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초언니>로 70년대 대학가 회고
국내 여성 최초 시사지 편집장 지내
“올레길로 남,북 연결 꿈 꿔”

 

  ‘올레뽕’, ‘올레폐인’, ‘올레이민’··· 고향 제주에서 걷기 시작한 서명숙(교육학과 76학번) 제주올레 이사장은 대한민국에 올레신드롬을 일으켰다. 26개의 코스, 425km의 길이로 이뤄진 제주 올레길은 국내 도보 여행의 출발점이다. 2007년 제주 종달리에 첫 코스를 개장한 이래, 올레길의 한 해 방문객은 100만 명이 넘는다. 23년 간의 기자 생활. 지칠 대로 지쳐 휴식을 취하기 위해 택한 걷기였지만, 서명숙 이사장은 그로 인해 전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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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은 "남과 북을 잇는 '피스올레(peace olle)'길을 조성하는 게 꿈" 이라고 말했다.

 

영초언니와 함께 한 긴급조치시대

  1976년 본교 교육학과에 입학한 서명숙 이사장은 그해 여름, <고대신문> 기자 활동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천영초(신문방송학과 72학번) 교우를 만났다. 천영초 교우는 엄혹한 긴급조치시대, 본교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다. 그가 4년 전 펴낸 책 <영초언니>에는 천 교우를 비롯해 당시 학내 시위를 선두에서 이끈 다수의 여성 교우가 등장한다. “민주화를 위해 희생한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출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록되지 않은 것이 안타까웠어요. ‘영초언니를 주인공으로 그 시대를 관통한 여성 운동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죠.”

  젊은 세대의 반응은 뜨거웠다. 예상 밖이었다. “그 시대를 경험한 우리 세대는 충분히 공감하리라고 생각했어요. 운동권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각자 나름의 부채의식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20, 30대 여성들이 특히 좋아해 줬어요. ‘이렇게 치열하게 투쟁했던 여자 선배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해줘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엄청난 보람을 느꼈죠.”

 

여자라는 편견을 딛고

  서명숙 이사장은 정치부 여기자 1세대다. 노동문제와 여성문제를 다루고 싶어 사회부를 지망했지만, 데스크는 그를 남성 일색인 정치부로 발령시켰다. 14년째 길을 여는 그에게 기자 생활은 전생의 일처럼 느껴지지만, 그날의 기억만은 생생하다. “복도에 앉아서 울었어요. 남학생이 훨씬 많았던 고대에서 이미 남성 중심문화를 뼈저리게 경험했는데, 직장에 와서도 또 경험해야 한다니··· 그때가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제도권 정치에 영입되기 시작하던 때라서, 학생운동으로 수감된 경험이 있는 저를 정치부에 발령했던 것 같아요.”

  기자에게 체력은 작문 실력만큼이나 중요한 덕목이다. 24시간 곳곳에서 벌어지는 현안들을 취재하기 위해선 강인한 체력이 필수다. 민주화가 이뤄진 뒤, 90년대 한국 정치는 격변을 겪고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정치부에 발령된 서명숙 이사장은 여자니까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남들보다 더 일찍 출근하고 더 늦게 퇴근했다. 1983년 월간 <마당>의 기자로 직업 생활을 시작한 그는 실력을 인정받아 여성 최초의 시사주간지 <시사저널> 편집장을 맡았다.

  학보사 활동 기간까지 포함하면, 서명숙 이사장이 기자로 살아온 세월은 25년이 넘는다. 처음엔 글을 쓰면서도 굶지 않을 수 있는직업이기에 택한 직업이었다. “오랜 세월 기자로 일하는 동안 스스로 부끄럽지 않고, 게으르지 않은 기자 생활을 했다고 생각해요. 정치부 기자로 일하면서,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여러 정치인을 만나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고요. 그때 맺었던 인간관계가 올레길 조성을 시작할 때 큰 도움이 됐죠.”

 

나도 몰래 빠진 걷기의 세계

  기자로 일하는 동안 체력적으로 뒤처진다는 소리를 들은 적 없던 서명숙 이사장은 어느 날부터 극도의 신체적 피로를 느끼기 시작했다. 처음엔 병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그래. 이 김에 좀 쉬고 더 열심히 일해야지.” 병원을 찾은 그는 의외의 결과에 실망했다. 결과는 정상이었다. 의사는 처방을 내리는 대신 운동을 권했다. 처음엔 공자님 말씀이라고 생각했지만, 밑져야 본전. 고등학교 졸업 후 체육과는 거리를 둔그는 가장 쉬운 걷기를 택했다. 걸을수록 몸 상태는 호전됐고, 기분은 좋아졌다. 그렇게, ‘걷기의 세계에 중독됐다.

  서명숙 이사장이 제주 올레길 조성을 결심한 건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종점 마을에 도착하면, 드넓은 바다가 펼쳐진다. 그 순간,그는 고향 제주를 떠올렸다. 서귀포에서 나고 자란 그의 머릿속에는 제주의 바다가 깊이 각인돼 있었다. 제주의 자연환경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길을 내어, 도시 사람들에게 치유의 경험을 나눠주고 싶었다.

  “작은 성과는 낼 수 있을 거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처럼 한 해에 수십만이 찾는 길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죠. 올레길을 운영하는 14년 동안 정말 많은 기쁨과 영광, 보람을 느꼈어요. 물론 그 못지않은 고통스러운 순간도 있었죠. 기자 시절보다 더 극적인 일들이 일어나니까, 사람 일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주는 걸을수록 보인다

  서명숙 이사장은 온전히 걷는 사람들만을 위한 길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2007년 제주올레를 설립하고 제주의 구석구석을 흙길로 연결해나갔다. 요즘 같은 속도 제일의 시대에 누가 일부러 걷기를 택하겠냐는 핀잔도 들었다. 하지만 곧 도보 여행은 제주 관광의 대표적인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올레길 개장 14주년을 맞이한 서명숙 이사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로 한 71세 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7코스를 개장할 때였어요. 길을 걷고 있는데, 어떤 할아버지께서 제게 인사를 건넸어요. 처음엔 관광객인 줄 알았는데, 평생을 제주에서 살아오신 토박이였어요. ‘제주올레 덕분에 몰랐던 제주의 작은 마을들을 알게 됐다며 고개를 숙이시더라고요. 제주 사람도 제주의 본 모습을 몰랐던 거죠. 그동안 높은 분들도 많이 왔지만 평범한 제주 할아버지의 그 한 마디가 가장 기뻤어요.”

  올레길을 조성한 서명숙 이사장은 제주올레의 운영 목표와 방향을 설정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올레길을 걷는 사람, 길 위에 사는 지역민,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의 의견을 듣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최대한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최대한 많이 걷고 있다.

 

올레가 나아갈 길은

  제주올레는 제주 환경 보존을 위해 클린올레’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올레길을 걸으며 쓰레기를 줍는 활동이다. 제주의 아름다움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10여 년 전부터 제주는 개발 광풍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올레길도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제주올레는 비영리 사단법인이기 때문에, 개발을 멈출 힘은 없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길을 걸음으로써 사람들에게 자연의 소중함과 환경 보존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전 세계를 뒤덮은 코로나19의 위기 속에서도, 제주올레는 성장을 거듭했다. 작년 한해 제주 올레길 26개 코스를 완주한 여행객은 2778명으로, 2019년 완주자(1624)보다 71% 증가했다. 2030 청년 완주자는 두 배 넘게 증가했다. 해외여행을 준비하던 이들이 코로나 셧다운으로 하늘길이 닫히자 제주로 향한 것이다. 서명숙 이사장은 코로나19 사태가 오히려 제주올레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코로나19로 단체 관광은 줄었어요. 전체 방문객 수는 감소했죠. 하지만 완주자가 훨씬 증가했다는 점에서 질적인 성장을 했다고 생각해요. 한 달 가까이 소요되는 올레길을 완주한다는 건 한 사람의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경험이 될 수 있거든요. 실제로 그런 분들도 많고요. 수학여행 와서 제주에 실망한 기억이 있는 청년 세대들도 제주의 아름다움에 큰 감명을 받고 돌아갔어요. 자연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재경험하게 된 거죠.”

  코로나19 종식 후 서명숙 이사장의 목표는 한라에서 백두까지남과 북을 잇는 피스올레(peace olle)’ 길을 조성하는 것이다. “저희 아버지는 두만강 변 국경도시에서 태어나신 실향민이시고, 어머니는 제가 태어난 서귀포에서 나고 자라신 분이에요. 지금은 체제가 달라져 남과 북으로 나뉘고 있지만, 한반도의 양극단인 어머니의 고향과 아버지의 고향을 올레길로 연결하는 게 저의 간절한 꿈입니다. 북한이 개방돼서 그 땅을 걷기만 해도 좋을 것 같네요.”

 

글 | 김선규 기자 starry@

사진 | 강동우 기자 ellip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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