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Q정전>을 쓴 중국 작가 루쉰이 일본에서 유학하다가 돌아와 고향 집에 갈 때였다. 배를 타고 가며 뱃사공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뱃사공이 루쉰에게 말했다. “선생님, 중국어 참 잘하시네요.” 루쉰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저 중국인입니다. 우리는 같은 고향 사람이고요.” 뱃사공이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 참 농담도 잘하십니다.” 뱃사공은 루쉰을 일본인으로 본 것이다.

  뱃사공은 왜 루쉰을 중국인이 아니라 일본인으로 본 것일까? 콧수염 때문이었다. 루쉰 콧수염이 일본인 콧수염이라는 거였다. 그 무렵, 중국에는 콧수염으로 사람을 감별하는 게 유행이었다. 어느 민족주의자이자 애국자인 지식인이 이르길, 중국 전통 콧수염은 본래 끝을 아래로 늘어뜨리고, 일본 콧수염은 끝을 위로 치켜올린다고 했다. 콧수염만 보면 이 사람이 일본인인지, 겉은 중국인이지만 속은 일본인인 친일파인지, 아니면 애국적인 진짜 중국인인지 금방 안다는 거였다. 당시 루쉰의 콧수염은 끝이 위로 올라가 있었다. 그러니 지식인이 아닌 시골 뱃사공조차도 루쉰이 분명 일본인이거나 적어도 친일파 중국인이라고 판정한 것이다.

  나중에 루쉰은 수염 끝을 위로도 아래로도 쳐지지 않게 똑바로 잘랐다. 끝이 아래로 처지면 국수주의자라고 지목을 당하고, 위로 올라가면 친일파로 비난받는 걸 피하기 위해서였다. 시비가 될 소지를 아예 없애는 일이기도 했고, 가장 안전했다.

  예전에 루쉰 글을 읽을 때는 그저 옛날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그런데 미처 몰랐다. 이게 지나간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코로나 시절 밥집 가는 것도 무섭지만, 스시를 먹기도 무섭고, 양꼬치에 칭다오 맥주를 마시기도 무섭다. 정치적 입장이 다르면 짱깨 친중파나, 토착 왜구 친일파로 몰아붙이는 바람이 거세서, 이러다가는 스시나 양꼬치만 먹어도 친일, 친중파로 몰릴 것 같다. 그러니 만사불여 조심하는 게 상책! 친일파든 친중파든 매국노이기는 마찬가지일 터, 안전하게 청국장이나 햄버거를 선택하는 게 상수다. 이제야 알겠다. 온 나라에 국뽕이 넘치고, 2021년 퓨 리서치 센터 조사대로 한국이 세계에서 제일가는 친미 국가가  된이유를. 친일파나 친중파 매국노로 몰리지 않으려는 생존 전략이로구나!

  루쉰의 일자 수염 사진을 다시 본다. 억지 일자 수염 때문에 스타일 다 구겨졌다. 그래도 한 개인의 구겨진 스타일은 수염이 다시 자라면 바로 잡을 수 있다. 그런데 개인이 아니라 한 나라의 스타일이 이렇게 구겨지면 그 구김살을 어떻게 바로 잡을까? 앞으로 청국장과 햄버거만 먹고 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서, 그저 두려울 뿐이다.

 

<야초(野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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