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은 지갑으로 외로움 달래러

바둑 몇 판과 술 한잔 오락 삼아

“종로 노인도 급 맞춰 끼리끼리”

 

  종로3가역의 지하철 문이 열리자 백발의 노인들이 우르르 하차한다. 개찰구에 교통카드를 찍고 출구를 찾는 움직임에 익숙함이 묻어났다. 종로는 대한민국에서 노인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실버 홍대’다. 3개의 지하철 노선이 통과하는 환승역이 자리한 만큼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하는 노인들에게 접근성이 좋고 탑골공원이나 낙원상가처럼 역사 깊은 ‘핫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종묘광장공원부터 피맛골까지, 탑골공원을 중심으로 하는 종로 2·3·4가는 오랫동안 노인들의 아지트로 자리매김했다.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 하늘의 가을, 나흘간 종로 일대를 거닐며 그곳의 노인들을 만났다. 그들의 느릿한 걸음에 발맞춰 따라간 종로는 나름의 활기가 도는 거리였다.

 

노인들의 유일한 쉼터

  종로 거리 곳곳에선 공원 벤치를 대신해 보도블록과 주차 방지 볼라드에 걸터앉은 노인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허름한 식당들이 줄지은 골목길에 들어서니 구성진 트로트 가락이 흘러나오는 라디오 곁에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라디오 반주에 맞춰 흥얼거리는 그들의 노랫소리가 골목을 울렸다. 라디오의 주인은 백발에 멋쟁이 중절모를 쓴 유영훈(남·79) 씨다. 유 씨는 “정년퇴직 후 가만히 집에 앉아있으니 나 자신이 비참했다”며 “시간은 많고 할 건 없어 종로에 나와 사람들과 어울린다”고 말했다. 유 씨의 대답에 주변 노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골목길에 모여앉아 있던 이들 모두 자신이 종로를 찾는 이유를 한마디씩 보탰다.

  하지만 종로에 다닌 지 얼마나 됐냐는 물음엔 대부분 “그냥 오래됐다”며 답변을 얼버무렸다. 이후 잠시 적막해진 분위기에 이제껏 말을 아끼던 김성훈(남·62) 씨가 소리쳤다. “종로 오래 다닌 게 뭐가 부끄럽냐.” 한 손에 지팡이를, 다른 한 손엔 담배를 쥐고 화단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한 그는 은퇴 이후 종로를 찾은 지 10년이 훌쩍 넘은 노신사였다. “평생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다 이제야 여유가 생겼는데 갈 만한 곳이 종로밖에 없어.” 청년들이 놀거리를 찾아 홍대로 모이듯 노인들은 종로로 모인다. 젊은이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의 노인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많은 노인들이 지난 수년간 거의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습관처럼 종로로 향하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선선했던 아침 날씨가 서서히 달아오르는 정오의 탑골공원에서는 하루 한 끼 무료급식 배급이 한창이었다. 코로나19로 급식 메뉴는 주먹밥과 도시락으로 간소해졌지만 탑골공원 담벼락을 따라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긴 줄을 늘어섰다. 백발의 노인들 사이 젊어 보이는 검은 머리의 중년들도 군데군데 서 있었다. 무료급식은 궁핍한 노숙인들만 이용한다는 편견을 깨는 말쑥한 차림새가 눈에 띈다. 와이셔츠에 구두까지 갖춰 신고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던 A(남·79) 씨다. 그는 “연금과 자식들이 주는 용돈이 있지만 자식들이 담뱃값까지 주지는 않는다”며 “일주일에 한두 번은 무료급식을 먹고 그 돈을 아껴 담배를 산다”고 머쓱하게 웃어 보였다. 원각사 무료급식소의 자원봉사자 이모 씨는 “하루 한 끼 무료급식으로 매일을 버티시는 어르신이 많다”고 전했다. 종로는 서울에서 비교적 물가가 저렴한 지역이지만 근로소득이 없는 노인들이 하루 세끼 식비를 꼬박 지출하기엔 부담이다. 점심때가 되면 탑골공원은 주먹밥과 도시락을 기다리는 어르신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끼니를 때우기 위해서라도 이들은 매일 종로를 찾는다.

도시락을 기다리는 노인들이 차례로 줄을 서 있다. 코로나19로 폐쇄된 탑골공원은 무료급식이 배급되는 점심시간 중에만 문을 연다.

 

이름 몰라도 여럿이 좋으니

  종로3가역 사거리를 건너 도착한 종묘광장공원 공영주차장 뒤편에서는 바둑판이 벌어졌다. 무더운 오후 햇빛을 피해 그늘로 모인 노인들은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저마다의 대국을 펼쳤다. 스무 개가 넘는 바둑판에 이를 구경하는 사람들까지 모이니 수십 명의 인파였다. 주차장 초입에서 대국을 구경하던 B(남·83) 씨는 “답답한 기원보다 도란도란 얘기할 수 있게 탁 트인 공원이 낫다”며 “종로 기원에 하루 4000원의 입장료를 내고 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일단 바둑판이 깔리면 1000원의 대여료를 낸 사람이 먼저 대국을 시작하고 이내 모두 어울려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다. 종묘광장공원에선 바둑, 탑골공원 옆 낙원 악기 상가 공터에선 장기.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취향에 따라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B씨는 “사람이 많아 하루 한판도 두지 못할 때도 있지만 대국을 구경하며 훈수 두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전했다.

  수년간 출근하듯 얼굴도장을 찍은 사이지만 서로의 이름은 알지 못한다. 각자의 특징을 살린 별명이 이름을 대신한다. 50대로 비교적 나이가 어리면 ‘청년’, 쉴 새 없이 줄담배를 피어대면 ‘골초’로 불리는 식이다. 배달일을 하는 박모(남·58) 씨의 별명은 ‘부릉’이다. 그는 2년 전 교통사고를 당해 일을 쉬며 종로를 찾았다. 회복 이후 생업에 복귀하고서도 종묘광장공원에 종종 들러 바둑을 두고 있다. 요즘은 배달일로 도로 위에 있는 시간보다 이곳에서 바둑을 두며 보내는 시간이 더 길다. 여기서 바둑을 제일 잘 두는 어르신은 누구냐는 질문에 박 씨는 웃으며 “프로가 있다”고 귀띔했다. 프로란 판돈을 걸고 내기 바둑을 두는 사람을 칭한다. 적게는 몇만 원에서 많게는 몇십만 원까지 판돈의 액수도 천차만별이다. 박 씨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바둑을 오래 둔 할아버지들이 내기바둑을 둔다”며 “판돈이 크게 걸린 대국이 열리면 구경꾼도 꽤 많이 몰려든다”고 말했다.

20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걸고 하는 내기 바둑. 바둑을 두는 노인들의 표정이 진지하다.

 

  “건빵 받아 가세요!” 붉은 교회 조끼를 입은 청년이 손수레 한가득 건빵과 전도서를 끌고 와 소리쳤다. 그 소리에 바둑을 두던 노인들이 벌떡 일어나 급히 움직였다.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던 박 씨도 발 빠르게 건빵을 받아왔다. 뒤늦게 줄을 선 노인들이 빈 수레를 보고 혀를 차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한 달에 한 번 나눠주는 건데 학생은 운이 좋네.” 박 씨는 기자에게 선물이라며 건빵을 건넸다. 주변 노인들도 건빵을 나눠 먹으며 대국을 이어갔다. 마스크를 바르게 착용하라는 관리인의 외침에 건빵을 한입에 털어 넣고 급히 마스크를 쓰는 노인의 모습도 보였다.

 

맛 따라 멋 따라 흘러온 종로

  “종로에서 밥집을 찾으려면 송해 길을 찾아가라.” 종로 맛집을 추천해 달라는 물음에 어르신들은 이렇게 답했다. 역에서 나와 3분 정도 걸어가면 마주할 수 있는 송해 길은 육의전 빌딩에서 낙원상가 앞까지의 먹자골목이다. 2000원에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집이 골목 곳곳에 즐비했다. 가게의 단골손님들만큼이나 나이를 먹어 오랜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장소들이다. 송해 선생님이 즐겨 찾는다는 ‘소문난 집’. 허름한 철문의 가게에 들어서니 고소한 해장국 냄새가 코를 스쳤다. 다섯 명은 거뜬히 앉을 수 있는 넓은 식탁에 이호찬(남·75) 씨가 혼자 자리를 잡고 식사 중이었다. 가게 옆 낙원 악기상가의 경비원으로 일하는 이 씨는 “가격도 싸지만 서울에서 이렇게 맛을 내는 집은 이곳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장님은 “하루에 200명 가까운 손님들이 찾아온다”며 “저렴한 가격 탓에 수백 그릇을 팔아도 남는 건 거의 없지만 매일같이 찾아주는 손님이 있으니 감사한 마음으로 장사를 한다”고 전했다.

  송해 길 가운데 차가 다니는 도로를 아랑곳하지 않고 건너는 노인이 보였다. 차보다 사람이 많은 차도이기에 송해 길의 차들은 어르신의 걸음에 속도를 맞춘다. 그가 향하는 곳으로 눈길을 돌리니 빛바랜 간판 아래 각종 해산물을 노상에 진열해 둔 ‘행복한 집’이 자리하고 있었다. 메뉴 하나당 가격은 3, 4만 원대로 주변 물가에 비해 높은 가격대지만 식당은 만석이다. 매운탕과 꽃게찜을 안주로 술상을 펼친 C(남·71) 씨는 “종로에 가난한 노인들만 모인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도 종로를 찾는다”고 말했다. 함께 술을 마시던 D(남·71) 씨는 “종로의 맛과 멋을 느낄 수 있는 장소”라며 사거리 건너 국일관 건물의 ‘리치하우스’ 다방을 추천했다.

  6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송해 길의 오래된 상가 맞은편에는 세련된 외관의 고층 건물들이 우뚝 서 있다.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너자 거리를 누비는 노인들의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바삐 움직이는 젊은이들 사이 몇몇 점잖은 차림새의 노인들은 국일관 건물로 향하고 있었다. 국일관 15층 꼭대기에 위치한 리치하우스에 들어서니 서울 시내가 한눈에 담긴 전망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리치하우스의 사장님은 “날이 맑으면 가게에서 청와대도 보인다”며 밝은 목소리로 가게의 전망을 자랑했다. 가게를 둘러보니 남녀 손님이 함께 앉아 있는 다른 테이블과 달리 홀로 자리를 잡은 E(남·83) 씨가 보였다. E씨의 테이블엔 소주잔, 맥주잔이 모두 두 개씩 놓여있었다. 그의 앞 빈자리의 주인은 기자의 주문을 받아 음료를 준비하던 가게 사장님이었다. E씨는 “친구들과 커피 한잔하러 오기도 하지만 가끔 가게에 혼자 들러도 이곳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서너 시간씩 훌쩍 지난다”며 “오늘은 조용하지만 사장님께 부탁하면 7080 포크송이나 트로트를 LP판으로 틀어주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송해 길에는 다양한 종류의 식당이 늘어서 있다.

 

30년 간 자리를 지킨 종로 ‘황태해장국’. 콩나물 국밥은 2000원, 황태해장국은 3000원이다.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의 '리치하우스' 실내. 노인들이 전망 좋은 창가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노인문제 집약된 거리의 모습

  취재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 종로3가역 지하철역 계단에서 정지석(남·84) 씨를 만났다. 종로에 다닌 지 20년이 넘어간다던 그는 종로의 노인들도 서로의 차림새나 형편에 따라 ‘급’을 나눈다고 말했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국일관이나 파고다빌딩의 상점으로, 돈이 없는 사람들은 공원으로 모인다는 설명이다. “거리에는 ‘맛이 간’ 놈들도 있어서 우리끼리 대화를 나눌 때도 사람을 가린다”고 답한 정 씨는 화려한 치장을 한 할머니가 지나가자 눈치를 보냈다. “저기 저렇게 어깨에 가방 메고 짙은 루주 바른 할머니들은 박카스 아줌마”라며 “종로에는 학생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고 속삭였다.

  종로 거리의 모습은 노인들 간의 빈부격차, 노인 복지, 일자리 문제 등 우리 사회의 노인문제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사회적 거리두기 상황에서도 종로를 찾는 어르신들께 집에 계시라고 할 수가 없어요.” 종로 무료급식소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던 이모 씨는 말했다. 코로나19 확산의 우려로 다른 무료급식소가 잇달아 폐쇄되면서 종로 무료급식소를 찾는 노인들은 이전보다 더욱 늘었다. 하릴없이 매일 공원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이, 이곳에 일터를 두고 생업에 종사하는 이, 가끔 마실 삼아 가게를 찾는 이 모두 종로에서 마주칠 수 있는 노인의 모습이다. 이곳 노인들은 모두 저마다의 사정과 상황으로 종로를 찾는다.

 

글│장예림 기자 yellme@

사진│장예림·조휘연 기자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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