않는 선택을 해도 괜찮은 사회라고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대학입시거부선언 이후, 각종 알바로 생계를 유지하며 세월호 참사 유족과 함께 시위를 하는 등 사회운동을 계속했다. 그가 다시 한번 인터넷에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2017년 출연했던 다큐멘터리의 자막이 그를 ‘대학생’이라고 소개했기 때문이다. 그 후, 매년 입시 커뮤니티에선 ‘대학거부자 근황’이라는 제목의 김한률 씨를 조롱하는 글들이 올라온다. 인터뷰 장소 주변에 유명 대학이 있어 해당 학교를 재학한다는 허위사실이 퍼진 것과 달리, 당시 김한률 씨는 방송통신대학에서 영상편집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러다 2017년 스페인 몬드라곤 경영대학에 진학했다. 그는 대학에 진학한 이유에 대해 “스페인에서 대학입시는 말 그대로 대학에 가고 싶은 사람을 위한 제도였어요. 가고 싶은 사람만 이용하는 제도였죠.” 해당 대학을 선택한 이유 또한 몬드라곤 대학의 경우 입학 정원이 정해져 있지 않아 경쟁 과정을 겪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상생과 공존을 교육관으로 삼고, 이를 입시제도에까지 적용한 대학이라 선택했다. ‘경쟁자를 밀쳐내야 입학할 수 있는 대학에 들어가지 않겠다’라는 가치관을 뒤집으면서까지 밀어붙인 대학진학이 아니었기 때문에 주변 활동가들 또한 그의 선택을 존중해줬다.

  스페인 유학 생활 중 가장 놀랐던 점은 입학 절차가 까다롭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입학을 위해 치르는 시험이 적진 않지만. 상식과 기초 교양을 묻고 난이도 또한 높지 않다. 김한률 씨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낸 서류는 각종 개인정보 서류들과 고등학교 졸업증서, 범죄 조회 서류, 그리고 간단한 자기소개서. 성적과 관련된 서류는 없었다.

  입학하기가 쉬운 대신 졸업 요건이 까다롭다. 경영학과의 경우 졸업을 위해선 특정 연 매출을 도달해야 하고, 경영 관련 서적이나 인문학 서적을 읽고 에세이를 꾸준히 제출해야 한다. 이 같은 교육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는 이유는 스페인이 대학 평준화 국가이기 때문이다. “스페인 대학 지원자 모두가 졸업하지는 않거든요. 졸업요건이 까다롭기도 하고, 중간에 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가차 없이 그만두기도 해요. 저 역시 스페인의 사례처럼 우리나라도 배움의 기회는 주되, 졸업요건을 까다롭게 만들면 된다고 생각해요. 경쟁, 중요하죠. 하지만 배움을 경쟁 없이 받고 나서 취업이라든지 다른 분야에서 경쟁할 준비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상황에서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낙오자가 생기는 거니까요.”

 

어딘가 존재하는 또다른 김예슬

  2021년 3월, 경북여자고등학교 복도에는‘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게시됐다. 2010년‘자격증 장사 브로커’ 된 대학의 존재가치를 비판하며, 자퇴를 선언한 고려대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 씨가 붙인 대학거부선언이다. 대자보를 게시한 사람은 해당 학교 2학년생이자, 2020 대학입시거부선언자 일움(본명 강나리) 씨. “‘이 시기만 참으면 더 잘 살 수 있다’, ‘공부 아니면 할 게 없다’ 등의 이야기들 있잖아요.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누군가는 해줘야 할 것 같았어요. 정말 죽을 것 같은데도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대학이 꼭 해답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요.”

  일움 씨는 1학년 마지막 시험을 준비하던 책상 앞에서 대학입시거부선언을 다짐했다. 극심한 우울감과 상실감, 그리고 허무함이 몸을 삼켰다. 목적도 없이 빈 허공을 떠다니는 것 같았다. 일움 씨는 곧바로 ‘멈춤’을 선택했다.

  대자보 부착 후 학교가 발칵 뒤집히거나 또 다른 누군가가 대학입시거부를 선언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누군가 자신의 선택지에 ‘멈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활동명 ‘일움’은 학교에 있는 입시 때문에 유예되는 경험들을 이루겠다는 뜻과 ‘일단 움직이자’의 줄임말이다. 2021년, 대학입시와 교육시스템에 문제를 가졌던 또 다른 김예슬은 움직이고 있다.

 

글 | 송다영 기자 foreveryoung@

사진 | 서현주 기자 zmong@

사진제공 | 투명가방끈·유튜브 코난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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