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에서는 어른을 다 자란 사람이라고 풀이한다. 다 자라서 무르익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나이가 들면 흔들림도 없어지고, 천명도 알게 된다고 하지 않던가. 어른이란 이렇듯 오랜 세월을 지나 이제 잘 익고, 성숙해진 사람이다. 성숙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이 사람을 어른으로 만든다. 그런데 그 시간은 과거에서 시작하여 현재에 이른다. 어른이란 결국 과거에서 와 현시를 사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른이 되기까지 그 긴 시간을 지나면서 어디 맑은 공기만 마실까? 흙바람도 맞고, 미세먼지 가득한 탁한 공기도 마신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낡은 문화의 공기를 호흡하면서 성장하고, 과거 시간 속 빛과 영양분만이 아니라 어둠과 병균도 함께 호흡하며 성장을 마친 사람이 어른이다. 더구나 어른이 지나온 과거 시간이 병든 시대, 타락한 시대였다면, 빛 보다는 어둠이 더 많이 어른 안에 들어 있을 것이다. 그럴 때, 그래서 어른은 성숙의 이름인 동시에 타락의 이름이다. 과거 시간의 때가 묻은 병든 사람이다. 어른이란 동전의 양면이 그렇다.

  지금 우리 사회 어른 대부분은 박정희 시대에 태어나 전두환 시대를 지나왔다. 보수 어른이든 진보 어른이든 다들 박정희 키즈고, 전두환 시대의 사생아들이다. 생각이 다른 튀는 사람은 탄압해도 되고, 여자는 돈으로 살 수 있고, 남자는 힘이 세고 울지 말아야 하고, 모르는 사람이어도 자기보다 한 살이라도 어린 사람에게는 반말하는 게 당연하던 문화 속에서 자란 세대다. 박정희가 진즉 사라졌고, 전두환이 이제 죽었다고 그의 유령마저 사라졌을까? 정치 차원의 박정희와 전두환 시대는 갔지만, 문화 차원의 박 정희와 전두환은 살아 있다. 그 시대의 낡은 문화와 사고방식은 그 시대를 거쳐 온 우리 시대 어른들 무의식 속에서 유령처럼 여전히 살아 있다. 정치는 의식이지만, 문화는 무의식이다.

  온 세상이 청년 타령이다. 그렇게 청년을 외치는 사람 대부분은 낡은 시간에서 건너온 어른이다. 청년이 살기에 절망적인 오늘 이 세상을 만든 장본인이다. 오랫동안 낡은 시간을 살아오면서 그들 어른 몸에 밴 어둠과 먼지가 오늘 이런 세상을 만들었다. 청년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겠다고 소리치는 어른을 청년이 눈 부릅뜨고 노려보아야 하는 것은 그들 어른이 박정희 키즈이자 전두환의 사생아 세대이기 때문이다. 과연 그 어른 세대가 그들이 살아 온 시대의 어둠과 단절하고 청년 기준에 맞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겠다는 것인지, 새로운 척하지만 속은 낡은 채로 새 시대 깃발을 들고 청년더러 나를 따르라고 외치는 건 아닌지, 눈 부릅뜨고 노려보면서, 알맹이와 껍데기를 가려내야 한다.

 

<야초(野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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