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허브소금 등 생산품 판매

연구시설 개선에도 성과 보여

  “작은 씨앗이 자라서 많은 걸 돌려주는 게 참 신기해요.” 고려대 부속 농장(농장장=조기종 교수)에서 취미로 주말농장을 가꾸고 있는 정원철(여·63) 씨가 말했다. 고대 농장은 본교 농업대학의 실습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1960년에 조성됐다. 이후 학과·학부의 거듭된 개편을 거쳐 현재의 생명과학 대학에선 그 활용도가 낮아졌다. 하지만 고대농장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나름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추석을 맞아 분주한 월요일 아침의 고대농장을 걸어봤다.

  캠퍼스에서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 반이면, 예상치 못한 곳에서 ‘우리 학교 땅’을 밟을 수 있다. 경의중앙선 도심역에 내려 양쪽으로 나란히 녹음이 진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빨간 벽돌 기둥에 새겨진 ‘고려대학교 부속 실습 농장’ 표지가 방문객을 맞는다. 길을 쭉 따라가자 청명한 하늘과 탁 트인 농장이 이어졌다. 마주치는 사람 없이, 풀벌레 소리를 일행 삼아 걷기를 20여 분. 붉은 열매가 알알이 맺힌 산딸나무, 낡고 빈 축사와 정성스레 가꿔진 꽃밭을 지나니 사무실과 체험 농장이 보였다. 

  고대농장은 약 36만 5000m2 규모로, 논밭과 수목원, 저수지, 각종 체험장과 연구시설로 구성돼 있다. 전웅배 농장기획관리부 차장을 포함한 여섯 명의 직원이 이곳 고대농장을 돌보는 중이다. 논밭과 허브농원에서는 주로 쌀과 허브 가공품, 들기름 등을 생산한다. 매년 명절이면 이곳 생산품을 위주로 추석선물세트가 꾸려진다. 고대농장에서는 과거 축산팀을 두고 가축을 기르기도 했지만,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지금은 빈 축사만이 남아있다. 지역 어린이들의 생태교육을 진행하던 생태체험장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실질적인 운영을 멈췄다. 주말농장인 자연학습장 또한 함께 타격을 입었지만 꾸준히 이어져 오던 발걸음은 끊기지 않았다.

6일 '자연의향기 농원'에서 최모 씨가 밭을 가꾸고 있다.
6일 '자연의향기 농원'에서 최모 씨가 밭을 가꾸고 있다.

 

  자연학습장으로 걸음을 옮기자, ‘쭌이네 농장’, ‘자연의향기 농원’ 등 농장 푯말들이 눈에 들어왔다. 푯말 뒤에는 색색깔의 채소들이 가을볕을 받으며 자라나고 있었다. 자연학습장 참여를 신청하면, 소정의 회비를 내고 5평 정도의 구역을 배정받아 자유롭게 작물을 키울 수 있다. 인근 유치원을 비롯해 지역 주민과 교우들이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밭을 방문한다. 개장 초기부터 자연학습장에 참여해온 정원철 씨는 “처음엔 아이들과 함께하려 시작했는데, 아이들이 대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나는 계속 오고 있다”며 “가만히 풍경을 보며 쉬고만 있어도 너무 좋다”고 말했다. ‘자연의향기 농원’ 푯말 뒤에서 열심히 풀을 베던 최모 씨 또한 고대농장을 향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2006년부터 16년째 농장을 돌보러 방문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밭 가꾸는 걸 좋아해서 짬이 날 때마다 와요. 구역 하나로는 모자라서 두 구역이나 돌보죠.”

  건너편 논에는 가을 추수를 기다리는 벼들이 이삭을 내놓고 푸르게, 또 노랗게 각자의 진도로 익어 가고 있었다. 수확된 벼는 가공해 수확 직후와 설날에 주로 판매한다. 전웅배 차장은 “지하수로 물을 대는 방식이라 기상 상황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며 “올해도 농사가 잘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논에 가려진 작은 공간을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갔다. “지난 모내기 행사 때 총장님과 부총장님이 모를 심으러 오셨습니다. 원래라면 빈 부분을 채워야 하는데, 올해는 그냥 뒀어요.”

허브농원 속 라벤더가 가을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허브농원 속 라벤더가 가을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연잎차가 만들어지는 연잎밭을 지나 허브 농원에 들어서자 보랏빛 라벤더가 넘실거리고 향기로운 허브 향에 취한 벌들이 춤추고 있었다. 이번 추석선물세트의 주요 품목은 이곳에서 생산된 허브를 이용해 만든다. 사무실에는 판매를 앞둔 허브 소금, 허브 오일과 허브식초가 예쁘게 포장돼 차곡차곡 쌓여 가고 있었다. 직접 재배하고 수확한 허브가 세척과 자연건조를 거쳐 유리병에 담긴다. 허브 외에도 추석선물세트 생산품은 대부분 고대농장에서 생산되는 친환경·무농약 농산물로 만들어진다.

  고대농장은 연구시설로서의 가치도 찬찬히 되찾아나가고 있었다. 과거에는 시설이 낙후돼 연구 환경이 열악했다. 하지만, 정비하고 보완해가며 고대농장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본교 교수가 2017년 1명에서 현재 8명으로 크게 늘었다. 실제로 농장 곳곳에는 육상 생태계 관리기술 개발 연구, 지중환경 관리기술 개발 연구 등 다양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전웅배 차장은 “본교 오정육종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연구나, 남양주시와 협력해 진행하는 연구사업도 추진 중에 있다”고 덧붙였다. 농장에서 연구를 진행 중인 조호영(이과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농장 측에서 관리와 지원에 신경을 써 줘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가을학기 개설된 ‘인문융합세미나’ 02분반에서도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학습을 위해 농장 답사를 계획하고 있다. 

  농장은 한산했지만, 가을 수확철의 풍성함을 만끽할 수 있었다. 바쁜 일상 속 짧은 여유를 선물해 준 고대농장은 마지막까지 따뜻했다. 돌아가는 길, 짧은 한마디가 기자들의 발걸음을 돌려세웠다. “역까지 트럭 태워 줄까요?”

 

글 | 이시은 기자 scene@

사진 | 김예락 기자 emancipate@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