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기록한 종암의 가치

지역에 깃든 역사의 흔적

주민이 완성하는‘모두의 서재’

'종암서재'는 조지훈 시인을 시작으로 여섯 작가의 작품을 조명하며 종암동의 현대사를 되짚는다.

  동아리 일로 캠퍼스를 방문한 어느 날, 법학관 후문을 지나 집으로 향한다. 여느 때처럼 종암동 버스정류장에 앉아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버스에 올라타 창밖에 지나는 종암동 개천가를 바라보며 오늘을 돌아본다. 평범한 하루를 마쳤지만, 지금껏 발길이 닿았던 캠퍼스 일대는 마냥 평범한 세월만을 거친 것은 아니다. 오늘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한국전쟁부터 4·19 혁명, 산업화에 이르도록 역사적 변화를 직격으로 맞아왔기 때문이다.

  ‘문화공간 이육사’ 3층에 자리한 ‘종암서재’는 종암동을 배경으로 한 여섯 편의 문학 작품을 시간순으로 조명하며 지역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김하윤 ‘종암서재’ 기획자는 “서재라는 장소가 연구와 아카이빙의 공간이라는 점에서 착안했다”며 “종암동 모두를 위한 서재라는 뜻에서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종암동 일대를 엄습한 한국전쟁: 조지훈·박완서

  “의정부방면의 총성이 들려온다 / 교정의 스피카에서 전황보도가 떤다.”

  전시는 조지훈의 시집 <역사(歷史) 앞에서>에 수록된 <절망의 일기>로 막을 연다. 1950년 6월 26일 낮 두 시, 고려대에서 ‘시론(詩論)’을 가르치던 조지훈 선생의 귀에는 총성이 들린다. 이어서 전황 보도가 울렸을 때는 이미 전쟁의 비극이 캠퍼스에 들이닥친 뒤였다. 고려대가 있는 종암동 북쪽으로 미아리 전투가 발발했던 것도 같은 날이었다. 북한군은 미아리 고개를 넘어 서울로 침입했다가 후퇴 과정에서 시민들을 납치해 갔다. 이날을 ‘절망’으로 기억하는 것은 비단 조지훈 시인만이 아니었다.

  첫사랑을 회상하는 소설에서도 전쟁의 상흔은 지울 수 없었다. 박완서의 자전소설 <그 남자네 집>에는 작가가 살던 종암동 양기와집 대청마루 기둥의 포탄 자국이 등장한다. 이는 “도끼로 뽀개다 만 것처럼 흉측하게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고 묘사된다. 70여 년 전에는 평범한 가정집조차 한국전쟁의 유적지였던 셈이다.

 

4·19 혁명의 불씨를 퍼뜨린 종암동: 박경리·신영복

  “야단났어.” “뭐가?” “고려대학이 일어났어.”

  종암동에 서울대 상과대학이 자리했던 1960년, 서울대생들과 고려대생들이 4·19혁명의 거리로 나섰다. 박경리의 소설 <노을진 들녘>의 주인공 영재와 동섭은 고려대 학생들이 혁명에 동참했다는 신문 기사를 본다. 기사에는 고대생들이 “머리에 수건을 질끈 동여매고 구보로 달리고 있는 사진”이 실려 있었다.

  소설 속 인물들이 소식을 접한 시각, 당시 서울대 상과대 학생이었던 신영복은 4·19혁명 현장에 직접 나가 있었다. 신영복의 대담집 <손잡고 더불어>에 따르면, 오늘날 청와대로 불리는 ‘경무대’ 앞에는 시위 참가자들이 참혹한 죽음을 맞고 있었다. 당시 서울시청 앞 국회의사당에서 농성하던 상과대생들에게 소식이 전해지자 “가서 개죽음당할 필요가 없다”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저게 어째서 개죽음이냐”는 고함이 되받아쳤다. 종암동부터 함께한 신영복과 상과대 학생들의 시위대는 결국 경무대로 향했다. 장르를 넘나들며 문학 이 남긴 기록은 종암동이 우리 역사의 거점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한다.

 

과거와 현재의 ‘우리’를 잇는 종암동: 나희덕·박준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 눈이 뜨겁도록 올려다봅니다”

  전시는 현대사의 주요 사건을 지나 서울의 격변기에 종암동에 터를 뒀던 문학인의 삶으로 초점을 옮겨온다. 나희덕은 시 <못 위의 잠>에서 제비 가족을 보고 어릴 적 부모님 모습을 떠올린다. 어미 제비는 둥지 안에서 새끼제비를 재우며 잠들었고, 아비 제비는 못 위에서 홀로 존다. 이 모습을 본 화자는 실직하신 아버지가 종암동 버스정류장으로 퇴근하는 어머니를 마중했던 날을 기억한다. 시인은 아버지가 가족에게 느꼈을 미안함을 노래하며, 종암동에 스며든 자신의 유년기를 들려준다.

  박준의 <종암동> 역시 이곳에서의 삶을 담았다. 어느 날 화자의 아버지는 아들 집에 불쑥 방문해 눈물을 흘린다. 아버지는 “사십 년 전 종암동 개천가에 홀로 살던 할아버지 냄새가 풍겨와 반가워서 그런다”고 한다. 아버지의 종암동은 할아버지의 냄새로 기억 속에 각인됐다. 종암동이 시인들에게 추억을 불러일으키듯, 방문객들도 종암동이 각자에게 주는 의미를 되짚어보며 전시 마지막 순서로 발걸음을 옮긴다.

'종암서재'는 주민들이 만들어가는 '기억서재'를 끝으로 완성된다.

  ‘종암서재’는 주민들이 만들어가는 ‘기억 서재’로 마친다. 방문객들은 전시를 감상한 뒤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를 기록해 벽면에 걸어둔다. 할아버지를 추억하는 문구부터 코로나19 이전을 그리워하는 글귀까지. 주민들이 써 내려간 삶의 이야기는 여섯 작가의 기록을 이어받아 마침내 ‘종암서재’ 를 완성한다.

 

글 | 김영은 기자 zerois@

사진 | 유보민 기자 e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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