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로 그려내는 안산의 풍경

연극은 또 하나의 '기억법'

"작품으로 세월호 아픔 치유해"

극단 동네풍경의 김규남 대표는 안산의 정체성이 곧 동네풍경의 정체성이라고 말했다.
극단 동네풍경의 김규남 대표는 "안산의 정체성이 곧 동네풍경의 정체성"이라고 말했다.

 

청년 연극인들이 모여 2013년에 창단된 극단인 동네풍경은 안산의 문화 자원을 활용한 다채로운 연극으로 지역주민의 마음을 울렸다. 이들에게 안산은 작품의 무대이자 배경이며 소재다. 무분별한 개발로 황폐해져가는 안산 형도 주민의 삶을 그려낸 <갯벌엄마 담담이>, 소년 수용소인 선감학원의 아픈 역사를 소재로 한 <선감학원> 등 안산의 기억과 이야기가 담긴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 <별망엄마>와 같은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공연을 통해 안산의 아픔을 위로한다. 김규남 동네풍경 대표는 안산의 정체성이 곧 동네풍경의 정체성이라며 주민들이 누구나 공감하고 치유 받을 수 있는 공연을 계속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안산의 작은 연습실에서 김규남 대표를 만나 동네풍경이 그려내는 안산의 모습과 지역 청년 연극인으로서의 삶에 대해 물었다.

 

-  '안산'에서 극단을 창단했는데

  “대부분의 연극인처럼 학교 졸업 후 당연히 서울 대학로에서 연극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서울예대에 재학 중이었는데, 어느 날 동아리 친구들과 연극 공연 홍보를 위해 학교 근처 동네에 포스터를 붙이러 나가게 됐어요. 단골 밥집 사장께도 공연을 보러 오라고 전했는데, 사장님이 한 번도 연극을 본 적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연극이 대중들의 일부만 향유하는 문화가 됐다는 사실이 충격이었죠. 대학로가 아닌 지역의 주민들도 모두 공연을 즐겼으면 하는 마음에, 학교 ‘'밖'으로 나가 공연을 하기로 결심했어요. 첫 공연은 동네 공원에 있는 허름한 무대에서 열었어요. 열다섯 분 정도 와주셨는데, 그중에는 난생처음으로 연극을 관람한 할머니가 계셨어요. 공연이 끝난 후 저한테 고맙다고 인사를 하시면서, 언제 다시 공연을 하는지 물어보셨는데, 굉장히 뿌듯했죠. 첫 공연을 계기로 안산 지역에 있는 주민들 앞에서 공연을 하겠다는 결심이 확고해졌고, 마음 맞는 학교 친구들과 함께 '동네풍경'을 창단했습니다.”

 

동네풍경이 들려주는 안산의 이야기

  동네풍경의 무대를 보면 안산의 과거와 현재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로맨틱 니콜라이>는 '니콜라이'라는 고려인 청년의 삶과 사랑을 그려낸 동네풍경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고려인은 구소련 지역에 거주하는 한국계 사람들이다. 안산 선부동의 '땟골마을'은 3000여 명의 고려인들이 이주해 모여 살고 있는 한국 내 고려인 최대 거주지다. 김규남 대표는 "외국인 노동자나 고려인들을 다룬 기존 작품들은 무겁고 진지한 경향이 많았다"며 "로맨틱 코미디 장르로, 보다 활발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신선한 무대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동네풍경은 땟골마을에 직접 방문해 고려인 주민들 앞에서 <로맨틱 니콜라이>를 선보였다. 한국말이 서투른 주민들이 많았는데도 많은 고려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공연을 관람했다. 안산 원시동에서 발견된 두 개의 내시 분묘를 소재로 한 <내시들>, 안산의 예술가 단원 김홍도와 표암 강세황의 이야기를 다룬 <그 곳 선비들> 등 지역의 유산들을 연극을 통해 쉽고 재미있게 풀어냈다.

안산 청문당에서 공연한 <그곳 선비들>

  김규남 대표는 주민이 쉽게 공감하고 몰입하도록 안산을 작품 소재로 삼았다고 말한다. "자기 주변의 이야기를 담았기에 안산 주민들은 공연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어요. 지역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지역민을 만났을 때 특별한 감동이 느껴집니다. 공연에 푹 빠진 관객들의 시선과 표정들이 특히 인상에 남아요. 그런 감정들이 계속해서 무대를 통해 안산의 이야기를 작품에 표현하는 원동력이 됐죠."

 

아픔을 극으로 승화하다

  <별망엄마>는 고기잡이를 하러 바다로 나간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가 결국 산이 됐다는, 안산의 '별망산 설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동네풍경은 별망산 설화를 각색해, 바다로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그려내며 세월호의 아픔을 무대에서 표현했다.

  “2013년에 안산 문화재단의 청소년 극단 고등어를 지도한 경험이 있어요. 2014417일이 첫 공연 날이었는데, 공연 하루 전날인 416일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어요. 취소를 고민하다가 결국 공연을 하게 됐는데, 공연 당일에 극단 단원의 친구들이 모두 상복을 입고 공연을 보러왔어요. 그 친구들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른 채 공연을 보고 있는 걸 보는데, 복잡한 마음이 들었어요. 이 아픔을 오래 기억하고, 보듬을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하다가 자연스럽게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됐습니다.”

  이후 김규남 대표는 세월호 유가족 단원으로 구성된 극단 노란리본의 작품을 작업했다. “안산에 있으면 세월호에 관한 기억을 마주할 수밖에 없어요. 그날 이후로 세월호가 극단에게 하나의 정체성이 됐어요. 안산 지역에 있는 어떤 이야기를 하든 세월호를 녹이게 돼요. 노란리본과 함께 작업하게 된 이유도 마찬가지예요. 연극은 유가족들과 동네풍경이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해 선택한 하나의 방식입니다. 우리의 무대를 통해 안산의 아픔이 기억되고 치유되기를 바랐어요.”

 

- 지역 연극인으로서 겪는 아쉬움은

  “서울은 타 극단이나 다른 장르의 예술가와 교류할 기회가 많은 반면, 지역은 그런 기회들이 턱없이 부족해요.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연극인들이 많이 없을뿐더러 플랫폼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이죠. 그러다 보니 지역 극단들은 자신들이 관성적으로 해왔던 작품 스타일들에 계속 매몰되기도 해요. 예술인들이 안산 지역에 방문했을 때 함께 작업할 수 있는 시스템이 문화재단 차원에서 갖춰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또, 안산의 경우 연극을 공연할 수 있는 전문 민간 소극장이 없어요. 그나마 안산문화예술의 전당에 소극장이 있긴 하지만, 이마저도 교외 지역에 있어 접근성이 좋지 않아요. 공간이 부족하다 보니 단기성 공연만 하게 되고, 한 작품을 반복해서 공연하는 레퍼토리 구축이 어려워요. 극단들이 자유롭게 공유할 공간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 대중에 바라는 바가 있다면

  “다양한 연극 생태계 조성을 위해서 지역 극단은 반드시 있어야 해요. 앞으로 지역민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주민에게 사랑받는 지역 극단이 많이 생기면 좋겠어요. 그런 극단들이 좋은 공연을 지속적으로 만들고 활발히 활동해나가면 제2의 대학로, 3의 대학로가 각 지역에 생길 것입니다. 전국 각 지역마다 치열하게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고, 계속해서 막이 오르는 공연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시면 좋겠어요.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동네풍경을 들으면 안산 주민 누구나 우리 동네 대표 극단이라고 떠올리는 극단이 되고 싶어요. 앞으로 안산에 소극장을 만들어서 주민들과 더 가까이서 소통할 공간을 마련하고픈 소망이 있습니다.”

 

'416생명안전문화제'에서 공연된 동네풍경의 거리극

 

글 | 이주은 기자 twoweeks@

사진 | 문도경 기자 dodo@

사진제공 | 극단 동네풍경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