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거치며 확대된 시장

재개봉만의 매력 극대화

한국 영화보단 외화가 대세

 

배우 故장국영이 출연한 영화는 1993년 첫 개봉 이후 꾸준히 재개봉했다. 왼쪽부터 1993년, 2017년, 2021년 개봉한 <패왕별희>의 메인포스터

 

   <화양연화>의 국내 개봉을 시작으로 <중경삼림>, <해피투게더> 등 왕가위 감독의 영화 7편을 리마스터링해 재개봉하는 왕가위 특별전이 올해 초 진행됐다. 원작을 그대로 틀어주는 것은 아니다. 원작과 차별성을 두기 위해 영화 크레딧을 새롭게 제작했고, 원작의 의도와 리마스터링 과정에서 달라진 점에 대해 감독이 직접 설명하는 영상도 추가했다. 재개봉 특별전은 그 시절 홍콩의 풍경과 배우들을 그리워하는 중장년층뿐 아니라 고전 영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젊은 층의 반응까지 이끌어 냈다. 더불어 DVD, 포스터 등으로 구성된 패키지를 제작해 원작 팬들에 판매하는 월드 오브 왕가위도 상당한 판매고를 올렸다.

  2020년 국내 영화산업의 극장 매출액은 코로나19의 여파로, 2019년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5104억 원 수준으로 꺾였다. 이에 반해 2020년 재개봉 영화의 극장 매출액은 2019년에 비해 133.6% 증가한 146억 원으로 집계됐다. 위기 상황에서 재개봉 영화는 영화관의 숨통을 틔웠다. ‘다 아는 맛을 넘어서 더 좋은 맛으로 거듭난 재개봉 영화들은 대형 스크린, 리마스터링, 굿즈 등으로 떠나는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세우고 있다.

 

재개봉에 주목하는 영화관

  재개봉 영화는 기존 시장에서 비용이나 콘텐츠 수급 등 다양한 변수에 대응하는 완충재 역할을 해왔다. 이미 흥행한 영화를 재개봉하는 경우, 적은 투자 비용으로 안정적인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송영애(서일대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는 재개봉 영화는 상대적으로 판권도 저렴하고 홍보 비용도 덜 드는 반면 수익 안정성도 보장돼있어 리스크가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오래전부터 재개봉 영화는 이벤트성 기획전, 회고전 등의 틈새시장을 형성해오고 있었다. 2003년 개봉한 영화 <러브 액츄얼리>2013년 재개봉한 이후 2020년까지 총 다섯 차례 크리스마스 시즌에 재개봉해 안정적인 수익을 올렸다. 2004년 개봉한 영화 <이터널 선샤인>10주년 기념 재개봉 당시 49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으며 이례적인 재개봉 흥행 신화를 쓰기도 했다.

   코로나19 이후 영화산업 전반이 큰 침체기를 맞으면서 이전까지 극장 매출의 대부분을 담당하던 블록버스터급 대작과 할리우드 영화들이 개봉을 미루거나 취소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극장 개봉 이후 순차적으로 OTT 서비스 등의 부가시장에 진출하던 불문율도 깨졌다. 신작의 부재로 극장의 스크린은 비어갔다.

   비어있는 스크린을 채우고 운영을 이어가기 위해 극장은 재개봉 영화를 꺼내 들었다. 20203월부터 극장들은 각종 기획전을 더욱 적극적으로 도모하며 재개봉작들을 스크린으로 올렸다. 복합영화관인 CGV는 지난해 12, 재개봉 특별관인 을 오픈하기도 했다. 이에 관객들은 다시 극장을 찾기 시작했다. 실제로 2020년 재개봉작 전체 관객 수는 201만 명으로, 2019년 대비 약 160% 증가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는 기존 대형 신작 중심으로 돌아가던 영화계에 재개봉 영화가 침투해 큰 시장을 형성했다고 진단했다. 송영애 교수는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지만 재개봉 영화가 성행하기에 유리한 상황인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2021년 재개봉한 1994년 홍콩 영화 <중경상림>의 공식 스틸컷

차별화된 관람 포인트로 승부

   영화관은 재개봉 영화가 가지는 장점을 극대화하는 전략으로 대중에 어필하고 있다. 커다란 스크린과 웅장한 사운드가 극장의 강점인 것을 고려해, 풍부한 시청각 요소가 있는 영화를 재개봉작으로 선정한다. 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을 관객이 잘 느낄 수 있도록 해, 그들이 영화관에 와야 하는 이유를 인식하게끔 하는 것이다. 지난해 재개봉한 뮤지컬 영화 <위대한 쇼맨>은 화려한 영상미와 사운드트랙으로 30여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영화 <인셉션> 또한 막대한 제작비를 들인 대작으로, 대형화면에서 즐기는 시각효과를 앞세워 재개봉했다. 영화 <인셉션>을 관람한 이재범(·27) 씨는 영화의 웅장한 OST와 스케일을 즐기려면 영화관에서 보는 것이 효과적이라며 넷플릭스를 통해 모바일로 볼 때와는 확연히 다른 감흥이 있다고 전했다.

   리마스터링 작업 방식을 강조하는 것도 재개봉 영화만의 특별한 전략이다. 원작 영화가 가진 화질이나 음향상의 문제를 개선한 리마스터링 영화는 원작을 접했던 기성세대 관객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송영애 교수는 이미 봤던 영화라 하더라도, 향상된 품질에 매혹돼 극장에 찾아간 관객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 <화양연화>의 리마스터링 버전은 극장에 중장년층을 끌어들이며 지난 112일 박스오피스 2위에 오르기도 했다. 젊은 세대에게 리마스터링 영화는 새로운 영화로 다가온다. 조해원 한국영상자료원 영상복원팀장은 이전까지 필름 시대에 나온 영화들은 저해상도의 VHSDVD 정도의 매체를 통해서만 다시 볼 수 있었다“4K급의 고해상도로 재탄생한 영화들은 높은 화질에 익숙한 디지털 세대에게 훌륭한 고전 영화로의 접근성을 높여준다고 덧붙였다. 1994년 작 <중경삼림>의 리마스터링 버전을 관람한 이가은(·21) 씨는 선명하고 큰 화면에서 관람해서 그런지 옛 영화처럼 느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CGV의 영화굿즈 스토어 '씨네샵'에서 영화 <해리포터>의 굿즈가 판매되고 있다.

굿즈로 팬심 사로잡아

   영화 팬덤은 재개봉 시장의 매우 중요한 타겟층이다. 큰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는 올해 54DX로 개봉해 많은 원작 팬들을 극장으로 불러모았다. 스스로를 <해리포터>의 팬인 포터헤드라 밝힌 염진환(·33) 씨는 해리포터가 재개봉했다는 소식에 바로 극장으로 달려갔다재개봉은 마니아들이 다시 모여 소통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2003년 사망한 홍콩 배우 장국영이 등장하는 영화나 그를 추모하기 위한 장국영 특별전에는 꾸준한 팬들의 수요가 있다. 라제기 기자는 특히 코로나19 상황에서 극장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충성심이 강한 마니아적 성격을 띤다고 말했다.

   영화 굿즈 마케팅은 팬덤을 이용한 대표적인 홍보 방법으로, 영화관은 굿즈 판매를 통해 적지 않은 부대수입을 올린다. 재개봉 영화 <캐롤><패왕별희 디 오리지널>은 일반 티켓보다 비싼 가격으로 관람권과 굿즈를 함께 판매하는 굿즈 패키지 상영회를 개최했다. 이는 빠른 매진과 함께 많은 굿즈를 수집하려는 팬들의 n차 관람을 이끌어내며 흥행에 성공했다. 영화 상영기간에만 판매해, ‘한정판의 성격을 띠는 프로모션용 굿즈도 있다. 세 차례 재개봉한 영화 <라라랜드>는 상영 시마다 오리지널 티켓, 엽서 세트 등 다양한 굿즈를 출시하며 팬들의 구매 욕구를 부추겼다. 라제기 기자는 프로모션용 굿즈는 부가상품에 대한 판권을 구매할 필요가 없어 극장에게 경제적인 이득이라며 동시에 팬들의 수집 욕구를 이끌어내는 효과를 가진다고 말했다.

 
영화 <동감> 공식 포스터

 

한국 영화 진흥 위한 노력도

   재개봉 영화 사이에서 한국 영화의 비중은 낮은 편이다. 2020년 기준 가장 흥행한 재개봉 한국 영화는 <동감>으로, 5100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영화 <위대한 쇼맨>3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것에 비해 턱없이 적은 수치다. 흥행 안전성이 높은 영화를 선호하는 극장의 특성상, 외국 영화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블록버스터급 외화들이 수백 개의 스크린에서 재개봉한 반면, 대다수의 한국 영화는 적은 마니아층으로 인해 100개 미만의 스크린에서 재개봉하는 경우가 많았다. 송영애 교수는 한국형 블록버스터는 2000년대 초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다그 전에 개봉한 영화들의 경우, 다수의 관객층을 노릴 만한 재개봉 영화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외화에 비해 한국 영화의 재개봉 비용이 상대적으로 비싼 점도 원인으로 작용한다. 한국 영화는 당시 제작사가 문을 닫은 경우가 많고, 인지도에 따른 홍보마케팅 비용도 비싼 편이다. 라제기 기자는 “CJ나 쇼박스 같은 국내 대형 투자배급사는 여전히 신작 개봉에 초점을 두는 편이라며 마케팅에 신경을 쓰는 등 정교한 과정의 한국 영화 재개봉은 이뤄지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 영화들은 흥행하는 외화들이 갖는 로맨스, 음악 등의 장르적 특성과 거리가 멀기도 하다. 영화의 배경이 국내인 경우가 대다수라, 대중들은 장소가 촌스럽다고 인식하기도 한다. 배급사 다자인소프트관계자 A씨는 과거의 한국 영화는 마냥 올드할 것이라는 편견 때문인지 젊은 관객들의 호응이 적은 편이라 아쉽다고 밝혔다.

   한편 훌륭한 한국 영화를 재개봉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3CGV는 한국 영화 전용 재개봉관인 시그니처K’를 출범시켰다. 매월 새로운 테마로 기획해 2000년대 전후의 한국 영화를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선보이고 있다. 시그니처K가 추진한 한국 영화 리마스터링 프로젝트에 참여한 콘텐츠존의 장지욱 대표는 훌륭한 과거의 한국 영화들이 극장에서 빛을 보고, 재도약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타격 속 일종의 고육지책으로 재개봉 영화를 상영했던 작년과 달리, 이젠 재개봉 영화가 가지는 의미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고 있다. 조해원 팀장은 각종 기획전과 함께 대담 행사 등을 진행하며 관객들과 소통하고 싶다이는 가치 있는 영화 자료들을 후대로 전승하는 긍정적인 역할도 수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송영애 교수는 팬데믹 이후 일시적인 대규모 재개봉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다양한 복원전, 회고전 등이 꾸준히 진행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현민 기자never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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