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2022년 3월 9일의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다. 벌써부터 많은 후보들이 국민 앞에서 자신의 장점과 대통령으로서의 적합도를 주장하면서 다양한 정책공약을 제시하는 중이다. 이러한 후보들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위해서는 혈연이나 지연, 학연 등을 따지기에 앞서 대한민국의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기준에 대해서 이미 다양한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산적한 과제들을 처리할 유능한 대통령은 경제 실무에 밝은 대통령이나 민생에 관심이 높은 대통령이 아니다. 그보다는 대한민국 최고의 유능한 인재들을 발탁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대한민국의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 대통령이어야 한다. 또한, 보수와 진보의 갈등 속에 분열된 국가의 역량을 합리적으로 조정해 대한민국의 새로운 발전을 견인할 대통령이어야 한다.

  그러면 누가 이런 중대한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들까지 섬기겠다고 약속하면서 통합을 강조했다. 그러나 결과는 민주화 이후 최고조에 달하고 있는 보수·진보 갈등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체 국민의 통합을 이룰 역량 있는 대통령, 즉 전체 국민의 공감을 모아내는 ‘시대적 과제’를 통찰하면서 비전을 제시하는 대통령이 요청되는 것이다.

  우리 시대를 규정하는 표현들은 ‘정보화 시대’, ‘저출산·고령화 시대’, ‘글로벌 시대’, ‘제4차 산업 혁명 시대’ 등 매우 다양하다. 이러한 표현들은 우리 시대의 특징적인 부분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시대적 과제가 무엇인지를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보화 시대에 필요한 기술의 발전, 교육과 법제 등의 개선이나 저출산·고령화의 파급효과를 면밀하게 분석하면서 합리적인 대응방안을 강구하는 것은 분명히 우리 시대의 과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다원적 산업사회의 각 부분에서 새로운 변화에 따른 과제들이 무수히 발생하고 있기에 이를 묶어서 전체 국민이 공감하는 하나의 비전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그러면 우리 시대의 비전은 무엇인가? 국민 다수가 희망하는 미래상을 보여주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 시대의 과제를 제대로 잘 수행한 후 얻게 되는 긍정적인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비전인가? 문재인 정부가, 아니 그 이전에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가 우리 시대의 비전을 뚜렷하게 제시한 바 있는가?

  역대 대통령들이 자주 강조하였던 민주화 및 이를 통한 정의, 공정의 실현은 시대의 비전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이념에 가깝다. 그러므로 정의나 공정의 실현은 국민의 공감을 전제하는 것이 아니며, 무엇이 정의이며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이 문제될 뿐이다. 반면에 우리 시대의 비전이란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핵심을 꿰뚫고 이에 대한 해결을 제시하는 것이어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최강국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점차 타성에 젖고, 안일해지던 미국을 일깨웠던 존 F. 케네디의 ‘뉴 프론티어십’이 시대의 요구를 통찰 했던 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도 이와 유사하게 민주화의 성공 이후 30년의 성과가 보수와 진보의 소모적 갈등으로 인해 허물어져 내리는 현실을 극복하고, 국민들의 공감 속에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을 견인할 수 있는 시대의 비전이 요청되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과제와 비전이 꼭 정치지도자에 의해 정리되고 제시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1960년 4·19혁명 직후에 ‘내각제 개헌’이 화두가 되었던 것이나, 1987년 6월 민주혁명 당시에 ‘대통령직선제 개헌’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하였던 것은 시대적 과제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보수와 진보의 도를 넘은 갈등과 분열이 국가적 위기를 야기하고 있다는 국민적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이 갈등과 분열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는 정치지도자를 국민들이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