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장영수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정치권의 관심은 내년 3월 9일로 예정된 대통령선거 및 이를 준비하는 여당의 당내경선에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코앞으로 다가온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과 학부모의 최우선 관심사는 다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수능시험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부터 해마다 바뀌는 수많은 대입 전형을 고려하여 어느 대학교 어떤 과에 지원할 것인지에 대한 치열한 입시경쟁이 이미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경쟁은 고3 수험생들뿐만 아니라, 고1, 고2의 예비수험생들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최근 국무회의에서 ‘지방대학 및 지역 균형 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이 통과되어 지방의대·치의대·한의대·약대의 경우 40%, 간호대 30%, 로스쿨 15%의 지역 인재 선발을 의무화함으로써 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입시전형은 교육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가?

  교육의 의미는 한편으로는 개인의 능력을 계발하여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적절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양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원하는 삶을 보장해주는 것은 누구에게도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교육의 기회균등을 전제로 합리적인 절차에 따른 경쟁이 불가피해진다.

  헌법 제31조에서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는 것은 교육의 기회균등이 사회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직업 선택의 공정성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안정된 고소득 전문직업을 선택하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원하는 모든 사람이 의사, 약사, 변호사 등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누가 더 열심히 공부해서 의대, 약대, 로스쿨에 입학하느냐가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선택하고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일차 관문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학 입시는 수많은 수험생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고, 그 공정성에 대한 요구는 한없이 높다. 그런데 정유라, 조민 등의 경우에 보듯이 입시비리에 대해서는 전국민적인 분노가 끓어오르면서도 공정하지 않은 입시제도에 대해서는 둔감한 것은 왜일까? 입시제도가 공정하지 않다는 점을 몰라서일까? 아니면 그 입시제도의 허점을 내가 잘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일까?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대학 입시에 특별전형을 두고, 이를 통해 지역인재를 양성한다는 취지 자체에 반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과연 현재의 지역인재 전형이 정말로 지역인재를 제대로 양성하고 있는가?

  지역인재 전형의 뿌리는 미국의 적극적 평등실현(affirmative action)에서 찾을 수 있다. 하버드 등의 명문대학에서 인종적 차별을 고려하여 소수 인종에게 일정한 쿼터를 인정한 것에 대해 미국 연방대법원은 합헌으로 인정한 바 있다. 그러나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쿼터를 인정하는 것은 최근 미국에서 많이 이용되는 각 고등학교 상위 10%를 우선 선발하는 정책에 가깝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이러한 정책의 효과가 분명치 않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정책의 결과 고등학교 간의 차이가 영속화될 수 있다는 문제점이 계속 지적되고 있다.

  서울대가 지역 균형을 위한 전형을 자율적으로 시행하는 것은 논외로 하더라도, 과연 국가에서 법률로 구체적인 할당 비율까지 정해서 의대, 약대, 로스쿨 등의 지역인재 전형을 강제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그것이 유능한 의사, 약사, 변호사를 양성하는데, 나아가 유능한 인재 양성을 통해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국가 발전을 견인하는 데 도움이 될까?

  이미 로스쿨에서 지역인재 전형은 실패로 드러났다. 지역 균형 발전을 내세워 교육경쟁력과 무관하게 전국에 로스쿨을 인가했고, 그 결과 변호사시험에서 로스쿨 간의 격차가 현격히 나타나고 있다. 이제 이를 의대, 약대 등에서 크게 확장하는 것은 변호사 시험과 달리 의사고시, 약사고시의 합격률은 크게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괜찮은 것인가? 오히려 학적은 지방에 두고, 실제 공부는 학원에서 하는 학생들만 늘리는 것 아닐까?

  무엇보다 이러한 입시전형이 편법을 부채질하고, 공정한 경쟁을 오히려 가로막는다는 점에 대해 신중한 숙고와 반성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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