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 소비자로 참여 가능

학교도 회사도 메타버스에서

“또 다른 삶의 터전으로”

 

  ‘메타버스’는 초월을 뜻하는 메타(meta)와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현실을 뛰어넘는 가상세계를 의미한다. 이는 닐 스티븐슨이 1992년 발행한 SF 장편소설 <스노 크래시>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으로, 소설 속 인물들은 가상 신체인 ‘아바타’를 통해 가상세계인 ‘메타버스’로 들어갈 수 있었다. 김승주(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과거의 메타버스는 단순히 가상공간 그 자체였다면, 지금은 현실세계와 밀접한 양상을 구현하려는 시도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일상적인 대면활동이 불가능해진 요즘, 회사부터 대학까지 현실세계를 대체하기 위해 메타버스를 이용하고 있다. 이렇듯 대중의 수요가 커진 메타버스 시장의 기술 확보를 위해, 정부는 2022년 메타버스 관련 예산을 올해 대비 25% 더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이경호(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아직은 기업 홍보에서만 주로 활용되고 있지만, 현실과 가상을 연결하는 그래픽 기술과 가상 자산 기술이 발전하고 기술 간의 상호결합이 더욱 활발해지면, 더욱 구체적인 모습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젠 수익 창출도 가능해요”

  메타버스는 2000년대 초 싸이월드 등 가상 커뮤니티들의 유행과 함께 주목받은 개념이었다. 2003년 출시된 온라인 게임 ‘세컨드라이프’와 1999년 등장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싸이월드’는 메타버스를 이용한 사례다. 이곳에서 이용자들은 자신을 대신할 아바타를 활용하고 아이템을 거래하는 등,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었다.

  한편 오늘날 메타버스는 기술 발전과 더불어 더욱 고도화됐다. 2020년 이후 최근 양상이 과거와 다른 점은 지금의 메타버스 속 이용자는 소비자이자 제작자인 ‘프로슈머’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메타버스 이용자의 아바타가 가상공간에서 단지 소비만 할 수 있었다. 싸이월드의 가상 화폐인 ‘도토리’로 아바타의 옷 등 유료 아이템을 구매해, 아바타를 치장하는 것이 그 예다. 

 

네이버의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서는 아바타의 외형을 다양하게 꾸밀 수 있다.
네이버의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서는 아바타의 외형을 다양하게 꾸밀 수 있다.

  오늘날 대표적인 메타버스 플랫폼인 ‘로블록스’나 ‘제페토’에서는 이용자가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가 된다. 온라인 메타버스 게임 플랫폼인 로블록스에서 이용자는 직접 게임을 제작해 다른 사람과 함께 즐길 수 있다. 더불어 사람이 많이 모이면, 해당 게임에 대한 수입을 로블록스와 나눠 가진다. 아바타를 활용한 소셜 네트워크 플랫폼인 제페토에서도 이용자가 직접 아바타가 착용할 장신구를 디자인해 판매한다. 아이템을 만들어 팔고, 유튜브에 제페토 관련 콘텐츠를 올리는 등의 활동을 하는 ‘제페토 크리에이터’도 등장했다. 제페토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렌지’는 아바타의 옷 등 예쁜 제페토 아이템을 판매하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제페토 이용자 박서현(여·14) 씨는 “아이템을 구매해 내가 입어보지 못한 것을 아바타에 대신 입혀 볼 수 있어서 대리만족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승주 교수는 “지금의 메타버스 공간은 소비자가 단순히 돈을 지불해 즐거움을 얻는 공간이 아니라, 일을 해서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환경이 됐다”며 “실제로 또 하나의 삶의 공간으로 기능할 가능성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클릭 한 번에 사무실 도착

  이젠 아침에 일어나 인터넷에 접속해 로그인만 하면, 내 아바타를 통해 출근할 수 있다. 코로나19의 확산에 따라, 각종 기업이 업무 공간을 메타버스에 마련하기도 했다. 서울시설공단은 줌, 웹엑스 등의 화상시스템을 사용해 근무하다 ‘얼굴 노출이 부담스럽다’, ‘감시받는 느낌이 든다’는 등의 직원들의 반응에 대안책으로 메타버스를 찾았다. 2020년부터 메타버스TF팀을 꾸려 ‘가상 오피스’를 도입한 것이다. 직원들은 가상공간 속 각자의 사무공간과 책상을 이용하며 2D의 아바타를 통해 회의실에 함께 모여 단체로 소통할 수 있다. 직원들은 메타버스를 활용한 가상 오피스가 편리하고 유쾌하다는 반응이다. 서울시설공단 기획조정팀 배준희 대리는 “단순 화상시스템을 통한 재택근무가 계속돼 ‘줌(ZOOM) 피로’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며 “대안책으로 게더타운 플랫폼이 제시됐는데, 직원들이 ‘게임하는 것 같이 재밌다’고 말하며 좋은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메타버스 플랫폼인 '게더타운'을 활용해 서울시설공단 임원들이 가상오피스 내에서 아바타를 통해 자유로운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메타버스 플랫폼인 '게더타운'을 활용해 서울시설공단 임원들이 가상오피스 내에서 아바타를 통해 자유로운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회의뿐만 아니라, 각종 기업 내 행사 역시 메타버스 속에서 열린다. 지난 9월 화장품 기업인 아모레퍼시픽은 메타버스를 통해 제76주년 창립기념행사를 진행했다. 직원들은 본인의 아바타로 회사 역사 퀴즈, 방탈출 게임 등에 참여했다. 이외에도 금융기업인 웰컴금융그룹은 제19주년 메타버스 창립기념식 ‘웰컴아일랜드’를 열어, 회장 및 경영진이 임직원들과 가상공간 속 자유로운 소통을 할 수 있었다. 

 

  ‘아바타’ 동기와 가상 캠퍼스 거닐다

  코로나19로 캠퍼스 내 대부분의 활동이 비대면으로 전환되며, 대학교의 입학식과 축제 등의 대규모 오프라인 행사마저 전면 취소됐다. 이에 메타버스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대학은 메타버스에서 가상 캠퍼스를 구축해, 축제와 입학식 등을 개최하며 학생들이 ‘언택트’ 활동으로나마 학교 행사에 참여하도록 하기도 한다. 건국대, 숙명여대, 순천향대 등의 대학들은 메타버스를 활용한 행사를 기획해, 학내 구성원들의 적극적 반응을 이끌었다. 박정수(성균관대 스마트팩토리융합학과) 교수는 “비대면 교육이 성행하는 시기에 캠퍼스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을 메타버스에서 구현하는 사례는 사이버 공간과 현실공간을 연결한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순천향대는 지난 3월 국내 최초로 메타버스 공간에서 비대면 입학식을 개최했다. 통신사 SK텔레콤이 제작한 플랫폼 ‘점프 VR’에서 개최된 해당 행사는 순천향대의 대운동장의 모습을 그대로 묘사했다. 실제와 똑 닮은 가상세계 속 학교의 모습은 학생들에게 생생히 전달돼, 생동감을 높였다. 신입생들의 아바타는 ‘과 잠바’를 입고 입학식에 참여했다. 가상공간 속 이뤄지는 첫 입학식이었던 순천향대 입학식은 참여 신입생 대상 만족도 조사 결과 만족도가 78.4%를 기록하는 등 학생들의 호평을 받았다. 순천향대 학생지원팀 직원 서장원 씨는 “코로나로 인해 동기 학생들과 대면 교류 경험이 부족한 신입생들에게 메타버스 공간에서 소통 경험을 제공한 점이 색다르게 다가왔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건국대도 지난 5월 (주)플레이파크와 함께 전국 대학 최초로 메타버스 축제 ‘KON-TACK’를 개최했다. 가상 캠퍼스 공간인 ‘건국 유니버스’에서 학생들의 아바타가 캠퍼스를 구경하고 각종 게임을 즐기게 조성했다. 이용자들은 채팅을 통해 축제에 참여한 다른 학생들과 교류하고, 캐시로 상점에서 아이템을 사 본인의 아바타를 꾸미기도 했다. 해당 축제는 캠퍼스 전경뿐만 아니라 각 단과대의 모습과 캠퍼스 내의 인공호수인 일감호까지 정교하게 구현해, 학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권민경(건국대 교육공학과20) 씨는 “가상세계에 학교 곳곳의 작은 부분까지 잘 표현돼 있어 깊게 몰입할 수 있었다”며 “다른 학우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즐거웠다”고 말했다.

 

건국대 가상 캠퍼스 '건국유니버스'에서 구현된 메타버스 축제
건국대 가상 캠퍼스 '건국유니버스'에서 구현된 메타버스 축제

 

  숙명여대는 지난 5일 학교가 자체 개발한 메타버스 플랫폼인 ‘스노우타운’에서 숙명여대의 축제 ‘청파제’를 열었다. 참여자들은 액세서리와 풍선 등으로 자신의 아바타를 꾸미고 , ‘인간 탑 쌓기’ 단체 게임에 참여하는 등 각양각색 축제를 즐겼다. 축제에 참여한 권아영(숙명여대 교육학부19) 씨는 “가상 캠퍼스 속에서 문어 캐릭터를 찾기 위해 여러 장소를 탐색하는 미션을 수행한 활동이 가장 인상 깊었다”며 “학교에 많이 가보지 못한 20학번과 21학번 학생들이 학교 지리를 재밌게 익힐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고 말했다. 고은경(숙명여대 영문21) 씨도 “채팅과 게임을 통해 여러 학생과 메타버스 속에서 만나고, 아바타끼리 사진 촬영도 할 수 있어 뜻깊었다”고 말했다. 

 

메타버스 플랫폼 '스노우타운'에서 개최된 숙명여대 축제
메타버스 플랫폼 '스노우타운'에서 개최된 숙명여대 축제

  내 님은 가상세계에? 

  “대학 가면 썸 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많이 당황하셨죠? 저희도요. 그래서 만들었어요.” 메타버스 랜선 미팅 플랫폼인 ‘싱글타운 by 슬라이드 - 코시국 랜선미팅’에 접속하면 이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코로나19로 인해 인연을 만나기 어려워진 요즈음, 가상 공간에서 소개팅을 할 수 있는 메타버스 플랫폼이 등장했다. 

 

메타버스 랜선미팅 플랫폼 '코시국 랜선미팅'에서 자유롭게 다른 이용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메타버스 랜선미팅 플랫폼 '코시국 랜선미팅'에서 자유롭게 다른 이용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메타버스 소개팅 앱에서는 자기만의 캐릭터를 꾸밀 수 있다. 제페토처럼 직접 캐릭터를 세밀하게 디자인할 순 없지만, 8가지의 아바타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나와 가장 비슷한 아바타를 고른 후, 싱글타운에 입장하면 다른 아바타들을 만나는 가상세계가 눈 앞에 펼쳐진다. 메타버스 속 픽셀 모양의 작은 아바타가 바닷가나 레스토랑 등을 돌아다니는데, 상대를 만나기 위해서는 원하는 장소를 터치하면 된다. 터치 후 의자에 앉거나 커다란 운동장에 입장하는 등의 방법으로 대화 존에 들어가 마이크를 켜면, 소개팅이 시작된다. 

  비록 서로의 목소리만으로 대화가 이어지지만, 이용자들 모두 좋은 친구를 만날 기회였다는 반응이다. 이용자 권모(남·23) 씨는 “여기서 만난 사람과 인스타그램 맞팔로우도 했다”며 “오픈채팅으로 넘어가 조금 더 대화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코시국 랜선미팅’ 개발사인 하이퍼커넥트 관계자는 “앱을 통해 사람들이 공간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만나고 소통할 새로운 장을 마련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메타버스의 적용 범위는 문화산업 분야뿐만 아니라 교육, 경제활동 등 생활에 밀접한 분야와 융합되며 점차 넓어지고 있다. 이경호 교수는 “현재 메타버스는 지엽적이고 특정 서비스에서만 적용되고 있지만, 향후 기술 기반이 온전히 마련되고 서비스들이 더욱 연동된다면 그 비중이 급속도로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승주 교수도 “앞으로 가상세계에서 구현되는 공간과 현실공간의 차이를 얼마나 좁힐 수 있는지가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 | 이성현·이주은 기자 press@

사진제공 | 권아영(숙명여대 교육학부19), 서울시설공단, 플레이파크, 하이퍼커넥트

사진출처 | 제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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