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류세평] 자유민주주의는 안녕한가?
[탁류세평] 자유민주주의는 안녕한가?
  • 고대신문
  • 승인 2021.05.30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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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남근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윤남근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우리는 법치주의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그 의미의 엄중함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법치주의는 자유민주주의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사람은 법의 테두리 내에서 자유를 누리고 국가는 법에 위반되지 않는 어떤 행위에 대하여도 제재를 가할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은 그 적용을 받는 국민이 직접 관여하여 만들어야 한다. 법안에 대하여 국민투표를 하거나 투표를 통하여 선출된 주민의 대표자가 민의를 반영하여 의결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입법 과정을 보면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본분을 정확히 이해하고 직무를 수행하는지 의문이고, 국민 역시 비정상에 너무나 익숙하다 보니 문제의식조차 없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든다.

  나는 수년 전 일본 와세다 대학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중국 칭화대 법대 교수의 발표를 듣고 놀란 적이 있다. 그는 중국도 법치주의를 따르고 있다고 말하면서 칠판에 ‘rule by law’라고 썼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말하는 법치주의는 ‘rule of law’다. 양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전자는 입법자가 사전에 만들어놓은 규범에 따라 통치를 한다는 의미이고, 후자는 통치자가 아닌 법의 지배를 받는다는 뜻이다. 후자에서는 누구든 법 앞에 평등하지만, 전자에서는 그러한 보장이 없다. rule of law에서 법은 시민들의 자유의지의 표현인 반면 rule by law에서 법은 피치자가 지켜야 할 규범일 뿐이다. 우리가 rule of law를 구현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심각하게 고민할 때다.

  우리나라가 조선왕조, 일제강점기, 그 후 군사독재를 거치는 동안 법은 순치되지 않은 시민을 때리는 채찍이었고, 반항적인 지식인을 옭아매는 족쇄였다. 1987년 자유민주주의 헌법이 시행되었지만, 법을 경원시하는 국민들의 인식에는 큰 변화가 없는 것 같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법은 공평하고 정의로운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서 분쟁이 발생했을 때 ‘법대로 하자’고 하면 악의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헌법상 국민들이 법을 제정하고 국가기관의 법 집행을 감시하는 주체임에도 이를 실천하는 것을 꺼린다. 국민들 스스로 헌법상 권리를 방기하면 그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나쁜 목적으로 대신 행사하는 자가 있기 마련이다.

  자유는 시민들 스스로 지켜내야 할 기본권이지 국가가 베푸는 혜택이 아니다. 국가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지만 자유민주주의에 대한가장 큰 위협은 타락한 국가권력이다. 최근 단숨에 몰락한 부국 베네수엘라의 선동정치가 그 예이다. 선동정치가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젊은이들에게 사탕을 뿌려 서서히 정부의 시혜에 기대도록 만든다. 이런 식으로 교묘하게 사적인 영역 깊숙이 영향력을 확장한다. 이들은 장밋빛 미래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심어주고 대중을 홀리는 기술도 가지고 있다. 정부는 비대해지고 시민들의 자유의지는 부지불식간에 마비되어 간다. 이들의 목표는 자신들만의 영구집권이다. 그래서 자유를 외치는 시민들을 살상하는 미얀마의 정치군인들보다 만면에 웃음을 띤 선동정치가가 더 무서운 것이다.

  “Freedom is not free.”는 본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할 군인들의 구호지만 모든 국민들의 일상에 녹아들어야 할 경구(警句)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자유민주주의를 가르치고 자연스럽게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내가 오래전에 미국 유학 중일 때 우리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생이었다. 그곳에서는 학생들이 교실과 식당에서 지켜야 할 규칙(rule)이 벽에 게시되어 있고, 우리 아이가 그 규칙을 어기는 때에는 어김없이 담임선생이 우리에게 통지를 해 주었다. 더욱이 어린 학생들이 규칙의 제정 과정에 직접 관여했다. 선생님 말씀을 잘 따르라는 교육만을 받아온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외국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이 자유민주주의와 법의 지배를 생활화하기 위한 거국적 시민운동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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