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얇은 꽃잎 한 장이 경계를 훌쩍 넘는 것과 같은 용맹함을 가졌다.

  그런 고양이를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은 ‘새로 거듭나야 하는 괴로움’이다. 한 발자국만 내디디면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난간 위에서, 이 작은 동물은 신의 눈동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푸른 샛별만큼 거듭나야 하는 것이 괴로워서 소리 내 울고 있다.

  이 시를 쓴 박서원 시인도 평생을 난간 위에서 두려워했고, 지독하게 외로웠다. 이리저리 생채기 난 몸과 마음을 움켜쥐고 멈추지 않고 썼다. 2021년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시인이 세차게 펄떡대는 고통을 쓰다듬으며 쓴 시를 읽고, 그저 조용히 탄식하는 것. 비쩍 말라비틀어진 공기가 목구멍을 집어삼킨다.

  모두가 거듭나야 하는 괴로움을 가지고 있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 나의 원동력은 질투였다. 나보다 조금 위에 있는 사람을 보며 ‘나는 왜 더 잘하지 못하지’, ‘나는 왜 더 버티지 못하지’하고 부글부글 끓는 마음을 장작 삼아 달렸다. 세상에는 내 위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장작은 마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하니 몸에는 온통 그을음만 남았다. 그러다 나를 무너트린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나’ 였다는걸 알았다. 이제 나는 다른 이가 아닌, 어제의 나를 뛰어넘고 싶어서 달리고 있다.

  이 시를 두려워질 때마다 꺼내 본다. 잘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 눈앞의 기회가 망설여질 때, 그렇게 마음이 작아질 때마다 한 줄 한 줄 읽는다. 그리고 난간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내게도 위대한 힘이 솟구치길 바란다. (물론 고양이처럼 날카로운 발톱이나 예민한 코는 없다.) 

  외로움을 오래 씹어 삼키면, 단단한 두려움이 된다. 이따금 입 밖으로 감정을 꺼내서 야옹야옹 울어도 보고, 찬찬히 들여다봐야 다음 목적지가 떠오르는 것 같다. 시인이 홀로 삼켰을 외로움, 그리고 거듭나는 괴로움을 잊고 싶지 않아서 오늘도 난간 위의 고양이를 떠올린다. 난간이 두렵지 않은 멋진 고양이. 그 자체로 용감한 고양이를.

 

김혜나(문스대 문화콘텐츠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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