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에 힘 싣는 솔직함의 매력

교지 <석순>에서 ‘새 언어’ 찾아

장편 소설 <밝은 밤>으로 복귀

최은영 작가가 지난 23일 구파발의 한 카페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는 신작 (밝은 밤)을 통해 "스스로를 아껴 달라"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최은영 작가가 지난 23일 구파발의 한 카페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는 신작 <밝은 밤>을 통해 "스스로를 아껴 달라"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밝은 밤>. 출간한 책 모두를 베스트셀러에 올린 최은영(국어국문학과 02학번) 작가의 글은 "누구도 해칠 수 없어 보이는 부드럽고 따뜻한 힘(서영채 문학평론가)"으로 많은 이들에게 온기와 위로를 전한다. 그는 약자의 목소리를 솔직하고 세심하게 담아내기 위해 애써 왔다. "내가 알 수 있는 건 나 자산의 내면뿐"이라는 그의 말 뒤엔, 타인을 속단하지 않으려는 배려가 숨어 있다. 최은영 작가는 늘 스스로를 깊이 관찰하며 사회와 연결된 인간의 내면을 상냥히 작품에 담는다.

 

<쇼코의 미소>:
솔직함으로 꿈에 다가서다

  “문학을 좋아했지만, 그렇다고 제가 작가가 될 수는 없다고 믿었어요. 저는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최은영 소설가에게 작가라는 꿈이 자리잡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버스 창가에 앉아 사색하던 어린 시절부터, 명절의 지루함을 달래려 첫 소설을 써낸 학창시절까지. 창작은 그에게 늘 '재밌는 일'인 동시에 '어려운 일'이었다. 본교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한 이후 전공・교양 강의를 가리지 않고 창작 수업을 수강했지만, 칭찬은 고사하고 "왜 이렇게 썼냐"는 말만이 돌아왔다. 고대신문 문예공모와 같은 학내 문학 공모전에 출품도 해봤지만 당선되지 못했다.

  창작에 재능이 없다면 연구나 평론이라도 해보고 싶었다. 문학을 놓고 싶지 않아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규격에 맞춘 보수적인 글쓰기'를 배운다는 생각에 답답하기만 했다. 적성에 맞지 않는 석사논문을 꾸역꾸역 쓰며 그제야 작가가 돼야겠다고 다짐했다. "많은 노력을 들여 공부하는데, 이 정도밖에 할 수 없다면 내가 진짜 하고 싶은걸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마침내 택한 작가의 길도 순탄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꾸준히 글을 썼지만 2년간 낙방에 낙방을 거듭했다.

  꿈을 좇는 과정에서 느꼈던 혼란은 모두 소설의 일부가 됐다. "그래서 꿈은 죄였다. 꿈. 그것은 허영심, 공명심, 인정욕구, 복수심 같은 더러운 마음들을 뒤집어쓴 얼룩덜룩한 허울에 불과했다 (<쇼코의 미소>, 33쪽)." 중편소설 <쇼코의 미소>의 주인공 '소유'는 영화감독을 꿈꾸지만 서른이 가까워지도록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쇼코의 미소>가 <현대문학> 예심에도 오르지 못하고 탈락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최은영 작가의 나이도 딱 서른이었다. 솔직함은 그가 가장 중요시하는 가치이자, 서사에 힘을 싣는 방식이다. 왜 이렇게까지 작가가 되려 하는지, 꿈은 열등감을 숨기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는지, 소설 쓴다고 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챙기지 못한 건 아닌지. 일기처럼 썼던 중편 <쇼코의 미소>는 결국 그의 데뷔작이 됐다. 

  "애정이 있으니까 언젠간 될 거라고 믿었어요. 다른 일엔 마음이 별로 안 가는데 이것만은 너무 좋으니까, 조금씩 배우다 보면 나아질 거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숱한 실패를 맛봤던 등단까지의 시간은, 마음속 막역한 낙관으로 견뎌낸 지난한 과정이었다. "소설가에게 재능이란 한도 끝도 없는 인내심이 아닐까요. 천재적인 재능 같은 것들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제가 그 예시죠. 타고난 게 없어도 계속 쓰고 싶은 열망이 있다면, 누구든지 소설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계속 앉아 있는 일은 일종의 고립이고,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일이에요. 그 시간을 견뎌내는 사람들이 작가가 된다고 생각해요."

 

<내게 무해한 사람>: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말하다

   베트남 전쟁의 상흔을 담은 <씬짜오, 씬짜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시위 현장이 담긴 <미카엘라>, 용산 철거현장 화재사건의 아픔을 녹여낸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등. 최은영 작가는 사회적으로 예민하고 무겁다고 여겨지는 소재를 말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인간의 소재를 말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인간의 내면과 사회를 별개의 영역으로 구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의 내면 깊은 곳, 가장 개인적인 부분조차 사회적으로 구성된다고 믿는다. "사람의 내면을 확실하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어떤 사회적 맥락에서 살아가는지를 담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고려대 여성주의 교지 <석순>에서의 활동은 최은영 작가에게 '새로운 언어'를 선물했다. '새내기 여자애들은 축구 응원을 오라'는 대학 선배의 요구 앞에 답답하기만 했던 이전과 달리, 무엇이 왜 잘못됐는지 말할 수 있게 됐다. 그는 끊임없이 여성이나 성소수자와 같은 약자의 이야기를 쓴다. 두 번째 단편집 <내게 무해한 사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회가 사람들에게 환상을 심어준다고 생각해요. '너희는 절대로 그런 일들을 당하지 않을 거야'라고요. 예를 들어 국가 폭력의 피해자들이 있으면, 언론이나 미디어에서는 그저 '그들'로 치부하며 '우리'와 이분해 버려요. 사회가 약자를 보호하지 못한다면, 우리 모두 언제든지 약자가 될 수 있는데 말이에요." 언제 어디서나 '강자'나 '주류'에 속하는 사람은 없다. 최은영 작가는 우리 모두가 소수자성을 지녔다고 믿는다. 그런 그가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사회를 살아가는 수많은 약자를 말하는 일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노력하지 않으면 너무도 쉽게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있는 게 인간"이고 '무해한 사람'은 결코 없기 때문이다. <내게 무해한 사람>은 관계 속에서 상처를 주고받던 미성숙한 시절을 그린다. 최은영 작가는 미숙했던 순간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소설 속 인물의 입장을 끊임없이 돌아본다. "인물 뒤에 존재할 실제의 누군가를 소외시키고 싶지 않아요. 누군가에 대해 쉽게 말해버리고, 동정하고, 평면적으로 그리면 그건 너무 무례한 거잖아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전하기 위해 사람을 이용하지 않으려고요."

 

<밝은 밤>:
“사람의 삶은 생각보다 크니까요”

  <내게 무해한 사람> 이후 <밝은 밤>을 출간하기까지의 2년은, 최은영 작가에게 괴롭고 혼란스러운 시간이었다. 개인적인 일을 수습하기에도 벅찬 나날 속에서, 글을 쓸 힘은 느껴지지 않았다. 글을 써왔던 지난 시간이 꼭 남의 얘기 같았다. 우연찮은 기회로 떠난 미국 레지던스에서 다시 펜을 잡기까지, 꼭 일 년이 걸렸다. "전혀 모르는 곳에 뚝 떨어져 보니까 당사의 힘든 일들이 물리적인 거리감 때문에 멀게 느껴졌어요.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요. 그 순간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렇게 탄생한 <밝은 밤>은 최은영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증조할머니 '삼천'에서부터 화자인 '지연'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쳐 서로를 돌보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지연'은 할머니와의 대화를 통해 할머니와 증조할머니의 삶을 엿본다. '밤'처럼 어두워 보였지만 실은 '밝은' 순간들로 가득했던 그들의 인생 앞에서 스스로의 상처 또한 치유한다. "스스로를 아껴 주자." 최은영 작가가 <밝은 밤>을 통해 독자에게 전하고자 했던 말이다. 그는 <쇼코의 미소> 출간 이후 일주일에 한 번씩, 2년간 상담을 받고서야 자신을 미워하는 일을 멈출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뻔할 수 있지만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없다는 건 맞는 말인 것 같아요. 내가 어떤 사람이고, 내 인생은 어떻다고 쉽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한 사람의 삶은 생각보다 크거든요. 사람으로서 실수할 때도 있는 거니까, 과하게 야단치지 말고 스스로를 다시 한 번만 들여다보고 돌봐 주자는 거예요."

  천문학자인 '지연'은 <밝은 밤>에서 이렇게 말한다. "한 사람의 삶을 한계 없이 담을 수  있는 레코드를 만들면 어떨까. 그건 그 사람의 삶의 크기와 같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비가시권의 우주가 얼마나 큰지, 어떤 모습인지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한 사람의 삶 안에도 측량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할 테니까(<밝은 밤>, 336쪽)." 용기 내 꺼낸 이야기의 솔직함으로,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세심함으로, 스스로를 아껴 달라는 따스함으로. 절대 속단할 수 없는 누군가의 '커다란 삶'을, 최은영 작가는 오늘도 쓴다. 

 

글│ 이시은 기자 scene@ 

사진│ 문도경 기자 do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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