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시험의 마지막 관문, ‘대책’

인재선발을 넘어 소통과 수용의 장

“자신만의 사상과 철학을 확립해야”

 

수년째 책문과 대책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안소연 씨는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더라도 그것이 '옳은 방향' 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책문과 대책을 통해 배웠어요."라고 말했다.
수년째 책문과 대책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안소연 씨는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더라도 그것이 '옳은 방향'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책문과 대책을 통해 배웠어요."라고 말했다.

  “지금 당장 시급한 나랏일은 무엇인가?” 광해군 3년에 치러진 과거시험의 마지막 문제다. 그 날 시험을 보던 선비 임숙영은 왕의 물음을 듣고 이이첨 일파를 비롯한 왕실 친족의 폐정을 날카롭게 규탄하는 글을 써냈다. 한 초라한 선비가 목숨을 걸고 날린 직언이었다. 이를 본 광해군은 크게 분노해 그의 합격 취소를 명했지만, 몇 달간의 심사와 논의 끝에 임숙영의 급제는 끝내 인정됐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에 응시한 수많은 인재 가운데 최종적으로 뽑힌 30여 명의 선비는 마지막 관문인 임금과의 면접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왕이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당대의 현안에 대한 문제인 ‘책문(策問)’을 출제하면, 수많은 과거시험의 관문을 통과한 젊은 인재들은 왕의 물음에 각자 소신 있는 해법 ‘대책(對策)’을 써 내려가야 했다. 

  수년째 책문과 대책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안소연 박사는 “선비들의 답안지에는 이상적인 세상을 만들기 위한 그들의 포부와 계획이 담겨있다”고 말한다. 안소연 박사를 만나 책문과 대책에 나타난 시대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부단히 노력한 선조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봤다. 

 

기존 정치의 타성에서 벗어나고자

  안소연 박사는 “과거의 다른 시험과목들은 경전에 대한 이해나 문장력을 알아보기 위한 의도로 출제됐지만, 대책은 선비가 앞으로 정계에서 펴고자 하는 정책과 포부가 어떤 것임을 알아보고 당대의 신진 학자들로부터 그 답을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책문에 출제되는 주제는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인재, 군사로 크게 나뉘었다. 정치에서는 이상적인 왕도 국가 통치의 형태, 군신 관계에 대한 문제를, 사회는 혼례나 노비제도에 대한 내용을 물었다. 경제에서는 전제, 공물, 군역에 대한 논의를 주로 다뤘으며 문화는 의복이나 문장에 관련된 책문이 있었다. 이외에도 인재는 주로 이상적인 인재상과 인재 선발 및  과거 폐단에 대한 논의를 다뤘다. 

  실제로 대책에 서술된 답변이 정책논의에 활용되거나, 장원으로 급제한 이가 관직에 올랐을 때 책문에서 제시한 시무와 관련된 직책을 직접 맡기도 했다. “세종 9년에는 ‘공법’ 시행에 대해 묻는 책문이 출제됐는데 이 시험에서 장원으로 급제한 정인지의 경우, 관직에 오른 후 공법의 제정과 실시를 위해 설치된 관청에서 공법 시행을 주도했어요. 또 그가 대책으로 써낸 내용을 실제 신하들이 정책논의 때 인용하기도 했죠.”

 

통치술, 문장력, 양식의 조화

  당대 사람들이 생각하던 ‘좋은 대책’은 무엇이었을까. “책문은 출제 당시의 시무에 대한 해결책을 논하는 것인 만큼, 그 당시 왕과 지도층이 추구하는 정책 방향을 잘 이해하고 이를 잘 저술한 답변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어요.” 이유원의 <임하필기> 권 2 ‘경전화시편’의 책에서는 “무릇 책에 있어서는 통치술이 중요하고 글을 잘 짓는 것은 그다음 문제이다. 그러나 사람의 재주가 같지 않아서 간혹 통치술은 월등하면서도 문장력이 부족한 경우가 있다.”는 내용이 있다. 안소연 씨는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내용이지만 책문의 양식이나 문장, 그리고 인용하는 자료의 적절성 또한 중요한 심사 기준이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오늘날 많은 취업준비생들이 참고서를 통해 시험을 준비하고, 스터디를 결성해 면접을 준비하는 것처럼, 대책 과목에서 우수한 답변을 하기 위해 선비들도 유사한 활동을 했다. “<동국장원집>, <전책정수> 등 실제 우수한 책문, 대책의 모음집을 참조하기도 했어요. 오늘날로 치면 일종의 모범 답안집을 보며 공부한 셈이죠. 오늘날 전해 내려오는 우수한 책문, 대책 모음집을 보면 중요한 부분에 메모도 되어 있고, 저자에 대한 인물평 등 소소한 낙서가 되어 있는데 이는 책의 소유자가 공부한 흔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외에도 같은 스승 밑에서 배운 선비들은 오늘날의 스터디그룹 같은 ‘동접’을 결성해 함께 숙식하며 공부하고, 수시로 서로 질문하고 응답하거나, 자체적인 모의시험을 실행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우수한 대책을 모아 놓은 모범 답안집 <동국장원집>의 일부이다.

 

“옳은 방향에 대한 확신 가져야”

  안소연 씨는 오늘날 치열한 경쟁 속에서 혹독한 입시와 입사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밤낮없이 수험서를 붙들고 있는 학생들에게 “자신만의 삶의 사상과 철학을 정립하세요.”라는 말을 전했다. “책문과 대책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어떠한 집단이 권력을 잡고 있느냐에 따라 추구하는 해결책과 인재상이 달라져요. 외압에 쉬이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지조를 지키기 위해서는 진정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해요. 보다 아름답고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생각을 멈추지 않으시길 바라요.”

   과거에 급제해 관직에 나아가는 것은 조선시대 선비들의 유일한 출셋길이었다. 따라서 옛 선비들의 답안지에는 임금에 대한 찬사와 정중하고도 상투적인 문체 속에서도 관직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 선비들의 개성과 정치적 포부가 넘쳐흐른다. 국정의 폐단에 대한 질책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마지막에는 임금에 대한 예는 잊지 않는다. “신이 삼가 대답합니다.”

  여러 의견을 존중하고 자유롭게 토론하는 선조들의 정신이 깃든 옛 조선의 책문, 대책을 본받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또한 여러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방향에서 생각하고 함께 논의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글 | 박다원 기자 wondaful@

사진 | 김예락 기자 emancipate@

사진제공 | 안소연 박사

일러스트 | 장정윤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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