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남근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학생들이 연구실로 찾아오거나 밖에서 만나 진로를 상의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공부를 계속하여 학계로 나가고 싶은데 유망한 전공이 무엇인지, 법조계로 나간다면 어디가 좋은지 등이다.

  나는 항상 학생들에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말한다. 물론 범죄행위만은 제외된다. 그리고 현재 좋아할 뿐만 아니라 장기간 지속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한다. 우리나라도 어느덧 다양성 있는 사회가 되었고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섰다. 어느 분야에서든 최고 수준의 전문가가 되면 자기성취를 이룰 수 있다. 이러한 경지에 이른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하는 일을 미치도록 좋아했다는 점이다. 성공을 위하여 노력한 것이라기보다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다 보니 어느 순간 성공한 인생으로 평가받게 된 것이다.

  미국 육군사관학교 신입생 11320명을 상대로 그 입학 동기와 졸업 후 5년간의 의무복무기간이 끝난 시점에서 조사한 성취도 사이의 상관성에 관하여 분석한 자료가 흥미롭다. 생도들을 그 입학 동기에 따라, 단지 지휘관이 되는 훈련을 받기 위하여 입학한 경우(internal motive), 육사 졸업과 군 경력이 사회적 출세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여 입학한 경우(instrumental motive), 양자 모두에 해당하는 경우의 세 부류로 나누어 비교하였다. 수년이 지난 후 육사에서의 탈락률, 학교 성적, 졸업 후 근무평정과 이직률 등을 비교해보니 그룹 이 가장 우수하고, 그룹 이 그 뒤를 이었으며, 그룹 는 꼴찌였다. 그룹 는 그렇다 치고,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룹 이 그룹 에 비하여 모든 지표에서 뚜렷이 뒤졌다는 점이다. 결국 사회적 성공을 크게 기대하는 것 자체가 그 기대를 저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며칠 전 칼럼니스트 Charles M. Blow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나의 성년 인생 제2을 읽었다. 나이 50줄에 접어들어 젊은 시절의 고난과 꿈,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과 죽음을 관조하는내용이다. 그는 <파리는 불타고 있다>에서 배우 Dorian Corey가 한 말을 빌려 나는 항상 큰 별이 되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지.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그 목표가 낮아져 갔지.”라고 쓰고 있다. 이보다는 원대한 희망을 가지지 않은 채 일에 열중할 때 성공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장래 무엇이 되겠다는 포부는 가져본 적이 없는데, 돌이켜보면 우연히도 현명하게 살아온 것 같다. 중고등학교 시절 벽촌에서 도시로 유학을 와서 공부를 한 관계로 당장의 의식주 해결이 급선무이다 보니 미래를 꿈꿀 여유가 없었다. 대학 사회계열에서 법학과를 선택한 것은 친구의 권유로 그랬다. 당시 경제학을 좋아했지만, 친구가 외국 유학을 할 형편이 못 되는 처지에 무슨 경제학과냐고 핀잔을 주었다.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로펌 변호사가 되고자 했는데 이번에는 집사람이 딱 1년만이라도 법관 생활을 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권했다. 마지못해 판사가 되어 20여 년간 재판을 했다. 재판업무에 싫증이 날 무렵 고려대 어느 교수가 교직에 관심이 있는지 물어왔다. 주위에서 권하기에 고민할 것도 없이 짐을 싸서 이곳으로 왔다.

  나는 멀리 갈 길을 미리 정하기보다 항상 현재의 상태에서 갈 수 있는 길을 찾았다. 한 번도 내가 선택한 진로에 관하여 후회해본 적 없다. 인생은 외길이어서 다른 길을 선택했을 때와 비교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다만 현재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노는 것, 일하는 것, 공부하는 것 모두. 내가 한 일의 완성도가 높을수록 성취감과 행복감도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졸업 후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를 바랄 것이다. 하는 일이 어렵지 않고 자유시간은 많으면서 높은 보수를 주는 곳이 좋은 직장일까? 아마도 이런 직장의 직원은 곧 감원으로 해고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다면 결국 회사가 망할 것이다. 더욱이 내 경험상 높은 보수를 받으면서도 하는 일이 별로 없는 경우 마음이 불편했다. 회사에서는 내가 어떤 일을 할 것을 기대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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