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플랫폼·콘텐츠의 다양화로 출판환경이 변화하고 있다.

  종이책만 소비하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 출판계에는 다양한 유통 플랫폼과 콘텐츠들이 등장하고 있다. 변화된 출판 환경에 따라, 보다 견고한 저작권 보호 수단의 마련이 촉구되고 있다. 하지만, 불명확한 계약으로 인한 창작자들의 피해는 여전하다. 종이책 출판 계약과 함께 전자책 출판 계약이 의무적으로 체결되거나, 창작물을 영화, 뮤지컬 등으로 새롭게 만들 수 있는 권리인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이 출판사에 강제 위임되는 관행이 대표적이다. , 최근에는 밀리의 서재’, ‘리디 셀렉트와 같은 구독형 독서플랫폼에서의 불투명한 인세 정산 기준에 대한 논란도 제기됐다.

 

  출판권 계약에 강제되는 배타적발행권

  ‘배타적발행권이란 종이책이 아닌 전자책, 오디오북 등의 방식으로 저작물을 전송하는 권리로, 저작물을 인쇄해 복제, 배포하는 권리인 출판권과는 별개의 권한이다. 하지만, 출판계에선 종이책을 발행할 수 있게 하는 출판권 설정 계약에 배타적발행권이 종속된 것처럼 함께 체결되는 관행이 빈번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2020년 실시한 문학 분야 불공정 관행 개선을 위한 실태조사연구에 따르면 출판계약서나 문예지 원고 청탁서에 디지털 형태 전송권 내용이 함께 포함돼 있었다50.1%가 응답했다. 응답자의 절반이 출판권 설정 계약서에 전자책 발행 조항이 이미 포함돼 있는 계약을 체결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창작자의 선택을 제한해 계약자유의 원칙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

 

  출판권 설정계약에 배타적발행권 설정권이 포함되는 형태의 계약서는 확장된 출판콘텐츠 시장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이해관계를 반영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플랫폼이 분화되는 상황 속에서 명확한 계약기준 마련을 위해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에서 표준계약서를 제시했지만, 이 역시 전자책과 종이책 계약을 합친 통합 형태로 제시돼 실질적인 대안이 되지 못했다. 특히 출판권과 배타적발행권의 존속기한을 10년으로 지정한 조항은 계약 체결 시 창작자의 선택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반발이 컸다.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측은 성명서 발표를 통해 서로 다른 법적 고려가 필요한 창작물들을 일률적 계약 하에 묶어 두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도 1월 발표한 출판계 통합 표준계약서 반대 입장문에서 종이책과 전자책, 오디오북 등 명백히 다른 방식의 발행물들을 단 한 장의 계약서로 작성하게 하는 건 저작자의 저작권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매절계약에 부가 수익 놓치는 작가들

  최근 도서들은 단순 출판 외에도 영화, 연극 등의 2차적 저작물로 재창작되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매절계약과 같은 불공정 관행으로 저자들의 2차적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행태가 만연하다. ‘매절계약은 출판계약 시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출판사에 일체 위임하는 계약으로, 창작자의 저작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부적절한 관행이다. 매절계약은 판매 부진의 위험을 줄이고 계약 즉시 이용료를 정산할 수 있어 편리하지만, 적법한 방식이 아니다. 특히 신인 작가의 경우 매절계약 체결이 강제되기도 한다. ‘구름빵 사태는 창작물을 번역·각색·영상제작 등의 방법으로 새롭게 만들 수 있는 권리인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포함한 저작권을 출판사에게 일체 양도한 매절계약의 대표적인 사례다. 매절계약으로 피해를 입은 <구름빵>의 저자 백희나 작가도 계약 당시 입지가 좁은 신인 작가였다. 백희나 작가는 계약 체결 당시의 계약금만 받았을 뿐, 이후 인세와 뮤지컬, 만화 등의 창작물로 발생한 부가수익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김대현 한국작가회의 저작권위원장은 인지도가 부족하거나 신인의 경우에는 도서출판계약을 맺는 것 자체가 어려워 계약 시 을의 위치에 있는 경우가 많다불공정하더라도 계약을 맺는 것 자체로 만족하는 사례가 흔하게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출협의 표준계약서 속 ‘2차적 저작권 작성권 위임 조항은 매절계약처럼 저작권 분쟁을 일으킬 문제의 소지를 내포했다. 저작권자에게 처음으로 부여되는 저작 재산권의 일종인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이 출판사에 강제 위임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저자들의 저작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이 본래 창작자의 소유라는 것을 계약상에서 전제해야 하며, 양도의 경우 적법한 절차를 걸쳐야 한다. 김기태(세명대 디지털콘텐츠창작학과) 교수는 적법한 양도 방식은 저작 재산권 양도계약과 더불어 특약을 체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불안정한 구독형 독서 플랫폼 계약

  최근 구독형 독서 플랫폼의 소비가 늘어나고 있지만, 플랫폼에서 지급하는 인세의 정산 기준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구독형 독서 플랫폼은 이용자가 매달 일정 비용을 지불하면 플랫폼 내 전자책을 무제한으로 열람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종이책 한 권이 팔릴 때마다 인세에 반영하는 기존의 계약이 포용하기 힘든 형태다. 구독형 독서 플랫폼의 불투명한 인세 정산 구조로 인한 저자들의 피해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90년생이 온다> 저자 임홍택 작가는 전자책 콘텐츠 공급 계약의 불안정성으로 직접적 피해를 겪었다. 그는 구독형 독서 플랫폼의 인세 기준 설정에 창작자의 의견이 반영되지 못하는 행태를 지적했다. 임홍택 작가는 플랫폼에 게재된 작품의 다운로드 횟수 정보를 청구했지만, 플랫폼 관계자로부터 정보를 제공할 의무가 없다는 입장을 받았다플랫폼에 게재된 저작물에 사전 협의 없이 매절계약이 체결돼 있는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소설가 조정현 작가도 밀리의 서재에 내 책이 업로드돼 있다는 것을 최근에야 발견했다인세 정산을 받았지만 정산이 어떤 기준으로 이뤄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전자책 구독 플랫폼 예스24 북클럽 사업의 관계자는 인세는 출판사와 작가 간 논의되는 사항이기에 플랫폼 측은 작가에게 지급되는 인세 정산에 관여하는 바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밀리의 서재와 계약을 체결한 한 출판사 측은 구독형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이후 계약서에 별도 사항으로 명시해 창작자분들께 제작 동의를 받는 형태로 계약을 진행하고 있다현재 별도의 뚜렷한 계약 기준이 없는 만큼 표준계약서를 참고해 보다 구체적으로 개선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렇듯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무제한 구독 서비스의 명확한 정산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다양한 저작권 사용료 정산방식을 제정하기 위해 표준계약서에 구독 플랫폼 인세 정산과 관련한 조항을 마련했다. 하지만, 전자책 배타적발행권 설정계약의 하위 항목으로 기재되는 것에 그쳤다. 구독형 독서 플랫폼의 정산 구조는 낱권으로 팔리는 기존 전자책 서비스와는 유통 및 이용 방식이 다르다. 현재는 표준화된 기준이 없어 정해진 다운로드 횟수 당 전자책 한 권 분량의 인세를 지급하는 방식이나 콘텐츠 공급 계약 체결 시 한 번에 계약금을 지급하는 방식이 통용된다. 임홍택 작가는 새롭게 생겨난 구독형 독서 플랫폼의 판매 구조는 기존의 전자책 판매와는 다른 형태이기 때문에, 기존 전자책 출판 계약과는 차별화된 계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기태 교수는 구독형 독서 플랫폼과 같은 신생 서비스는 현장에서 어떻게 계약이 체결되고 있는지 자세히 알기 힘든 상황이라며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 표준계약서도 피드백을 받으며 개선해야 한다고 전했다.

  단순히 출판에만 머물던 과거와 달리, 다양한 유통 플랫폼이 등장하고 있다. 변화하는 출판문화에 맞춰 적합한 계약 기준 마련이 요구되는 와중이다. 출협은 지난 6월 기자간담회를 통해 문제 됐던 표준계약서 조항을 전면 수정하고, 창작자 권리를 보호하는 공정 계약 환경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김대현 위원장은 창작자의 저작권을 보호하고 계약상의 혼란을 줄이려면, 표준계약서도 꾸준히 개정해 나가야 한다표준계약서의 개정은 저작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명확하게 인식하는 데 도움을 주고, 출판사에게도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다원·이주은 기자 press@

사진 | 정채린 미디어부장 cherry@

인포그래픽 | 송원경 기자 bi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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