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이 학교의 규칙을 하나부터 열까지 만들고 학교행사도 직접 기획한다. 수업 중 문제를 풀 때도 혼자 끙끙 앓기보다 다 같이 둘러 모여 어떻게 풀어야 할지 나눠본다. 쉽게 찾아보기 힘든 장면이 매일 펼쳐지는 이곳은 여주 산골에 있는 ‘늘푸른자연학교’다.

  아이들에게 공동체성과 자주성을 강조하는 이 학교의 교장은 김태양(생물학과 93학번) 교우다. 일방적인 가르침보다 서로 소통하는, 평생 배우는 교육을 아이들에게 나누는 김태양 교장은 본교에 입학한 지 28년 만에 졸업한 특별한 이력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김태양 교장은 “가르침(teaching)의 교육에서 벗어나 평생교육을 할 수 있게 배움(learning)에 초점을 맞춰야한다”고 말했다.

 

 

교장선생님의 학창시절

  초등학교 4학년, 담임선생님께서 사준 <파브르 곤충기>는 김태양 교장이 생물학자의 꿈을 꾸게 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의사, 판사, 연예인을 꿈꿀 때 저는 혼자 생물학자를 장래 희망으로 적어냈어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그 꿈은 바뀌지 않았죠.” 그는 생물학자의 꿈을 갖고 공부를 정진하던 중 본인이 어떻게 꿈을 갖게 됐는지를 떠올리며 ‘나도 아이들에게 꿈을 꾸게 해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라는 생각을 가졌다. 그렇게 김태양 교장은 생물학자와 생물 교사의 꿈을 함께 꾸었다.

  김태양 교장이 본교에 입학한 해, 과 대표를 맡으며 매달 캠페인을 진행했다. 다른 대학의 학생들과 서로의 학보를 주고받던 ‘학보통’을 동기들과의 소통 창구로 바꿔 활용하기도 했다. 애기능에서 군대 가는 동기들을 위로하며 밤새 막걸리를 마신 적도 있었다. “학교생활을 정말 열심히 했고 동기들이 모두 좋아했어요. 제가 살았던 자취방도 ‘태양장’이라고 불리면서 그 방에서 안 자본 동기들이 거의 없을 정도로 제 방이 인기가 많았어요. 그 당시의 낭만과 끈끈함이 있었던 것 같아요.” 2학년 때는 기획총무부장으로 활동하며 과MT, 생물인의 밤 등 학과 내 모든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했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1기 출범식이 고려대에서 열렸어요. 그때 출범식 과정에서 모금행사 아이디어를 내고, 직접 했던 퍼포먼스도 즐거웠던 기억이 나네요.”

  김태양 교장은 학교를 다니며 틀에 박힌 레포트보다 직접 현장에 나가서 느끼고 관찰하고 싶었다. “생물 중에서도 곤충에 워낙 관심이 많았던 터라 교내 한국곤충연구소에 찾아갔어요. 그때 대학원 형들과 윤일병 교수님하고 자주 만났고 제 흥미를 말씀드렸더니 연구소에 자리를 마련해주셨어요. 하고 싶던 현장 경험을 자주 하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죠.”

 

맹학교에서 알게 된 교육의 힘

  김태양 교장은 생물학자의 꿈을 꾸면서도 교사의 꿈을 놓지 않았다. “생물학과에 진학해서 교육학 관련 수업들도 함께 수강했어요. 생물학도 재밌었지만, 누군가를 가르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김 교장은 대외활동으로 눈을 돌려 ‘참우리’라는 대학생연합 시각장애인 교육봉사동아리에 참가했다.

  처음 해보는 교육봉사는 당연히 어려움이 많았다. 당시 사회는 시각장애인에 대한 공교육이 부족했다. 서울맹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했었을 때 공교육 수업시수가 한 주에 국어, 영어, 수학이 각각 1시간씩이었다. “학교가 아이들에게 교육보다 다른 것에 치중해 있던 것이 아쉬웠어요. 그때 수학과 세무를 가르쳤는데 공교육에서 배우지 못해 부족한 부분이 많다 보니 처음부터 차근차근 알려주는 게 어려웠죠. 특히 수학을 가르칠 때 아이들에게 공간감 설명이 쉽지 않았어요.” 가르침의 어려움은 그가 아이들을 위한 더욱 깊이 있는 공부를 하게 했다. 이후 전담했던 2명의 학생을 꿈꾸던 대학에 진학시켰다. “한 친구는 서강대 전자공학부, 한 친구는 대구대 특수교육과를 갔어요. 이때 교육이라는 것이 누군가에게 느낌표를 줄 힘을 가졌다고 느꼈어요.”

  그는 이 계기를 통해 교육 관련 일을 해야겠다는 꿈을 꾸게 됐다. “20년 전 서울맹학교에서 가르쳤던 학생이 그 학교 교사가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를 기억해요. 한 사람의 인생에 미치는 교육의 힘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죠. 이런 경험들이 제가 교육자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확신을 서게 해줬어요.”

  김태양 교장은 교육자로서 새로운 시작을 위해 안산 상록수 부근 공단의 아이들에게 교육봉사를 시작했다. 아이들의 성적과 학교생활 태도는 점점 좋아졌다. 하지만 아이들이 야학이 끝난 후 집에서 부모의 폭력이나 알코올 중독, 또래 아이들의 핍박으로 인해 원래 상태로 돌아오곤 했다.

  “야학이나 지역아동센터는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내야 해서 아이들이 위험한 환경 속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어요. 그러다가 찾아낸 것이 일본의 ‘산촌유학’ 교육 플랫폼이에요.” 그는 ‘산촌유학’을 토대로 ‘늘푸른자연학교’라는 비영리민간단체를 설립했다. ‘산촌유학’은 도시와 농촌의 현실을 감안하여 서로 상생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다. 여주시 농촌유학 지원 조례를 통해 1996년 폐교된 여주시 점동면 당현분교에 터를 잡고, 농촌유학센터이자 방과후학교인 ‘늘푸른자연학교’를 2014년 시작했다.

 

지역과 함께하는 늘푸른자연학교

  늘푸른자연학교는 특별한 교육철학을 갖고 있다. ‘다중지능이론’과 ‘민주교육’이다. ‘다중지능이론’이란 인간의 지능은 독립적이며 서로 다른 6~8가지 유형으로 다뤄볼 수 있는 여러 능력으로 구성된다는 이론이다. “일본의 ‘산촌유학’ 시스템을 배경 삼긴 했지만, 자주적으로 아이들이 행동할 수 있도록 영국의 ‘서머힐 스쿨(summerhill school)’의 시스템을 융합시켰어요.”

  ‘산촌유학’을 배경 삼고 ‘서머힐 스쿨’의 시스템을 도입한 늘푸른자연학교는 ‘농촌유학’과 ‘마을교육 공동체’의 형태로 운영한다. 공교육은 해당 지역의 초등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나머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방과후 활동이다. 아이들은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삶을 통해, 스스로 삶을 주도해나가며 지적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아이들은 직접 현장에 나가서 몸으로 경험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곳과는 다르게 직접 경험하고 아이들만의 장점을 키워 평생교육으로 도달하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고심한 김태양 교장은 지역 연계 프로그램 40여 개와 10개 이상의 동아리 활동을 운영하고 있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늘자이즘(늘푸른자연+ism)’은 현장과 교육을 더한 수업이다. “아이들은 ‘놀자이즘’이라고 부를 정도로 재밌어해요. 사실 이 수업은 교육철학 수업이에요.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활동할 수 있게 하는 가장 중요한 수업이죠.”

 

“아이들에게 더 좋은 교육 하고파”

  개인적인 일로 때에 맞춰 본교를 졸업하지 못했던 김태양 교장은 이번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바이러스와 백신에 대한 정보를 뉴스로 접하며 재입학을 고민했다. 학부 시절 정진했던 생물학을 다시 공부하고 싶어진 것이다. “그동안 진보한 학문을 더 깊이 공부해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마음이 컸어요. 새로 들어오시는 선생님들도 각 분야에서 이미 최신 교육을 받고 오신 상태인데 제가 몰라서 소통이 안 된다면 어떻게 할지 고민도 있었고요. 비대면 수업이라는 환경이 좀 더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김 교장은 재입학 후 듣고 싶은 강의를 들으며 높아진 수업 수준을 실감하며 놀라워했다. 대면 강의로 바뀐 후 캠퍼스를 누비며 과거를 회상했고, 예전과 다른 학교 분위기에 아쉬움도 느꼈다. “과거에 있던 것들이 없어지기도 하고 새로운 건물들이 생긴 것을 보니 마음이 새로웠어요. 제가 들었던 강의 하나하나가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지식 전달이 아닌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혜안을 뜨게 해준 것 같아요. 그렇지만 코로나19라는 특수성 때문에 후배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고대만의 정’이 없어진 것 같아서 아쉬웠지요.”

 

  “아이들을 위한 교육 방법을 항상 고민하고 있어요.” 늘푸른자연학교는 학생들이 국영수 위주의 교육을 떠나 경험과 현장을 기반으로 한 자주적인 교육, 공동체 교육, 지역특성연계교육을 추구한다. 또한 가르침(teaching)의 교육을 떠나 배움(learning)의 교육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교육을 통해 사람들이 변화하는 과정을 보면 너무나도 교육이 중요한 것을 알 수 있어요. 이 교육의 정체성에 대해서 많이 고민할 것이고 누군가의 인생에 느낌표를 줄 수 있는 교육자가 될 것입니다.”

 

오찬영 기자 lunch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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