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원의 일상 채우는 장애인 근로자들
의료원의 일상 채우는 장애인 근로자들
  • 엄선영·이시은 기자
  • 승인 2021.09.27 00: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대의료원 안암병원 장애인 근로 현장

장애인 고용 2년새 4배로

작은 업무도 성실히 수행해

“단기계약이라 아쉬워”

 

  “어서 오세요” 인사하는 목소리, 출입 문진표를 건네는 손길, 복도에 정리된 휠체어. 모두 병원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모습이다. 이런 풍경을 만들어내기까지는 많은 이들의 노고가 뒤따른다. 본교 안암병원(원장=박종훈 교수) 장애인 근로자 역시 환자들의 편안한 병원 이용을 위해 바삐 일하는 중이다.

  본교 의료원(원장=김영훈 교수)은 지난해부터 꾸준히 장애인 고용에 앞장서겠다고 밝혀 왔다. 실제로 전체 상시근로자 대비 장애인 고용률은 2년 전에 비해 4배로 증가했다. 9일 기준 의료원에서 근무하는 장애인 직원은 모두 144명이다. 이 중 중증장애인은 79명으로, 전체 장애인 근로자의 54.8%가량이다. 의료원 관계자는 “의료직·행정직 직원 36명을 제외한 장애인 근로자는 대부분 단순 업무를 맡고 있다”고 밝혔다.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고자 17일과 24일 두 차례 안암병원을 방문했다.

 

“휠체어 두세 대는 거뜬히 옮기죠”

  안암병원 총무팀 보안실에 들어서자 점심 식사 후 휴식을 취하던 강태훈(남·28) 씨와 양현식(남·27) 씨가 보였다. 중증지적장애인인 이들은 병원 곳곳의 휠체어를 필요한 곳에 배치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휠체어가 고르게 배치돼 있지 않아 발생하는 환자들의 불편을 덜기 위한 업무다. 근무 시간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2시까지다. 본교 의료원에서 근무하는 임시직 장애인은 하루 최대 4시간 30분까지 일할 수 있다.

  “지금은 지하 주차장에 가요. 휠체어를 챙겨서 직원 전용 엘리베이터로 옮겨요. 개수를 보고 적당하게 조절하는 거예요.” 양현식 씨는 남은 일과 내내 업무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병원을 오가는 동안 마주치는 직원들과 반가운 인사도 잊지 않았다. 지하 주차장에 도착하자, 한구석에 여섯 대의 휠체어가 모여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 다른 곳에 휠체어가 없어서 곤란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강태훈 씨의 설명이 뒤따랐다. 이들은 익숙한 듯 휠체어 두 대를 엮어 한꺼번에 옮기기 시작했다. “처음엔 하나씩 챙겼는데, 일하다 보니 노하우가 생겨 이젠 세 대까지도 한꺼번에 옮길 수 있죠.” 휠체어 수리 또한 이들의 업무다. 발판이 떨어진 휠체어를 발견하자, 양현식 씨는 자연스레 주머니에서 공구를 꺼내 이를 보수했다. 강태훈 씨와 양현식 씨가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감사 인사를 받을 때’였다. “휠체어를 가져다드리면 감사하다며 커피를 주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럴 때 정말 기쁩니다.”

  박천원 총무팀 안전요원 실장은 “채용이 있기 전에는 총무팀이 휠체어를 신경 쓰느라 맡아야 할 다른 업무에 차질을 줬다”며 “함께 일하는 지금은 업무가 많이 편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의 장애인 직원이 단기계약 임시직으로 근무한다는 점을 아쉬워했다. “지금 직원들이 일을 너무 잘해서 계속 함께하고 싶지만, 근로계약기간이 짧아 그러기는 어려워요.”

 

병원 곳곳으로 택배 배달도

  오후 12시 50분이 되자 병원 후문에서 출입을 관리하는 총무팀 직원 김용구(남·59) 씨가 교대를 위해 출근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후문은 출입통제구역이 됐다. 병원 운영에 필요한 물품을 납품하는 업체 등 특수한 경우에만 후문으로 출입이 가능하다. 지체장애인인 김용구 씨는 출입할 수 없는 환자나 외래객에게 다른 출입구를 안내하고, 후문을 오가는 이들의 문진표 작성이나 체온 측정을 돕는 업무를 맡았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에는 병원 정문에서 환자들의 문의를 받고 안내를 도왔다.

 


"감사인사 한마디에 보람 느껴요"

 

  후문은 납품업체들의 수레로 붐볐다. 버튼을 눌러 출입문을 여닫고, 문진표 작성을 안내하는 김용구 씨의 손도 바삐 움직였다. “몸이 안 좋은 환자분께 출입할 수 없다는 안내를 드릴 때는 마음이 아프기도 해요.” 그는 업무에 보람과 책임을 느끼며 일하고 있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혹시 모를 위험을 단속한다는 것 자체에 책임감을 느낍니다.”

  오후 2시 반, 중증지적장애인인 김태환(남·21) 씨의 출근과 함께 보안실의 새로운 업무가 시작된다. 출입통제로 인해 택배기사가 병원 안까지 들어갈 수 없어 총무팀 직원들이 직접 택배를 배달해야 한다. 코로나19로 생긴 일자리인 셈이다. 보안실 앞은 개인 택배, 선물, 연구 자료 등의 택배 상자로 가득했다. 김태환 씨와 박천원 실장은 층을 나눠 택배를 배달한다. 박 실장은 “시간과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일인데 인력 보충으로 팀의 부담이 많이 줄었다”고 전했다.

  첫 번째 목적지는 감염내과 의국. 문을 두드리자 곧이어 “감사합니다”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과 대화하는 걸 좋아한다는 김태환 씨는 병원 곳곳의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택배 배달 업무가 재밌다고 말했다. 업무 중에 자주 만난 청소담당 직원에게 간식거리를 선물 받기도 했다.

  한차례 배달을 마친 김태환 씨는 관리팀과 영양팀에 전할 다음 택배를 수레에 쌓았다. 두 곳의 택배를 한 번에 배달하려다 보니 쌓인 택배의 높이가 김태환 씨의 키보다 높았다. 6층 보안실에서 관리팀과 영양팀이 있는 건물까지 가려면 엘리베이터를 여러 번 갈아타야 했다. 높이 쌓인 택배가 시야를 가려 수레가 휠체어에 걸리기도 하지만, 때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총무팀 직원과 힘을 합쳐 수레를 빼낼 수 있었다. 김태환 씨는 다시 힘차게 문을 두드렸다. “택배 배달 왔습니다!”

 

장애인 근로자가 건강검진센터에서 대기환자의 정보를 확인하는 중이다.

“환자들에게 좋은 기운 전하고 싶어요”

  “진료비 수납하러 오셨어요?” 안암병원 원무팀 직원 오지윤(여·26) 씨는 진료비 수납과 처방전 자동발급을 위한 키오스크 앞에서 환자들을 맞이한다. 그의 업무는 키오스크 안내다. 작년 8월부터 안암병원에서 일했다는 오지윤 씨는 경증 지적장애인이다. 업무 시간은 오전 8시 반부터 12시 반까지지만, 그는 아침 일찍 출근해 프린터를 점검한다. “사실 이렇게 일하는 건 처음인데, 짧은 시간이라도 일을 할 수 있으니까 너무 재밌더라고요.”

  원무팀 키오스크는 진료를 위해 안암병원을 찾는 사람 대부분이 거쳐 가기 때문에 늘 복잡하다. 오지윤 씨는 무작정 번호표를 뽑으려는 사람에게 진료카드의 바코드를 먼저 찍으라 일러주고, 찾아오는 사람들의 처방전을 확인한다. 키오스크가 낯선 환자들을 위해 안내뿐만 아니라 접수와 수납을 직접 하기도 한다. “오늘 진료비만 결제해드렸습니다!” 환자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오지윤 씨의 밝은 목소리가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원무팀 수납창구 맞은편의 건강검진센터에서는 직원 김혜진(여·57) 씨가 일하고 있다. 그의 업무는 검진을 위해 여러 부서를 오가는 환자들을 안내하는 것이다. MRI실에서 대기하던 환자를 만나 함께 건강검진센터로 향하는 길, 김혜진 씨는 환자가 어색해하지 않도록 계속해서 말을 건넨다. “단순한 업무처럼 보여도 이동 중이거나 대기 중인 환자들을 편안하게 하는 역할이에요.” 20년 전 교통사고로 지체장애인이 된 김혜진 씨는 “매사에 긍정적으로 살고 싶다”며 “환자들에게도 좋은 기운을 전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항상 환자들에게 공감하고 더 다가가려고 해요. 일하는 게 즐거울 수밖에요.”

 

  본교 의료원의 장애인 고용률은 꾸준히 높아지는 중이다. 2019년 6월 기준 0.58%이던 장애인 고용률은 작년 2.1%를 거쳐 올해 6월 2.41%까지 증가했다. 하지만 이는 의무 고용률을 밑도는 수치다.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시행령’에 따르면, 상시근로자가 50명 이상인 민간기업은 전체 근로자 정원의 3.1% 이상을 장애인으로 구성해야 한다. 의료원 관계자는 “앞으로도 장애인 고용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글 | 엄선영·이시은 기자 press@

사진 | 문도경 기자 dodo@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