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와 쓰기, 그 자체가 삶

새로운 형태의 교육 꿈꿔

노동으로 기르는 생각의 자립

 

  충주 터미널에서 하루 4번 있는 덕산행 버스를 타고 산길을 올라가면 비인가 대안학교의 선두인 제천간디학교가 등장한다. 그 안에서 이상적인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제천간디학교의 교장 이병곤(교육학과 85학번) 교우가 주인공이다. 대안학교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부터 지식 교육을 강요하지 않는 학교, 학생들이 수업 선택 권한을 갖는 학교, 시험이나 숙제가 없는 학교를 꿈꿔온 이병곤 교장을 만났다.

 

이병곤 교장은 “교육은 삶과 성장을 매개하는 마중물”이라고 전했다.

 

  “교육 없이는 성장도 없다”

  이병곤 교장의 인생을 관통하는 한 단어는 ‘교육’이다. 본교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런던대학교 교육연구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그에게 교육은 삶과 성장을 매개하는 마중물이다. “삶이 지하에 고여 있는 깊은 물이고 성장이 세숫대야라면, 교육은 깊은 물을 끌어올려 세숫대야에 가져다 놓아요. 성장 없는 삶은 지하수로 고여 있는 삶과 다르지 않죠.” 그는 교육이 자기만의 삶을 살아갈 힘을 준다고 강조했다.

  어렸을 때부터 교육에 관심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전두환 정부 아래서 고등학생 시절을 보냈다. 7.30 교육 조치로 사교육이 완전히 봉쇄돼, 하교 후 집에 도착하면 3시 반이었다. 할 일이 없어 아버지 책장에 있던 어려운 책들을 마구 꺼내 읽었다. 그때부터 ‘읽고 쓰는 행위’는 둘도 없는 스승이 됐다. “텍스트를 이해해서 내 것으로 만들고 내 생각을 반영해 다시 쓰는 행위는 지성인이라면 누구든지 해야 해요. 소통도 비슷한 과정을 거치거든요.”

  학생 시절 <고대신문>에서, 졸업 후 교육월간지 <우리교육>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읽고 쓰는 행위를 체화한 경험은 삶의 바탕이 됐다. “기사 아이템을 찾다 보니 제가 아는 게 전혀 없더라고요. 그래서 중앙도서관 잡지실에서 기사를 복사해 등교하는 전철, 버스 안에서 하나씩 꺼내 읽었어요. 이런 행동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죠.” 막대한 글을 읽어 폭넓은 지식을 접한 그는 내향적 성격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소통의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읽고 쓰는 행위는 국어나 문화 교육이 아니라 존재의 교육이에요. 교육으로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거죠. 한 나라를 파괴하려면 폭탄을 떨어뜨리는 게 아니라 다음 세대가 글을 못 읽게 하고 역사를 가르치지 않으면 된다는 말도 있잖아요.”

  입시교육은 흡입력이 강해 ‘다른 형태의 교육’에 대한 상상력을 좁힌다. 미래 교육을 수없이 얘기하지만, ‘어떻게’라는 질문 앞에서는 논의가 축소된다. “K-컬쳐, K-무비, K-방역은 다 뜨는데 정작 K-교육은 없잖아요. 교과 지식 중심의 경쟁 입시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교육 개혁은 의미가 없어요.”

  그는 교육 개혁을 위해서는 공교육과 대안교육이 손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대안 혁신학교 파트너십을 맺어 대안학교는 운영비를 지원받고, 일반 공교육 학교는 대안학교의 실험 보고서를 받아 역량을 전수하는 방식이다. “경쟁 입시교육의 최대 수혜자인 국가가 혜택을 골고루 베풀어야죠. 진정한 공교육 변화를 원한다면 국가가 얻으려는 것만 교육하지 말고, 배우는 이의 행복을 우선순위에 둬서 학습 자율성을 늘려야 해요.”

 

  운명적인 교장 생활의 시작

  경기도교육연구원에서 전문연구원으로 활동하던 2016년, 그는 제천간디학교 컨설팅위원회에서 교육과정 컨설팅을 요청받았다. 비인가 대안학교의 맏형 격인 제천간디학교이지만 당시 운영 상황이 위태로웠다. “간디학교 교육과정을 컨설팅하는 모습이 좋게 보였는지 교장 제의를 받았어요.” 비인가 대안학교 현장을 지켜야 한다고는 생각했지만, 선뜻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반으로 줄어든 월급, 가족들과의 이별, 지금까지 쌓아온 연구 활동의 중단을 모두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거절 의사를 밝혔지만, 그날부터 일주일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교육을 바꾸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고 전국 각지의 학교를 돌아다니면서 현장의 중요성을 알았어요. 지금 나서지 않을 거라면 대체 왜 교육 연구를 하느냐는 내면의 목소리가 계속 들렸어요. 60세가 되기 전에 교육이 무엇인지 현장에서 직접 겪어보자고 다짐했죠.”

  치열한 고민 끝에 교장이 됐지만, 걱정은 끊이지 않았다. 아이들이 공부를 안 한다며 우려하는 학부모들에게 ‘때가 되면 공부할 것’이라고 설득하면서도 일반 학교와의 지식 교육 격차를 뛰어넘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99명이 잘 커도 1명이 학교 때문에 잘 못 크면 안 되니까요. 그래도 졸업생들을 보면 삶을 주체적으로 계획하고 스스로 만족하면서 살아가더라고요. 공익적인 활동도 많이 하고요.”

  그는 인생을 뒤바꾼 이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인생에서 가장 꽃다운 6년을 현장에서 지켜볼 수 있는 행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어요.” 교장실은 언제든지 학생들이 찾아올 수 있는 1층 급식실 옆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의 학생들은 거리낌 없이 교장실 문을 열어젖힌다. 문 앞에는 ‘곤블리’, ‘곤블도어’ 같은 별명이 포스트잇으로 장난스레 붙어있다. “아무래도 편하게 접근하기는 어려우니까,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주거나 가르치려고 하는 대신 질문에 잘 대답하고 필요로 하는 부분을 해결해주려고 해요.”

 

학생들이 교장실 문에 질문이나 노래를 적어 붙이면 이병곤 교장은 하나하나 코멘트를 달아 붙여놓는다.

 

  자발성과 자립을 중심으로

  “아이들은 공부를 싫어하는 게 아니에요. 해낼 만큼의 능력을 갖춘 상태에서 필요한 공부를 해냈다는 성취감이 들면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듭니다.” 그는 자립과 자발성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을 강조했다. 국가의 지원을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비인가 학교를 고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률적인 국영수 교육 대신 전인적이고 자연 친화적인 교육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다.

  열린 수요일과 논문쓰기 활동에서는 자발적인 교육이 잘 드러난다. 열린 수요일에 학생들은 정규 수업 대신 원하는 활동에 참여한다. 직접 꾸민 컨테이너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축제에서 연주할 곡을 연습한다. 자유로운 시간이 중요하다는 교육관 때문이다. 카페, 급식실, 도서관도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한다.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은 A4 용지 기준 35장에서 40장의 논문을 써서 제출한다. 교과 시험이 없는 대신 학생들이 글쓰기 능력이나 사고 능력을 확인받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논문 주제는 현실적인 사회문제부터 관심 분야의 문제까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선정한다. ‘음악 활동에 있어서 대학 진학의 필요성 연구’, ‘블루스 장르 연구를 통한 블루스 작곡’ 등 다양하다. “학생들은 자퇴하겠다는 말을 장난스레 입에 달고 살 정도로 고민하지만, 이후 가장 좋았던 수업을 물어보면 절반 이상이 논문쓰기를 꼽아요.”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할 줄 알면 자신감이 생겨요. 몸에 배면 생각의 자립이 이뤄지죠. 몸을 움직이는 노작 교육은 생활의 자립과 생각의 자립을 이어줘요.” 제천간디학교의 필수 교과 과정에는 의식주, 농사, 목공 등 몸으로 체험하는 활동이 포함돼있다. 노동은 반복적이고 지루하다. 그는 세대를 거칠수록 이를 견디는 힘이 약해지고 있다고 평했다. 노동하는 인간은 인간의 고통이나 아픔에 동감할 줄 안다. 이병곤 교장은 10대 때 70평의 텃밭을 일구며 노동을 배웠다. “땅에서 풀을 뽑는 느낌, 쭈그려 앉아있는 동안 작물이 얼굴을 스쳐 따가운 감각, 땀을 닦지 못해 짭조름한 맛이 나는 상황을 견뎌보지 못했다면 책 <태백산맥>에 나오는 지주와 소작인의 관계, 소작인들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했을 거예요.”

  제천간디학교 학생들은 급식을 먹은 후 자신의 식판과 수저를 설거지한다. 생태 화장실의 용변을 퇴비로 만드는 과정도 매일 해야 하기에 한 학기에 한 번씩 용변통을 치운다. “공교육은 노동을 공부의 방해물로 취급해요. 설거지할 시간에 공부나 하라고 하죠. 하지만 노동은 지식과 인격을 매개하는 중요한 요소예요. 생각이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을 길러주고 싶어요.”

 

이병곤 교장이 학생들이 탄 그네를 밀어주고 있다.

 

  “삶이 다 할 때까지 교육 관련 일에 종사하고 싶어요.” 마을 전체가 하나의 학습 마당이 되는 ‘러닝 파크’ 개념을 실현하는 것이 이병곤 교장의 목표다. 간디학교는 학교 안의 작업장을 마을로 옮기는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은 마을의 전문가에게 가르침을 받고 마을 사람들은 작업장에서 다양한 기회를 얻으며 상생한다. “교육은 인간을 상실하면 안 돼요. 인간의 천성은 하늘이 내리고 천성을 발현시키는 것은 교육이라는 말이 있죠. 교육자는 참된 인간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현실 안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지켜봐야 해요.” 이병곤 교장은 오늘도 참된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글 | 임예영 기자 yeye@

사진 | 김예락 기자 emancip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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