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청년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4월 22일 평택항에서 300kg 무게의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즉사한 이선호 노동자를 향한 추모가 곳곳에서 이어진다.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정치인이 빈소를 방문할 만큼, 평택항 사고는 정치적으로도 중대한 관심사가 되었다. 그러나 실종 순간부터 연일 보도되었던 한강 의대생 사망 사건과 달리, 평택항 사고에 대한 언론의 초기 대응은 매우 미약했다. 주류 언론에서 두 사망 사건을 비교하는 기사가 보도되기 전까지 이선호 노동자의 죽음을 보도한 곳은 몇 곳의 지역 신문에 불과하였다.

  두 청년의 사회적 지위가 언론 보도에 영향을 끼쳤다는 의견이 있는 한편, 평택항 사고가 최근 전국적인 이슈로 떠오른 것을 보고 두 죽음이 비교적 대등하게 관심을 받고 있다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평택항 사고가 다루는 관심과 문제의식은 단 한 사람만의 몫이 아니다. 사인의 측면에서 볼 때, 한강 사고와 의대생 전체를 분리할 수는 있어도, 평택항 사고와 청년 노동자를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구의역 김군, 김용균, 그리고 이선호 노동자를 비롯한 청년 노동자의 공론화된 죽음엔 언제나 ‘침묵 속 죽음’이 뒤따른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20년 한 해에만 882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하였다. 그중 42명은 18~29세에 해당하는 청년들이다. 유가족들은 보통 현장과 분리되어 있다. 현장에 무지한 유가족들이 철저하게 대응 준비를 끝낸 사측과 급하게 합의를 본다. 사망 사유는 왜곡되고, 합의 과정에서 정보유출 금지 등 일말의 공론화 가능성을 틀어막는다. 이렇게 체제에 의해 은폐된 ‘침묵 속 죽음’이 탄생한다. 반면 이선호 노동자의 아버지는 8년간의 평택항 근로 경력을 바탕으로 현장의 작업 환경 실태와 사고 발생 직후의 대응 수단을 숙지하고 있었다. 평택항 사고의 공론화는 침묵으로 끝났을 죽음의 ‘예외’인 것이다.

  산업현장에서의 침묵 속 죽음은, 수면위로 드러난 노동자의 어깨 위에 올라서야 그제야 숫자로 기억된다. 의대생과 청년 노동자의 죽음을 천칭에 올릴 때, 노동자의 접시에는 구조적 모순을 끼얹어야 비로소 수평을 맞춘다. 산 자의 위계를 묘비에까지 세우고자 하는 체제를 향한 항변 없이는, 또 다른 무고한 죽음을 막을 수 없다.

 

최종현(사범대 지교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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