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온라인 쇼핑 없이 살 수 없는 몸이 됐다. 식료품 같은 일상용품부터 명품까지 손안의 휴대폰으로 5분이면 다음날 물건을 받는 시대가 된 지는 이미 오래다. 현대인에게 택배는 곧 일상이다. 현관문 앞에 구매물품이 도착하기까지 당신이 주문한 택배의 행적을 좇았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물류센터

  구인·구직 사이트에 거주지역+물류센터를 검색하자 총 996건의 채용 공고물이 쏟아졌다. 대부분 제목에 급구’, ‘일 쉬움’, ‘초보가능이라는 키워드가 포함돼있다. 구인글 홍수 속에 시급이 가장 높은 물류센터를 선택했다. 지원자격도 성별·연령·학령 무관이다. 야간조로 오후 7시부터 다음날 8시까지 근무하면, 식사시간 60분을 제외하고 총 12시간을 일해 152600원을 벌 수 있다시급은 12717, 2021년 최저시급인 8720원보다 4000원가량 높은 금액이다. 셔틀버스와 식사가 무료로 제공돼 반나절 바짝 일해서 받는 돈으로 나쁘지 않아 보였다. 간단한 신상정보와 근무 가능 요일, 연장 근무가능 여부를 정리해 문자를 보냈더니 5분 후 담당자에게 연락이 왔다. 그는 전화로 기본 출근안내와 출근 확인 애플리케이션 설치 방법을 알려줬다.

  18일 오후 550, 셔틀버스 탑승장소에 30여 명의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체 대기자들의 3분의 1은 여성이었다. 대부분이 2·30대 같아보였고, 중장년층도 간혹 보였다. 이미 무리를 지어 오늘은 빨리 왔네라며 인사를 나누는 이들도 있었다. 다른 탑승지에서 사람들이 더 올라타자 45인승 버스는 어느덧 만석이 됐다. 출발 30분 뒤, 체온계와 탑승 체크리스트가 앞사람에게서 넘어왔다. 버스 기사부터 관리자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자신이 앉은 버스 좌석, 체온, 연락처를 기록해야 했다.

  1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CJ 용인HUB. 물류센터는 크게 두 가지, 서브터미널(SUB)과 허브터미널(HUB)이 있다. 판매사에서 출발한 택배가 처음 향하는 곳은 각 지역 서브터미널이다. 서브터미널로 모인 택배들은 다시 허브터미널로 간다. 허브터미널에서는 서브터미널에서 온 택배를 다시 지역별로 분류해 서브터미널로 보낸다.

 

  물류센터에서의 하루

  신규 인원은 관리자를 따라 센터 옆에 설치된 컨테이너로 향했다. 컨테이너 내에서 또 한번 신분을 확인하고 건강 체크리스트를 작성했다. 혈압 측정도 필수였다. 이 과정 중에 혈압이 기준보다 높아 귀가조치되는 경우도 있었다. 40대 정도로 보였던 남성은 세 번의 측정 이후 한 번만 더 해보겠다고 애원했지만, 관리자는 단호하게 돌아가라고 말했다.

  결격사유가 없는 인원을 정리하는 관리자에게 분류 작업이 아닌 상하차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말하니, 이상한 눈초리와 함께 다시 생각해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버킷리스트라고 사정하니 바꿔줄 수는 있지만 중간에 그만두거나 역할을 바꿀 수는 없다하차는 너무 힘드니 상차 작업을 주겠다고 답했다.

  모든 확인절차가 끝난 오후 8, 나를 포함한 총 8명의 신규자를 대상으로 안전보건교육이 시작됐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물류센터에서 일하기 위해선 2시간 이상의 안전교육은 필수로 이수해야 한다. 이때 교육시간 또한 근무시간으로 인정된다. 보건실 위치, 안전모 착용법 등을 설명했지만, 주 내용은 실제로 해당 센터에서 일어난 안전사고를 토대로 어떻게 하면 이를 방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었다. 보통 사고 장소는 택배가 이동하는 긴 레일, 컨베이어 벨트였다. 분류작업 중 컨베이어 벨트에 착용하고 있던 액세서리가 빨려 들어가 부상을 입은 사례, 손이 빨려 들어가 손가락이 절단된 사례 등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분류작업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는 손가락 절단이었지만, 상하차의 경우는 사망이었다. 상하차 작업 중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라가 몸이 빨려 들어가 목숨을 잃은 사례를 듣는 순간, 누군가 책상 위에 써놓은 도망쳐라는 낙서가 눈에 띄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선 상자는 무조건 위로 잡아야 한다는 것, 물량이 넘치더라도 이를 처리하기 위해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서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계속해서 상기시켰다. 실제 이곳에서 발생한 사고라고 하니 주의해서 올바른 작업방식을 경청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남성은 설명내용을 허공에 직접 시연하며 주의 사항을 익혔다. 배운 내용을 점검하는 시험을 보고 나서야 2시간의 교육이 마무리됐다.

 

  택배의 정글, 물류센터

  곧 현장 관리자가 들어와 작업배치를 시작했다. 나를 제외한 여성 노동자는 모두 분류작업 파트에, 남성 노동자들은 모두 상차작업에 배정됐다. “이 언니 데리고 가.” 관리자는 마지막에 남은 기자를 현장 관리자에게 넘겼다.

  현장 관리자를 따라 들어간 센터 본관의 첫인상은 택배의 정글이었다.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자동으로 수천 개의 택배가 자동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현장 관리자를 따라 센터 내에서 설치돼있는 간이 사무실을 따라가니 안전모와 목장갑을 주고, 사진을 찍더니, 신상정보를 컴퓨터에 입력했다. 애플리케이션을 키라고 하더니 쓰지도 않은 휴식 카운트다운 버튼을 눌렀다. 30분의 휴식시간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 노동자가 버튼을 누르지 않고 휴식시간을 사용할 경우, 관리당국에게 노동자의 휴식을 보장하지 않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음을 미연에 방지한 것 같았다.

  몇 가지 확인절차를 마친 뒤 청원 지역에 배치됐다. 충청북도 청원으로 가는 택배를 화물차에 싣는 것을 보조하는 것이 주 업무였다. 중앙 컨테이너 벨트로 들어오는 택배를 벨트 앞에서 분류작업자가 낚아채 차량으로 들어가는 컨테이너 벨트 위 택배의 바코드를 찍고, 차량 안에서 택배를 쌓는 사람들에게 택배를 가져다주는 것이 상차보조자의 역할이다. 분류작업자 1, 상차 보조자 1, 상차 작업자 2명으로 총 4명이 화물차 한 대를 담당했다.

  본격적으로 스캐너를 들고 바코드를 찍으려고 하니 택배가 밀려오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스캔에 익숙하지 않아 스캔 후 택배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택배를 따라가며 스캔을 하는 모양새가 됐다. 바코드를 찍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찍은 물건들을 밀어주기까지 해야 해 조금이라도 속도가 느려지면 택배가 쌓였다. 택배를 다 처리하지 못해도 자동 컨베이어 벨트는 멈추지 않아 택배가 넘쳐 떨어지는 경우도 생겼다. 감당이 안 되면 물품을 옆에 내려두고 나중에 한꺼번에 처리해야 했다, 물량이 쌓이자 옆 라인에 있던 작업자가 와서 도움을 줬다. 나름의 노하우도 전수해줬는데, 박스를 벨트 중앙에 정렬하고 한꺼번에 몰아서 스치는 느낌으로 스캔을 하라는 것이었다.

18일, 기자가 CJ 용인HUB에서 컨베이어 벨트 위 택배를 정리하고 있다.

  그렇게 1시간 정도 흐르자 나름 감이 잡혔다. 물품의 종류까지 확인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A4 복사용지 박스가 연속으로 20개 이상 들어오는 순간에는 청원 사람들은 무슨 종이를 이렇게 많이 사는지’, 애꿎은 소비자가 미워졌다. 중간중간 용량이 가볍고, 상자 크기도 작은 신발 상자가 들어오는 순간은 가뭄에 단비처럼 느껴졌다. 발 마사지 박스가 연속으로 들어올 때면 센터를 뛰쳐나가고 싶었다. 아무리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물건을 미는 방식이더라도 각 10kg 이상 되는 상자 3개를 한꺼번에 여러 번 밀다보니 점점 어깨와 팔이 무거워졌다. 오후 11, 화물차 하나가 꽉 차서 출발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뿌듯해지는 것도 잠시. 5분 만에 텅 빈 차량이 들어왔다. 언제 또 저걸 채울까, 하고 막막했다.

 

  외국인 노동자가 선사한 휴식시간

  “쉬고 와.” 상차 작업을 하던 외국인이 작업 중 처음으로 건넨 한마디였다. 서툰 한국어로 나에게 쉬고 오라고 말해준 외국인은 27살 브라질 유학생이었다. “돈 벌어야 하는데, 알바 없어.” 코로나19로 인해 가뜩이나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 외국인 유학생이 일거리 찾기란 더욱 어려웠을 터다. 일을 시작한 지 2달 정도 됐다는 그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주일에 3번 이상 상하차 노동을 한다고 말했다. 덕분에 오후 1120, 시작한 지 1시간이 넘고서 쉬는 시간을 가졌다. 보아하니 이곳에서의 휴식은 물량이 적을 때, 눈치껏 알아서 쉬는 방식인 것 같았다.

  휴게공간 또한 간이 칸막이로 마련돼있었다. 5평 남짓한 휴게공간에는 테이블과 정수기 콘센트 등이 있다. 벽에는 휴게 인원을 5명으로 제한한다는 종이가 붙어있다. 쉬고있는 중에도 혹시나 물량이 많이 들어오는데 내가 없어서 곤혹스럽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편히 있을 수 없었다. 결국 10분 정도를 앉아있다가 다시 작업장을 찾았다.

 

  속도가 늦어지면 곧바로 빨리

  식사와 함께 잠깐의 휴식 시간을 가지고 나니 금세 1시간이 흘렀다. 컨베이어 벨트가 돌기 시작했고, 다시 미친 듯이 바코드를 스캔하고 택배를 옮겼다. 밥을 먹고 2시간 동안은 별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무거운 택배를 기준으로 물건을 밀어줄 타이밍을 계산했고,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물건을 언제 주워 앞으로 보내면 될지 눈에 그려졌다. 제한된 시간 내에 물건을 스캔하고, 밀어주는 것. 그게 상차 보조자 일의 전부였고, 그 이상 익혀야 하는 기술은 없었다.

  새벽 2시가 되니 밥을 먹어 반짝했던 체력은 어디 갔는지, 일은 익숙해졌어도 몸이 일을 따라가지 못했다. 허리는 끊어질 것 같았고,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으며 눈앞이 뿌예지면서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해졌다. 점점 속도가 느려지더니 다시 물건이 넘쳐 떨어지기 시작했다. 옆 사람들이 넘어오는 빈도수가 많아지면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총괄 관리자가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빨리빨리 하세요! 빨리빨리! 물건 보내야 할 거 아니에요!” 갈수록 몸은 안 따르고, 넘기라는 압박은 거세지니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컨테이너 하단에 볼록 튀어나온 부분을 피하지 못하고 부딪혔다. 나중에 집에 돌아와 보니 오른쪽 무릎 위에 멍이 2개 나 있었다. 안전수칙에서 귀가 닳도록 들은 물건은 박스 위로만 들어야 한다는 소리도 금세 잊고 손을 컨테이너 벨트에 가까이 댔다가 식겁했다. 다행히 사고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그토록 투철한 안전교육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새벽 3, 또 한 번의 휴식 시간이 돌아왔다. 쉬는 시간 동안 잠깐 마스크를 벗고 음료수를 마셨는데,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먼지 때문에 이곳에서 마스크는 필수겠구나 싶었다. 어느새 목이 따끔거리고 옷에는 먼지가 잔뜩 묻어있었다.

  새벽 4시가 되니 마지막 청원행 간선 차량문이 닫혔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 오후 10시부터 오전 4시까지 총 6시간 동안 3개의 차량에 물건을 실었다. 차량이 떠나고 안전펜스를 칠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나왔다. 옆에 있던 곤지암과 옥천도 안전펜스를 치며 마감을 알렸다. ‘이제 좀 쉴 수 있나생각하고 있을 때, 관리자가 나에게 따라오라고 말했다. 그렇게 첫 배정지 마감의 기쁨을 10분도 누리지 못한 채 바로 다음 지역인 서초A’ 구역으로 배정됐다. 지방의 경우 ·군별로 지역을 나누고, 서울은 지역구 단위로 그 안에서도 인원이 많은 지역은 AB로 또 구분했다.

 

  서울행 컨베이어 벨트는 멈추지 않는다

  서울 등 수도권 컨베이어 벨트는 활기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설상가상 물건이 벨트로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앞서 해결하지 못했던 상자들과 포대 자루가 300개 이상 쌓여있었다.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서초A’의 상차 작업자는 한 명뿐이었다. 중간중간 관리자가 와서 바닥의 포대자루를 컨베이어 벨트로 올려주는 역할을 해줬지만 작업자가 단 2명뿐이었다. 서초A행 택배들은 끊임없이 벨트 위로 올라왔다. 서초구 인구는 42만여 명, 그중 반인 21만여 명 중 누가 이렇게 택배를 시켰는지 놀라울 정도였다.

물류센터 내부, 컨베이어 벨트가 작동하고 있다.

  새벽 5시 마감이 끝난 다른 구역 작업자들이 서서히 서초A 지역에 몰려들었다. 2명으로 간신히 택배가 넘치는 것을 막고 있었던 구역에 3명이 더 붙으니 일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3명이 상차 보조, 2명이 상차를 하니 땅에 떨어져 있는 택배들 또한 처리가 가능했다. 어느새 나를 포함해 7명이 서초A 구역으로 왔다. 택배 옮겨주는 사람 2, 스캔해주는 사람 1, 물건 옮겨주는 사람 2, 상차하는 사람 2명이 모였다. 새벽 6시 결국 마지막 차량이 빠져나갔지만, 아직도 택배를 다 태우지 못했다. 결국 연장근무를 할 아르바이트생을 찾았다. 더는 여기 남아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물류센터 출구를 찾았다.

 

  애플리케이션으로 퇴근 버튼을 누르고, 다시 정거장으로 돌아가는 셔틀버스를 타니, 저녁에 같이 타고 왔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탑승 당시 간간이 들리던 수다는 사라지고 피곤한 기운만이 버스 안을 가득 채웠다. 휴대폰은 이날 내가 총 27000보를 걸었다고 증명해줬다.

  녹초가 돼 집에 도착하니 문 앞에 전날 주문해뒀던 여름맞이 샌들이 새벽 배송으로 도착해있었다. 택배 상자에 찍혀있는 바코드가 눈에 띄었다. 이 택배 하나에 얼마나 많은 손을 거쳤을까를 생각하니 새삼스레 더 애틋해졌다.

 

송다영 기자 forever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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