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질서 위해 2차 제재 고려해야

“등록금 해결없인 거취도 불안”

 

  정경대 학생회, 정치외교학과 학생회, 행정학과 비상대책위원회가 공동 주관한 ‘우크라이나 재학 학우 연대 간담회’가 17일 백주년기념삼성관 국제원격회의실에서 열렸다. 김헌준(정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러시아의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이 가지는 국제정치적 의미’를 강연한 1부에 이어, 2부에선 본교에 재학 중인 두 명의 우크라이나 학생이 참석해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본교생 132명이 참가한 이번 행사는 유튜브 라이브로도 송출됐다. 

 

김헌준(정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강연하고 있다.
김헌준(정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강연하고 있다.

  ‘신냉전 체제’ 도래 가능성은 낮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용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강연을 시작한 김헌준 교수는 “2022년 양국의 무력 충돌은 전쟁이 아닌 러시아의 일방적인 침공, 그리고 이 침공을 막기 위한 우크라이나의 자위권 행사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제정치적 관점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여러 함의를 지닌다. 이 중 김헌준 교수는 러시아가 전 세계에 던진 ‘충격’에 집중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이전까지 한 국가가 다른 나라를 침공해 주권을 훼손한 경우는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가 오랫동안 쌓아 올린 국제정치 질서와 규범이 러시아의 침공을 통해 송두리째 무너졌다”고 전한 김 교수는 “유라시아 지역에 한정된 러시아의 일탈적 행위가 아닌 인류 전체에 대한 도전이라는 측면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냉전 체제를 떠올리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의 7개 주요 은행을 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 결제망에서 배제하고, 러시아 중앙은행 외화보유액 인출을 제한하는 등 적극적인 금융·경제 제재로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이란, 북한 등 친러시아 국가들은 제재 동참을 거부했다. 이에 김헌준 교수는 국가 중심적인 안보대립을 우려하면서도 “전 세계 국가들이 공산주의, 자유주의, 비동맹주의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세 개의 진영으로 나뉘어 대립하는 ‘신냉전 체제’ 도래의 가능성은 낮다”고 진단했다. 21세기 들어 국제정치관계에서 국가가 아닌 기업, 비정부기구, 국제조직 등 비국가행위자의 비중이 늘었으며, 각국 민간기업 역시 자발적으로 러시아 경제 제재에 합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크림병합 때 비해 국제 제재 강력해

  2014년 러시아의 크림병합 당시와의 차이를 묻는 말에 김헌준 교수는 “2014년 당시와 비교했을 때 금융·경제·정치 전범위에 걸쳐 매우 강력한 제재가 이어지고 있다”고 답했다. 미국이 러시아를 배제한 SWIFT는 전 세계 은행들이 사용하고 있는 국제결제시스템으로, SWIFT 퇴출로  러시아는 국내에서 루블화를 달러나 타국 통화로 교환하지 못한다. 러시아의 ‘돈줄’을 막아 일반 국민까지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초강력 제재인 셈이다.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천연가스관 ‘노드스트림2’의 폐쇄 역시 러시아 정부에 치명적인 경제적 손실을 야기한다. 에너지대란을 겪고 있는 유럽 국가에도 러시아는 주요한 에너지수출국이지만, 러시아 제재를 위해 유가 상승 등 경제적 손실을 감수한 결정이다. 대러시아 물류서비스 중단과 영공비행 금지 조치 역시 2014년 크림병합 때에 찾아볼 수 없던 조치다. 김 교수는 “제재 수위 강화와 함께 한국, 일본, 뉴질랜드, 중립국인 스위스 등 이전 제재에 동참하지 않았던 국가들도 연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제재 역시 가장 강력하거나, 완벽한 제재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며 “상황에 따라 2차 제재(secondary boycott)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전했다. 2차 제재는 제재 대상 국가와 거래하는 제3국의 기업, 은행, 정부, 개인 등에 대해서도 제재를 가하는 방안을 말 한다. 중국과 인도, 아랍에미리트 등이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중국 정부의 대응 역시 초미의 관심사다. 김헌준 교수는 “중국은 현재 우크라이나의 주권 존중과 러시아의 정당한 안보이해를 동시에 이야기하는 모순을 보인다”며 “중국이 서방의 제재를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러시아와 협력 관계를 이어가는 ‘친러중립’의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대만 침공의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 중국은 러시아의 명백한 국제법 위반과 주권 침해 행위에 있어 서방 국가들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반응을 민감하게 수집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과거 전쟁과 분명히 다른, 21세기 미디어의 변화가 야기한 새로운 보도 양상을 보인다. 수천 대의 휴대폰 카메라가 거대한 매체가 돼 소셜미디어엔 우크라이나 현지상황이 매일 새롭게 업로드된다. 김헌준 교수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간접적 경험이 단순한 공감과 이해를 넘어, 실질적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전했다. 반전운동의 핵심은 공동행동이다. 김 교수는 “정부나 유엔 안보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기보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당장 다음 학기 등록금도 걱정”

  간담회 2부는 Bondar Daria(정경대 정외·우크라이나) 씨와 Pecherska Kateryna(보과대 바이오의공학·우크라이나) 씨와 함께 진행됐다. 우크라이나 동남부 항구도시 ‘마리우 폴’에서 태어난 Daria 씨는 “러시아의 집중 폭격으로 인해 마리우 폴에서만 수천 명의 사상자가 나왔으며, 부모님은 모든 것을 버리고 안전지역으로 거취를 옮겼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현지에 남아있는 가족, 지인들과의 연락도 용이하지 않은 상황이다. Daria 씨는 “연락이 완전히 끊긴 지인들이 상당수”라며 “현재로선 그들이 살아있기를 바랄 뿐”이라고 덧붙였다. Kateryna 씨가 자란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 역시 계속된 포격으로 폐허가 됐다. Kateryna 씨는 “러시아 침공에 대항해 아버지와 오빠가 우크라이나 군입대를 결정한 이후, 현재 생사 확인도 어렵다”며 “아직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현실이라고 믿기지 않는다”는 심경을 토로했다. 

 

왼쪽부터 Pecherska Kateryna(보과대 바이오의공·우크라이나), Bondar Daria(정경대 정외·우크라이나), 이상형 정경대 학생회 사회인권국장. Kateryna 씨는 줌(Zoom)을 통해 비대면으로 참석했다.
왼쪽부터 Pecherska Kateryna(보과대 바이오의공·우크라이나), Bondar Daria(정경대 정외·우크라이나), 이상형 정경대 학생회 사회인권국장. Kateryna 씨는 줌(Zoom)을 통해 비대면으로 참석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의 무력충돌에 따른 참상은 캠퍼스에서 함께 살아가는 우크라이나인 학생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Daria 씨와 Kateryna 씨는 “우크라이나에 남은 부모님은 생업을 잃고 피난길에 올랐다”며 “경제적 지원 없이 다음 학기 등록금을 어떻게 감당할지 걱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어 이들은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의 지원을 기대했지만 현재로선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다음 학기 등록금을 내지 못하면 비자 문제로 이들의 거취도 불분명해진다. 

  이에 우크라이나 평화를 위한 고려대 공동대책위원회에서 ‘우크라이나 평화 지지 및 우크라이나 국적 학우 지원을 위한 연대 서명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서명운동의 요구안에는 △잔여학기 등록금 명목 장학금 지급 △생활비 장학금 지급 △기숙사 지원 등 향후 지속적이고 포괄적인 지원을 보장하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사회를 맡은 박인서(정경대 정외21) 씨는 “오늘의 간담회는 끝이 아닌 연대의 시작”이라며 “앞으로도 우리 곁 우크라이나 학생들에 대한 공감과 이들이 처한 위협적인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연대의 장을 마련하겠다”고 전했다.

 

글 | 장예림 시사부장 yellme@

사진 | 문원준 기자 mondlic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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