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감 가지고 출판 경영

자유로운 사상의 저수지 이룩

“흔들리지 않는 젊음 되길”

 

  문화와 사상의 저수지로서 이상적인 출판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가 있다. 조상호(법학과 70학번) 나남출판사·나남수목원 회장이다. 책을 내는 일과 나무를 기르는 일. 그는 모순돼 보이는 두 가지 사이에서 생명의 존엄과 가치라는 공통점을 찾아냈다. 타오르는 끝 여름, 파주의 나남출판사를 찾아 조상호 회장을 만났다.

 

조상호 회장은 “내가 아는 것, 읽을 수 있는 것만을 출간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신념 있는 출판사의 성장

  1970년 본교에 입학한 조상호 회장은 대학 생활을 평범하게 이어가지 못했다. “학생운동과 지하 신문 <한맥> 활동을 하다가 제적을 당하기도 했어요. 당시에는 많이 방황했습니다.” 그는 사회에 대한 실망 속에서도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을 갈고닦는 일을 계속했다. 여러 활동을 하며 고등학생 때부터 가졌던 언론인을 꿈꾸기도 했지만, 당시 정권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 언론인에 대한 열망에 그는 꿈과 생존의 타협점으로 ‘책장수’를 선택했다.

  시작은 사회과학 서적이었다. 협소한 시장이었지만, ‘쉽게 팔리지 않고 오래 팔립니다’라는 신념으로 뜻이 있는 분야에 발을 들였다. 특별한 사명감을 가졌던 언론 분야에서 더욱 전문성을 드러냈다. “나남출판사를 빼고는 신문방송학 커리큘럼을 논할 수 없죠. 교수들의 연구서와 전공 도서 등을 출간하고, 나남출판사의 책으로 공부한 이들이 다시 교수나 기자가 되며 굳어졌어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언론학에 대한 수요와 관심이 커졌고 출판사는 학문과 함께 몸집이 커졌다. 신념을 지키면서도 성장하는 출판사로 거듭났다. 나남출판사의 성장에는 문학도 한몫했다. “뜻밖의 인연으로 출판한 박경리의 <토지>와 <김약국의 딸들>이 베스트셀러가 됐어요. 출판사의 신념을 현실화하는 물적 토대가 됐죠.”

  ‘책장수’에서 인정받는 ‘출판인’의 입지를 갖게 되자 정계에서 여러 제안이 들어왔다. 그럴 때마다 그는 완곡히 거절했다. “나 말고도 정치할 사람은 많습니다. 품격 있는 출판사가 하나 정도는 있어야 좋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 힘들게 걸어온 올곧은 길을 지금 와서 저버릴 수는 없었다. 많은 판매 부수를 약속하며 정치인 홍보용 도서를 출간해달라는 달콤한 유혹에도 그는 같은 자세로 일관했다. “내가 아는 것, 읽을 수 있는 것만을 출간합니다. 내 가게의 것을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면 답답하죠. 스스로 떳떳한 선택을 하고 싶습니다.”

  조 회장은 그렇게 만들어진 나남출판사의 특색과 결을 ‘저수지’로 표현했다. 다양한 물줄기를 한데 모아 아우르면서도 가장 아래에서 지조를 지키겠다는 뜻이다. 출판인으로서 좌우 모두를 아우르는 ‘사상의 저수지’ 이룩이 조상호 회장의 목표다.

 

수목원에 심은 뜨거운 헌신

  꼿꼿한 정신과 노련한 경영에 사람들은 조상호 회장을 고고한 존재로 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경험한 현실은 달랐다. “문화와 경영처럼 상반된 것을 양립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형이상학적인 것만 기대하죠. 그 너머에는 현실적인 고충이 많습니다.” 책을 다품종 소량 생산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관리자가 필요하다. 종류가 다양하고 그 수가 적을수록 개별적인 책들의 위치 파악이 어렵기 때문이다. 감수 과정 또한 노력이 필요하다. 다른 출판사와 달리 회장이 직접 가장 먼저 원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다. “고고할 것 같은 출판사의 현실은 뜨거운 헌신에 있습니다.”

  나남출판사라는 지성의 저수지를 다지며 그의 50대도 지나갔다. 세상의 논리보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살아간 세월이었다. 지금 그는 세상과는 다른 길을 걷겠다는 다짐과 녹색 공간을 남기고자 하는 마음으로 나무를 심고 있다. “마음속 숲을 실현할 수 있는 아지트를 갖고 싶었어요. 개발에 뺏기지 않을 땅을 찾다 지금의 수목원 땅을 찾았죠.” 나남수목원은 원하지 않는 상황에 부닥칠 때마다 그에게 좋은 변명이 돼줬다. “묘목밭에 물 주러 가야 합니다.” 외부의 꾐에 귀가 솔깃해질 즈음 수목원에 와서 마음을 다잡은 지도 14년이 지났다.

 

마음속 저수지가 현실로

  나남출판사 사무실에서 차로 1시간을 달리면 포천의 나남수목원에 도착한다. 조상호 회장은 수목원에 들어서자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식물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들을 소개했다. 그는 ‘직접 스토리텔링’이 가미된 나남수목원의 특별함을 자랑했다. 애정 어린 조 회장의 설명은 반송밭에서 최고조에 이른다. “초록 우산처럼 동그랗게 반송을 예쁘게 깎아주고, 바람이 통하게 가지를 가꾸고, 풀을 베는 것이 내 할 일입니다.”

  “위기도 있었어요. 수목원에 산사태가 나서 직접 복구 작업을 했습니다. 석축을 쌓아 길을 뚫고, 산봉우리를 무너뜨려 그 흙으로 협곡을 메웠죠.” 많은 재원이 투자된 거대한 공사는 임업 전공자라면 상상도 못 할 방식이었다. 조 회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가끔은 역사의 아마추어가 큰일을 이루기도 하는 법”이라며 “그저 이겨내야 하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조상호 회장이 나남수목원에서 반송가지를 다듬고 있다.

 

  수목원의 한쪽에는 특이하게도 책 박물관이 있다. 나남출판사에서 발행한 모든 도서가 전시된 곳으로 조 회장과 함께한 지식인들의 서재가 갖춰져 있었다. 조 회장이 보물로 여기는 물건들도 이곳에 있다. 박물관의 백제금동대향로 실물모형, 황지우 작가의 조각상 등은 그의 삶의 궤적과 인연을 보여준다. “지나온 삶의 흔적을 남겨두고 싶었어요. 이 향로는 제 수호천사와도 같습니다.”

  그는 나남수목원이 시민 주도의 기념 공원, 추도 공원이 되기를 꿈꾼다. 문화예술계의 거장들이 이곳에서 영면의 안식을 취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현재는 그의 부모와 故 김병기 화가를 모시고 있다. “수목원의 나무들이 위인들의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는 삶의 증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죠.”

 

  조상호 회장은 젊은 청년들을 위한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본인 세대는 외부적 충격에 삶이 달라지는 처지였지만 현재 젊은이들은 충격 없이도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젊은이에게 ‘외부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결심할 수 있는 젊음’을 바랐다.

  “나는 지성의 저수지 수호자, 나남이라는 자유의 간이역장이 되고 싶습니다. 대단한 걸 하는 게 아닙니다. 그저 내가 관여하는 범위 내의 정의를 실현하면서 범위를 점점 늘려갈 뿐입니다. 여러분도 범위의 확대를 통해 하루하루 성장하길 바랍니다.”

 

글 | 심수연 기자 sue@

사진 | 양수현 기자 posi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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