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서울퀴어문화축제(퀴어축제)가 지난달 16일 서울광장에서 3년 만에 열렸다. 참가자들은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며 빗속에서도 축제를 즐겼다. 광장 건너편에서는 동성애 퀴어반대국민대회(국민대회)가 진행됐다.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튼 노래와 반대 집회에서 튼 찬송가가 공중에서 치열하게 맞섰으나 물리적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살자, 함께하자, 나아가자’

  무지개 천으로 뒤덮인 서울광장 분수대 쪽 입구, 걸개에는 올해 퀴어축제의 슬로건인 ‘살자, 함께하자, 나아가자’가 쓰여 있었다. 푸른 잔디밭 광장에는 80여 개의 부스가 이어졌다.

  축제에는 퀴어 당사자뿐만 아니라 이들과 연대하는 사람들도 참여했다. 평범하게 흰 티에 청바지를 입은 사람과 무지개 깃발을 망토처럼 두른 사람, 무지개 목줄을 찬 강아지와 아이의 손을 잡은 외국인 부부까지 다양한 이들이 북적북적한 분위기 속에서 부스를 오갔다. 대안학교 청소년 퀴어 동아리 ‘무아’와 ‘무운’은 직접 만든 퀴어 그림책과 무지개 타투 스티커를 내놓았다. 대안학교 부스 운영자는 “사회에서 비가시화되는 청소년 퀴어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부스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종교계 부스도 인기를 끌었다. 수녀복을 입은 수도자와 회색 법복을 입은 스님, 십자가 티셔츠를 입은 기독교인이 한곳에 모여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했다. 수도자들은 참가자 손목에 무지개 띠를 매어줬다. 스님들은 ‘차별 없는 세상’ 글귀가 적힌 연등 부채를 나눠줬다. 성 소수자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노동 상담, 학생을 대상으로 한 진로 및 공부 습관 상담 등 일상적인 체험 부스도 돋보였다.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종교계 부스를 운영하는 승려가 수녀에게 무지개 띠를 매어주고 있다.

 

  분수대 쪽 입구를 기준으로 광장 왼쪽에는 주한미국대사관과 주한영국대사관 등 대사관과 정부관광청 부스들이 줄을 이었다. 이번 축제는 필립 골드버그(Philip Goldberg) 주한 미국대사가 선택한 한국 첫 외부 행사로도 화제가 됐다. 본격적인 행진에 앞서 미국, 네덜란드, 뉴질랜드 등 12명의 대사가 무대에 올라 성 소수자 인권지지 연설을 했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는 “우리는 그 누구도 두고 갈 수 없다”며 “인권을 위해 계속해서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퀴어축제에서는 2016년 성 상품화와 선정성으로 논란이 됐던 부스 굿즈나 노출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참가자 A씨는 “폭력 행위를 하거나 나체로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다”며 “오랜만에 서울광장이라는 넓은 공 간에서 저의 정체성을 자유롭게 드러내고 즐길 수 있었다”고 전했다.

 

“퀴어는 존중하나 역차별은 경계”

  서울광장 건너편에서는 2022 동성애 퀴어축제반대국민대회가 열렸다. 경찰의 인도 아래 서울광장에서 덕수궁 쪽으로 횡단보도를 건너자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가 쓰인 부채가 손에 쥐어졌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마주 보며 서울퀴어문화축제 반대 패널을 들고 있었다. 그 사이를 지나자 한국가족보건협회, 크리스천 교육 단체인 에이랩아카데미 등 30여 개 단체가 참여한 부스가 일렬로 펼쳐졌다.

 

서울광장 건너편에서 동성애 퀴어축제반대국민대회가 진행됐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횡단보도 부근에는 학부모 단체 부스가 주를 이뤘다. 차세대바로세우기학부모연합은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포함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에 반대하는 서명을 받았다. 차세대바로세우기학부모연합 부스 참여자는 “인권조례라는 명목하에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며 “그들의 취향을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축제를 진행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점이 문제”라고 말했다.

  한국가족보건협회는 청소년 에이즈 예방 캠페인으로 에이즈 정보 관련 자료집을 배포했다. 유튜브로 국민대회를 접하고 참여한 박정도(남·29) 씨는 “내 동생이나 친구가 에이즈에 걸리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얘기하며 건강하길 바라는 게 의무라고 생각했다”며 “퀴어 자체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고 전했다.

  연설 무대가 설치된 곳에서는 종교 단체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한 마디’, ‘차별금지법 팩트체크’ 등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활동이 이어졌다. 국민대회 참가자는 부스 활동에 참여하거나 무대 앞에서 연설을 들었다. 연설자로 나선 유만석 수원명성교회 목사는 “우리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 가정에서 탄생하는 생명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알리고자 했다”며 “동성애 차별금지법은 동성애에 대한 비판과 부정적 입장을 차별로 간주해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역차별적인 법”이라고 주장했다. 목사가 연설하며 ‘아멘’을 외치면 부스 운영자들은 활동을 멈추고 양손을 들어 기도했다. 연설 무대 앞으로 가지 못한 사람들은 ‘차별금지법 반대’ 부채를 들고 바닥에 앉아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폭우에도 멈추지 않은 발걸음

  부슬비가 내리다 말다를 반복하는 날씨에도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퀴어축제 측의 행진이 예정된 오후 4시, 갑자기 커다란 빗방울이 멈추지 않고 쏟아졌다. 우산을 써도 막을 수 없었던 빗줄기에 참가자들의 옷이 속절없이 젖었다. 폭우로 행진이 약 20분가량 지연됐으나 사람들의 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족히 20명은 잡아야 하는 대형 무지개 걸개와 서울퀴어문화축제 모터바이크에 올라탄 ‘레인보우 라이더스’가 선두에 섰다. 청년 성 소수자 연합의 차량을 포함한 9개의 차량이 뒤를 이었다. 경찰들이 막아놨던 문을 열자 참가자들이 원하는 트럭 뒤에 섰다. 귀를 울리는 노래를 필두로 폭우 속 행진이 시작됐다. 신발 안까지 가득 차오르는 물에 이탈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트럭에서 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행진을 이어갔다. 트럭에 오른 사람들은 각자 준비한 노래를 틀고 춤을 추며 참여자들의 사기를 올렸다. 건물 2층에서 노트북에 무지개 화면을 켜서 환호를 보내는 사람도 있었고, 곳곳에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팻말을 든 사람도 있었다. 갑작스러운 폭우로 트럭들이 행진 앞쪽에 몰렸지만 후발단은 현수막을 함께 들고 구호를 외치며 빗속을 뚫고 지나갔다. 이들은 서울광장에서 시작해 을지로, 종로를 거쳐 다시 서울광장으로 돌아오는 코스로 약 4㎞를 행진했다.

 

글 | 나지은·임예영·배연수 기자 press@

사진 | 문원준 기자 mondlicht@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