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좀 뚫어져라 쳐다봐.”

  민망함이 섞인 핀잔을 들으면 서운한 티를 내며 눈을 내리깐다. 흘끔흘끔 쳐다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시선을 거두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눈은 세상을 바라보기 위한 기관이다. 인간은 외부 정보의 80%를 시각에 의존하니, 대상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상대가 시선을 돌려 나를 마주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빠른 반사작용으로 눈이 휘어질 만큼 웃어 버리거나 웃긴 표정을 짓는다. 호의적인 인상을 주고 동시에 아이컨택을 기피하려 는 일종의 전략이다.

  아이컨택의 중요성은 이미 질리도록 들었다. 다른 이의 눈을 피하는 행위는 비굴한 태도로 비치기 마련이다. 아이컨택이 익숙한 사람에게는 ‘당당하고 자신감 있다’는 칭찬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소심하고 음침하다’는 뒷말이 따르곤 한다. 타인의 호감을 얻기 위해서든,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서든. 관계 형성에 있어 아이컨택은 피할 수 없는 상호작용이다.

  약육강식의 질서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든 동물은 진화를 거듭하며 특유의 눈을 구축해냈다. 그 결과 소형 맹수류인 고양이는 세로 동공을, 초식동물인 염소는 가로 동공을 갖게 됐다. 시선이 향하는 곳을 감추려는 듯 동물의 눈은 눈동자로 가득 들어찼고, 단 하나의 예외는 인간이다. 흰자위와 눈동자의 구분이 뚜렷한 인간의 눈은 타인과의 소통의 창구로 기능했다. 인간은 자신의 생존 전략으로 감추기가 아닌  드러내기를 택했다.

  우리의 눈은 대상을 바라보는 장치일까 대상에게 비치는 장치일까. 두 가지의 기능을 모두 수행한다는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다. 인간이 구축해온 생존전략에 반기를 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내게 아이컨택은 불편하다. 타인과 눈을 맞춰야 할 때, 더 이상 사람 좋은 웃음으로 비껴갈 수 없음을 절감한다.

  고개를 들어 거울 속의 나와 아이컨택을 시도한다. 뚜렷하게 대비되는 흰자 위와 검은자위, 언뜻 드러난 실핏줄, 눈동자 안에 희미하게 비치는 내 모습. 보편적인 인간의 눈이다. 이번에는 시선을 돌려 타인을 마주한다. 어설프게 미간을 노려보다 시선을 바로 하니 상대의 눈이 보인다. 타인의 눈에 비친 나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대상을 바라보기, 대상에게 비치기. 그리고 나를 바라보기. 다른 하나의 기능이 기대어 천천히, 그 눈에 더 집중해보려 한다.

 

이현민 기자 neverdie@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