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자보 번역으로 활동 시작해

대학가 홍콩 연대 선두 지휘

박도형 대표는 “모두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으면 누구의 권리도 보장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도형 대표는 “모두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으면 누구의 권리도 보장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작년 겨울, 홍콩을 지지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로 대학가가 떠들썩했다. 2019년 10월 만들어진 ‘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모임(대표=박도형, 학생모임)’은 대학가 레넌 월 설치, 침묵시위, 가두행진 등의 홍콩 연대 활동을 펼쳐왔다.

  당시 학생모임을 이끌었던 박도형 대표는 국제연대를 알리는 ‘세계시민선언’을 창립해 홍콩 민주화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그는 “모두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누구의 권리도 보장받을 수 없는 세상에 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학생들의 홍콩 연대는 어떻게 시작됐나

  “홍콩 연대의 시작은 홍콩 시민들이 텔레그램에 게재한 웹자보를 번역하는 것이었다. 홍콩의 송환법 반대 시위가 활발하던 2019년 당시, 홍콩 시민들이 다양한 언어의 웹자보를 전 세계로 발송하는 텔레그램 채널을 알게 됐다. 이 채널을 통해 그 당시 언론에서 접하지 못했던 폭력적인 홍콩 내 실상을 마주했다. 웹자보를 번역해 홍콩의 모습을 알리는 일 정도는 대학생들도 할 수 있을 법했다.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 홍콩 시민들이 작성한 웹자보를 번역하는 일을 시작했다. 이 번역 모임에서 만난 학생들과 함께 SNS 활동을 넘어 오프라인에서 목소리를 내며 활동 범위를 넓혔다.”

 

- 대표적인 연대 활동은 무엇이 있나

  “2019년 11월 23일에 진행한 ‘홍콩의 민주주의를 위한 대학생·청년 긴급행동’이 우리나라 학생들의 대표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일주일 남짓한 홍보 기간에도 250명이 넘는 청년들이 명동 가두행진에 동참했다. 많은 사람들이 홍콩 민주화에 연대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언론에 많이 보도됐던 ‘레넌 월’ 역시 우리나라 학생들의 대표적인 홍콩 연대 활동이다. 레넌 월은 평화를 기원하는 문구를 포스트잇에 적어 벽에 붙이는 저항 운동의 일종이다. ‘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모임’에서는 대자보 형태로 레넌 월을 체계화했다. 대학가에 널리 퍼진 레넌 월은 홍콩시민들을 향한 우리의 연대를 보여준다. 다른 대학 학생들도 이 운동에 동참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여러 대학가에 레넌 월 설치를 부탁했고, 실제로도 고려대, 동국대, 부산대, 한국외대 등 많은 학교에 레넌 월이 생겼다.

  학생모임 활동을 중단한 작년 6월 이후로는 ‘세계시민선언’이라는 청년 시민단체에서 홍콩과의 연대를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 상황에 맞게 온라인 활동을 주로 기획하고 있는데 작년 8월에는 릴레이 홍콩연대 온라인 대자보 프로젝트 ‘누가 죄인인가?’를 개최했다. 홍콩과 연대하는 단체와 시민들이 쓴 대자보를 받아 세계시민선언 홈페이지에 전시했다.”

 

- 국가보안법 이후 1년, 어떤 변화가 있었나

  “홍콩의 민주항쟁을 이끌었던 민주화 운동의 주요 인사들이 체포되면서 연대가 점점 힘들어졌다. 최근에는 웹자보를 받던 텔레그램 채널에 게시물도 잘 올라오지 않는다. 운영자가 체포됐다는 글이 올라오거나 모든 게시물이 삭제된 경우도 있었다. 홍콩 민주화 운동의 주체는 결국 홍콩 시민들이고, 민주화는 그들이 나서야 가능한데 내부의 움직임이 줄어들다 보니 우리나라 학생들의 연대도 어려워졌다. 홍콩과 연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꾸준히 내고는 있지만, 언론에서 홍콩 시민들의 투쟁 보도가 잘 들려 오지 않아 우리나라 국민들의 관심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다.”

 

- 홍콩 연대는 한국 국제연대 역사에 어떤 의미를 가지나

  “홍콩 연대 이후 우리나라 안에서 국제연대 논의가 더 확장됐다. 활동을 하던 당시 국제연대는 단순히 전문가들 사이의 컨퍼런스 정도로 인식되는 낯선 의제였다. 때문에 국제연대에 대한 공론화도 거의 없는 상황이었는데 홍콩 민주화 연대를 계기로 우리나라에 국제연대라는 의제가 널리 알려졌다. 실제로 그 당시 우리나라 언론은 홍콩 민주화 운동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지만 학생들의 홍콩 연대 이후에는 다른 나라의 사례에 주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시에 국민들이 홍콩의 상황에 크게 관심 갖지 않을 것이라 여겨 홍콩 민주화 운동을 심층보도 하지 않은 점을 반성하는 현장 기자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의식도 홍콩 연대를 시작으로 변화했다. 이후 학생들은 미얀마 쿠데타, 탈레반 문제에 더 많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

 

글 | 유승하·조은진 기자 press@

사진 | 윤혜정 기자 sams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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