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방가사 주제로 한 최초 전시회

시대별 여성들의 애환 담겨

“한탄 넘어선 생생한 증언”

 

  여성의 목소리가 널리 퍼지지 못했던 조선시대. “어와 벗님네야, 이내말삼 드러보소.” 조선의 여성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 절실히 외쳤다. 그들은 내방 안에서 느낀 감정과 생각을 4음보 운율에 담았다. 조선시대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여성들이 한글로 써 내려간 내방가사는 18세기부터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내방가사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 독립에 대한 열망, 상호 간의 공감과 위로 등 여성들의 목소리가 담겼다.

 

내방가사 속 여성들은 ‘어와 벗님네야’라고 말문을 트며 이야기로 관람객들을 이끌었다.

 

  국립한글박물관과 한국국학진흥원이 공동주최한 ‘이내말삼 드러보소, 내방가사’ 전시회가 다음달 10일까지 국립한글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진행된다. 이번 전시회는 내방가사 노랫말을 집중적으로 다룬 최초의 전시로 최초 공개한 작품 12편을 포함해 90여 편의 내방가사를 전시했다. 전시는 1부 ‘내방 안에서’, 2부 ‘세상 밖으로’, 3부 ‘소망을 담아’로 기획됐다. 서주연 학예사는 “여성이 한글로 가사를 적어 소통하고 공감하려 했던 문화적 가치를 보여주고자 전시를 기획했다”며 “여성이 가진 힘을 잘 보여주는 작품들을 선정했다”고 전했다.

 

  내방: 가족과 함께한 희로애락

  1부 ‘내방 안에서’에서는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기록된 내방가사를 살펴볼 수 있다. 여성들은 자식, 남편, 시댁 등의 주제로 이야기하며 가정에서의 일상을 풀어냈다. 전시실의 벽면은 한지로 도배돼 한옥을 연상케 한다. 내방가사의 창작 배경인 내방 공간이다.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작품은 ‘쌍벽가’다. 두루마리를 길게 펼쳐놓은 이 작품은 1794년에 기록됐으며 현존하는 내방가사 중 가장 오래됐다. 전체 가사 중 약 90%가 작자 미상인 내방가사지만 ‘쌍벽가’는 연안 이씨로 작자가 알려진 작품이다. 전시장에는 두루마리에 적힌 글 위로 읽기 쉽게 현대 한국어로 번역한 글이 있다.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아들과 조카가 나란히 벼슬에 급제해 기뻐하는 연안 이씨의 마음이 담겨 있다.

  ‘쌍벽가’를 넘어가면 또 다른 조선 어머니들의 내방가사를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최초 공개된 ‘모녀 서로 이별하기 애석한 노래라’에서는 조선의 어머니가 딸의 시집을 안타까워하며 그간의 추억을 노래한다. “아까워라 아까워라 너보내기 아까워라”와 같은 가사에선 딸을 애지중지 여기는 어머니의 사랑이 느껴진다. 할머니의 내방가사에서도 손주 사랑이 물씬 느껴졌다. ‘손녀사랑가’의 작자는 “사랑사랑 내사랑은 손녀말고 다시없네”라며 자신을 생각해주고 말벗이 돼주는 손녀를 향한 사랑을 마음껏 표현했다.

 

시집 간 여성들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내방가사를 지었다.

 

  가족과의 이별도 담겼다. 삶의 전부였던 가족과의 이별은 절절한 노래 가사로 기록됐다. 남원 윤씨가 작성한 ‘명도자탄사’는 병마에 시달리다 죽은 남편을 슬퍼하며 내면의 감정을 적은 가사다. 전시실 벽에 큰 글씨로 적힌 “간장이 끊어지고 눈물이 마르지 않네”에서 남원 윤씨의 절규와도 같은 탄식을 느낄 수 있다. 작자는 이 작품을 남긴 후 독을 마시고 자결했다고 전해진다.

 

가족과 이별한 슬픔을 한글로 기록한 ‘벽상사’

 

  시누이와 올케의 유쾌한 글 겨루기가 담긴 내방가사도 있다. 1867년을 전후해 지은 ‘기수가’ 연작 7편은 합천 영사재에서 벌어진 파평 윤씨 가문 여성들의 잔치를 배경으로 창작됐다. 출가한 파평 윤씨 가문의 딸들이 친정에서 잔치를 벌이며 ‘기수가’를 짓자, 파평 윤씨 가문으로 시집 온 시누이들이 답가로 ‘답기수가’를 지었다. 이를 반박, 재반박하는 가사들이 창작되며 7편의 연작 가사가 등장했다. 시누이와 올케 사이에서 나타나는 여성들의 솔직한 감정들을 느낄 수 있다.

  여성에게 과도한 정절을 요구하던 사회에서 과부는 자신의 처지를 내방가사를 통해 탄식했다. “이치없는 공허한말로 나의 수절 높이시니 절행이라 하는 것이 길거리에서 떠드는 호사가들의 말뿐이라.” 일제강점기에 나온 ‘수절자탄가’의 작자는 남성의 재혼은 허용되면서 과부의 재혼은 허용되지 않는 사회를 “공허한말”, “호사가들의 말”이라며 비판했다. 같은 시기에 창작된 ‘시골여자 서러운 사연’에는 여성으로 태어나 남편에게 일방적으로 이혼 요구를 당한 설움이 드러난다. 근대화를 거쳐 남성들은 근대식 교육을 받을 수 있었지만, 내방에서 남편을 기다리던 구여성들은 여전히 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유학을 갔다 온 남성들은 무지한 자신의 아내에게 이혼을 통보하곤 했다. “공부했더라면 이런 변고는 없었을텐데”라는 가사에선 배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혼당하는 원통함이 드러난다.

  김윤희(안동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1980년대 이후 초기 연구에서는 내방가사 속의 탄식을 그저 여성들의 ‘한탄’이라고 정의했지만, 최근에는 ‘고난의 생생한 증언’으로 인식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내방가사는 초인적인 여성상을 요구하는 사회로부터 여성이 고난의 감정을 인식하고, 이를 한글로 담은 저항의 기록물”이라 설명했다.

 

  문밖: 신여성, 평등과 독립을 외치다

  굳게 닫혀있던 내방의 문은 개화기를 거치며 열리기 시작했다. 2부 ‘세상 밖으로’에서는 급격한 변화의 시기를 겪은 여성들의 삶을 느낄 수 있다. 이 시기 내방 밖으로 나선 여성들은 더 활발하게 내방가사를 썼다. 이 시기 작품에는 일제강점기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이 담겼다.

  2부의 첫 작품은 ‘해방가’다. “낡은 도덕에 일신을 가둬놓고 행복을 꿈꾸는가 마음용기 다하여서 이사회를 개벽하세.” 작자 우의하는 내방가사를 통해 구여성에게 남녀평등을 알리며 학교 교육을 권했다. ‘위모사’에서는 어머니에게 시대가 변했으니 여성도 세상을 위해 힘써야 한다며 어머니를 안심시키고 “이목구비 남자와같고 지각포부 같을진대 제분수로 하는일이야 남녀가 다르겠소”라며 남녀평등을 외친다. 또한 “유럽 열강국에 여장부도 많을씨고 프랑스의 롤랑부인 대잣깃발 앞세우고”라며 사회 변혁에 앞장서는 여성상을 바람직한 모습이라 주장한다. 작품 옆으론 신여성들의 특성과 이야기가 담긴 당대 잡지들이 전시돼 있다.

 

전시회 2부 ‘세상 밖으로’엔 당대 신여성들의 삶을 그린 잡지를 전시했다.

 

  개화기 작품을 지나자 점점 어두워진 전시실은 코너를 돌아 다시 밝아진다. 일제강점기의 작품들이다. 짐보따리를 지니고 가는 여성의 그림과 ‘해동교거사’의 글귀가 등장하며 ‘만주망명가사’들이 나란히 전시됐다. ‘만주망명가사’에서는 일제강점기 여성들의 독립운동을 확인할 수 있다. 교과서에 나오는 독립운동가는 남성이 대부분이지만 전시회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함께 독립을 꿈꾼 여성을 주목했다. 김윤희 교수는 이 시기 독립과 관련해 창작된 내방가사를 “자(自)와 사회의 소통”이라고 표현했다. 김윤희 교수는 “가족 관계뿐만 아니라 광복을 기원하는 내방가사도 많이 있다”며 “내방가사를 통해 여성들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독립운동을 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신흥강습소’, ‘부민단’을 조직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역임한 이상룡 독립운동가의 뒤엔 그의 아내가 있었다. ‘해동교거사’는 남편 이상룡을 따라 만주로 건너가 그곳에서 고단한 삶을 산 김우락의 이야기다. 고된 만주 망명길과 정착 이후의 삶을 이야기한 글을 통해 일제강점기 때 여성들의 숨은 노고를 확인할 수 있다. “어린자손 업고안고 좀큰자손 앞세우고 눈이내려 길이없어 간신히 찾아가니 초라한집 딸린방이 우리소굴 된단말인가” 가사 속엔 새로운 정착지의 열악함도 나타난다. 1940년 김우모가 지은 ‘눈물 뿌린 이별가’ 속 “서간도와 북간도로 가는사람 셀수없네 가자가자 나도가자 애국하는 사람따라 가세가세 너도가세.” 가사에서는 독립운동을 위해 망명길에 오르는 여성들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윤희순 독립운동가처럼 직접 의병으로 싸운 여성도 있었다. 전시회에는 윤희순 독립운동가의 기록만을 모아놓은 작은 방이 있다. 그는 을미사변 당시 시아버지의 의병을 도우며 ‘안사람 의병가’를 창작했다. “우리나라 의병들은 나라찾기 힘쓰는데 우리들은 무얼할까 의병들을 도와주세”라며 여성들이 나서도록 노래했다. 윤희순 독립운동가는 중국으로 망명 후 직접 독립투쟁을 주도했다. 그는 시아버지와 남편을 잃고, 독립군 조직을 직접 이끌며 ‘신세타령’을 썼다. ‘신세타령’에서 “애달프다 우리의병 이역만리 찬바람에 발자국마다 얼음이요 발끝마다 백서리라 눈썹모두 얼음이라 수염모두 고드름이”라는 구절은 당시 독립투쟁의 고단함과 나라 잃은 서러움을 잘 나타내고 있다.

 

윤희순 독립운동가는 독립운동 투쟁 기록을 내방가사에 담았다.

 

  여전히 창작되는 공감과 위로

  3부 ‘소망을 담아’는 다채로운 미디어파사드로 꾸며졌다. 여성들이 서로 위로하고 연대하는 마음이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전시실의 벽면을 영상 스크린으로 가득 채운 미디어파사드는 ‘덴동어미화전가’를 기반으로 제작돼 여성들이 다 같이 꽃놀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조선시대 후기에 지어진 ‘덴동어미화전가’에는 화전놀이에 모인 여성들이 자신의 고민을 나누며, 서로 이해하고 연대하는 모습이 담겼다. 화자인 ‘덴동어미’는 결혼을 4번하고 불에 덴 아이를 홀로 키우는 여성이다. 여성들은 덴동어미와 화전놀이를 하며 자신의 삶을 위로하고, 덴동어미에게 위로를 건넨다. 김윤희 교수는 “개인의 탄식으로 시작했던 내방가사가 ‘화전가’를 통해 타인과의 소통이 담기기 시작하며 유연한 소통 문화를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덴동어미화전가’를 주제로 한 미디어파사드가 전시실의 벽면 하나를 가득 채웠다.
여성들의 공감과 위로가 담긴 ‘덴동어미화전가’

 

  전시의 마무리에서는 내방가사 생존 작가들의 이야기와 함께 누구나 내방가사를 지어볼 수 있도록 내방가사를 짓는 여섯 가지 방법을 알려준다. 먼저 “동무님들”, “벗님네야”처럼 듣는 이를 부르며 시작한다. 다음으로 가르치는 말, 자신의 이야기, 주변인을 담아 내방가사를 짓는다. 끝으로 “두서없는 이가사를 각처에 드리오니”처럼 겸손하게 맺음말을 쓰며 마무리한다. 이후 답가를 주고받으면 내방가사 짓기의 과정이 끝난다. 내방가사는 여전히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상대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하고 있다.

 

내방가사의 교훈은 현대인들에게 여전히 울림을 준다.

 

글 | 윤혜정 기자 samsara@

사진 | 문원준 기자 mondlic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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