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의 마음, 재학생에 전해야”

교우회관, 가고 싶은 공간 돼야

네트워킹으로 교우회 시너지 만들 것

 

승명호 교우회장은 “각 교우회가 독자적 정체성을 살려 성장할 수 있는 네트워킹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대학교 교우회는 115년의 역사 속에서 35만 교우들을 고려대학교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뭉쳤다. 코로나19로 인한 3년간의 거리두기는 교우회에게도 잠시 어쩔 수 없는 멈춤을 요구했다. 멈춤의 끝이 보일 무렵, 34대 고려대학교 교우회장으로 승명호(무역학과 74학번) 동화그룹·한국일보 회장이 취임했다.

  승명호 신임 교우회장은 취임 소감으로 어떻게 보면 제대로 일할 수 있어서 운이 좋다고 말할 수도 있다. 취임했을 때 주변에서도 어영부영할거면 애초에 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기왕 맡을 거면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전했다.

 

  - 이 시기에 교우회가 나아갈 방향이 특별해 보인다

  “1과제는 교우회 본부와 여러 교우회 조직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이다. 본교에는 교우회 조직들이 많다. 학번 교우회, 단과대학 교우회, 국내 지역 교우회, 해외 지역 교우회 등 다양하고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끈끈한 결속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정작 교우회 본부와는 거리가 있다. 각각의 교우회끼리는 교류가 활발하지만, 교우회와 교우회간에는 그만큼의 교류는 없어 보인다. 영화 <어바웃 어 보이>에는 우린 각자 하나의 섬이다, 서로 체인으로 연결되어 있는 섬이라는 인상적인 말이 나온다. 각 교우단체의 독자적인 정체성과 자율성은 잘 살리되, 서로 소통하며 도울 때 비로소 더 큰 성장을 이룰 수 있다. 교우회는 이러한 시너지의 네트워킹을 제공하는 일에 주력하려 한다.”

 

  - 교우회와 재학생이 끈끈해지기 위해선

  “이미 많은 교우가 후배들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본교 물리학과를 졸업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SK 미래관 준공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기부도 마찬가지다. 교우회는 매년 20억 원정도의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은 지난해 백신 혁신센터 설립을 위해 100억 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애교심이 남다르다 보니 다른 대학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재학생들의 마음에는 쉽게 닿지 않는 것 같다. 교우들이 단발적으로는 지원을 아끼지 않지만, 재학생들이 연속적으로 교우들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중심축이 희미한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고연전 때 응원 비용이 모자란다며 개인 메일로 도움을 요청하는 메일을 받은 적이 있다. 얼마나 도움을 청할 선배가 마땅치 않았으면 많고 많은 선배 중에 얼굴도 보지 못한 나에게 개인적으로 메일을 보냈을까 안타깝기도 했다. 물론 개인적으로 도와주고 싶긴 하지만, 도움을 주는 과정이 연속적이지 않아 아쉽다. 재학생들이 선배들에게 마음 놓고 바로바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공식적인 길이 있다면 교우들도 후배들에게 제대로 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학생회와 교우회를 연결하는 창구를 마련하는 등 조직화해볼 계획이다.”

 

  - 교우회관 공간 활용에 관심이 많다고 했는데

  “교우회관을 교우들이 찾고 싶어 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교우들이 자주 만나기 위해선 사무실, 회의실, 강의실 등이 잘 마련돼야 한다. 지금은 단과대학 교우회들이 교우회관에 모여있지 않고 각 단과대학 건물에 흩어져 있다. 교우회관 내부 공간을 확보해 각각의 교우회 모두가 사용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단순히 건물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가고 싶은 공간으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교우회관은 1996년도에 세워진 건물이다. 그러다 보니 노후화돼 불편한 점이 많다. 교우들의 반응을 보며 점진적으로 리모델링할 예정이다. 인테리어 설계와 공사 진행을 교우들에게 맡겨 의미 있는 건물로 재탄생시키고자 한다. 궁극적인 목표는 교우회관 건물을 다 활용하는 것이다. 자주 써도 부담이 없는 편안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1996년 본교로 신축, 이전해 온 교우회관의 전경.

 

  - 본교 74학번으로 재학하던 시절엔 어떤 학생이었나

  “대학교 2학년 때 아버지께서 회사 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으며 병환을 얻으셨다. 병원에서 아버지 수발을 드느라 학교를 거의 못 다녔고 다른 친구들 같은 학교생활은 못했다. 결국, 아버지가 건강상 문제로 은퇴를 하시게 돼 35세부터 일찍 사업을 시작했다어린 나이에 그런 일을 겪고 나니 40세가 넘어서까지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내내 조심스러웠다. 끊임없이 사업을 벌이다 보니 50세가 돼서야 위기감을 극복했다. 유쾌한 기억은 아니었지만 힘들었던 학창 시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 선배로서 재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글로벌한 견문을 가지라고 조언하고 싶다. 세상은 많이 알수록 유리하다.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조언해왔다. 틈날 때마다 배낭여행, 클래식 음악 감상 등을 권유하며 사회에 나가면 못할 것들을 하라고 했다. 아들을 와인 학교에 보내기도 했는데, 해외에서 사람들과 교류하려면 와인에 대한 지식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젊을 때 글로벌한 마인드를 기르는 게 중요하다. 대한민국 인구는 5000만 명밖에 안 된다. 해외를 상대로 일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한국일보는 해외에 특파원을 보내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글로벌한 마인드가 있어야 균형적인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두드려라, 그럼 열릴 것이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모든 일은 불확실하지만, 포기하지 말고 계속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

 
글 | 이정우·임예영 기자 press@
사진 | 김예락·이승연 기자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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