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목별 A학점 이상 10명 중 6명

기업 “학점만으로 변별 못 해”

정량평가 있는 대학원 입시엔 영향

 

 

  코로나19 확산 이후 3학기째 비대면 수업이 실시됐고, 고학점을 받은 학생 비율이 급증했다. 학점 인플레이션이 심각해졌다는 지적과 함께 취업 및 대학원 입시의 공정성, 코로나 이전 학번들과의 격차 문제 등이 부각되면서 학생들의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다.

 

  평가방식 제한으로 학점 상향

  ‘2021년 4월 대학정보공시’에 따르면, 전국 195개 4년제 대학에서 2020년 과목별 A학점 이상을 취득한 재학생 비율은 54.7%로 2019년 33.7%보다 21%p 상승했다. 본교에선 2020년 59.6%의 학생이 전공과목별 A학점 이상을 취득했다. 2019년 50.8% 대비 9%p 가량 상승한 수치다. 교양과목 학점의 상승폭은 더 컸다. A학점 이상 비율이 2019년 49.6%에서 2020년 62.7%로 13.1%p 상승했다.

  비대면 수업이 지속되자 본교 학사팀은 모든 학과에 절대평가 방식으로 성적을 산출하라고 권고했다. ‘권고’ 수준이기 때문에 적용 여부는 강의자가 자율적으로 정했으나, 대부분의 수업에서 상대평가 방식의 성적 부여 기준이 완화되거나 절대평가로 바뀌면서 학점 인플레이션이 나타났다.

  학생들은 학점 인플레이션이 “체감 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한다. 김지영(경영대 경영 20) 씨는 “작년 1학기의 경우 대면시험을 보는 강의가 거의 없었고, 과제 대체 혹은 비대면 오픈북 시험을 치렀다”며 “학습부담은 크지 않았는데 대부분의 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다”고 전했다.

  교수들은 학생들의 역량을 검증하는 데 한계가 생겼다고 말했다. ‘교양스페인어I’ 강의를 진행하는 김선욱(문과대 서어서문학과) 교수는 “언어 과목의 경우 수업의 3분의 1이 학생들의 회화 연습과 발표”라며 “코로나19 이후 줌 소회의실을 통해 학생들끼리 회화 연습을 하는데, 강의실에서 서로 마주 앉아 소통하던 당시에 비해 학생들이 충분한 연습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비대면 시험 방식에도 우려를 표했다. “이번 학기 처음으로 비대면 논술시험을 진행했는데, 부정행위가 있는지 알 길이 없다”고 전했다.

  고등교육 전문가인 신현석(사범대 교육학과) 교수는 “온라인으로 수업이 진행되다 보니 수업방식이 강의 중심으로 한정된다며 “마찬가지로 다양한 평가방식의 적용이 어렵기 때문에 학점 인플레이션이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엄격한 채점기준이 부재한 상황에서 교수자들은 코로나19 상황 등을 고려해 상대적으로 좋은 학점을 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너진 학점 신뢰도에 혼란 가중

  학점 인플레이션으로 학점 신뢰도가 하락하면서 취업 시장에서 학점을 평가하는 비중도 달라지고 있다. 한국전력공사 인사 제도부 이정호 부장은 “기업 입장에서는 학점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학점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인사채용에 반영하기가 더욱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또 “학점이 직무역량과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없다고 판단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아울러 “직무역량은 NCS와 같은 개별시험으로 평가하고, 자격증 등으로 가점부여를 고려한다”며 “전문직 수시채용 시 전공적합성을 살펴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참고사항일 뿐”이 라고 밝혔다.

  한편 학점이 합격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치는 법학전문대학원 입시의 경우, 학번 간 격차가 문제시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학교를 다닌 학생들은 훨씬 후한 학점을 받아 입시에 유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법전원 입시는 정량평가 비율을 매년 확대하고 있어 고학번 수험생들의 우려는 더욱 커져가고 있다. 3년째 입시에 도전하는 문과대 서어서문학과 13학번 A씨는 “19년 초시 당시 대형 법전원에 합격했으나 고사했다”며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한 학점 인플레이션 때문에 당시와 같은 성적으로 지금은 같은 학교 합격이 어렵다”고 밝혔다.

  비교적 높은 학점을 받은 20학번들도 마냥 기뻐할 순 없다. 자신의 성적이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와 앞으로의 학점 유지에 부담을 함께 느끼는 상황이다. 문과대 20학번 B씨는 “지난 학기 좋은 성적을 받았지만 시험 부담감이 적은 방식에 익숙해지다 보니 이후 대면시험을 볼 때도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전했다. 2020년 1학기 4.5의 학점을 받은 문과대 언어학과 20학번 C씨는 “코로나 상황 속 대부분의 학생들이 좋은 학점을 받아 학점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오히려 학점 유지에 대한 부담과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고등교육 평가의 본질 재고해야”

  고등교육에서 성적은 ‘수업에서 교수자가 목표로 세운 것을 학생이 얼마나 달성했느냐’를 평가하는 척도다. 신현석 교수는 “초·중등 교육의 교육과정과 평가가 표준화된 것과 달리 고등교육은 교수자의 전문성과 다양성에 기반해 운영된다”고 말했다. 교수자의 전문적이고 독립적인 판단에 의존하기 때문에 고등교육의 합리적인 평가방식에 대한 절대적인 표준은 세워질 수 없다. 이어 그는 “학점 인플레이션 현상에 대해 부정적인 확답을 내릴 수 없다”면서도 “학생들의 학점 상향이 지나칠 경우 학점 신뢰도가 떨어지는 등 평가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등교육 평가의 신뢰도 회복을 위해선 교수자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는 수준에서 과목별로 학생들이 수긍할 만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평가 요소를 다양화하고, 학생들이 제출한 성과물에 대한 판단 기준을 명시적으로 제시하는 방식으로 성적 신뢰도를 높이는 것이다. 물론 이 또한 교수자 개인의 역량과 재량하에서 이뤄져야 한다. 신현석 교수는 “교수자가 교육자로서의 소양을 갖추기 위해 자정적이고 선구적인 노력을 이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학점 인플레이션에 대한 고찰을 시작으로 학교 공동체에서 고등교육 평가 방식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와 성찰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박다원·장예림 기자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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