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학의 첫 이름은 서울대학교였다. 해방직후 미군정이 교육행정을 시작할 때 교장이었던 현상윤 선생은 ‘서울대학교’라고 명명하고 설립허가까지 받았다. 수도의 이름을 딴 대학이 그 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명문으로 성장한 사례를 많이 보아온 때문일 것이다. 동경대, 북경대, 파리대, 모스코바대 등의 사례를 보면 그 이유를 능히 짐작할 만하다. 사흘 후에 학교 이름이 바꼈다.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고등교육의 총본산인 만큼 더 거창한 이름을 짓자고 제안이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다. 난상토론 끝에 고구려로 의견이 모아졌다. 한민족 역사상 가장 융성했던 고구려의 정신을 되살린다는 취지였다. 그런 다음 발음상의 문제를 감안해 고려로 확정했다.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로 같은 맥락이다. 더욱이 고려는 영어표기가 ‘Korea University’로 나온다는 점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국내적으로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민족을 대표해야한다는 사실에 중점을 두어 ‘서울대학교’를 과감하게 버리고 ‘고려대학교’로 바꿨다.  내년이면 개교 1백주년이 된다. 그런데 웬지 씁쓸하다.

우리는 그동안  ‘최초의 민족대학’임을 자부해왔다. 서울대학교라는 이름도 버릴 정도로 고대 역사에 자긍심을 가져왔다.  그러나 이미 많은 대학들이 1백주년 행사를 끝냈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하면서 혼란스럽다. 1백주년 기념관이 너무 낡았다고 보수한다는 학교도 있다. 그토록 뿌듯했던 오랜 역사 빛난 전통은 허구였단 말인가.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일부 대학들이 역사 부풀리기를 했기 때문이다. 연세대의 전신인 연희전문은 보성전문보다 18년이나 늦은 1923년에 처음 등장했다.

그 모체인 조선기독교대학도 1915년에야 설립됐다. 그러면서도 1985년을 기점으로 삼고 있다. 고종 황제의 어의였던 미국인 알렌이 설립한 광혜원까지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이화여대는 미국 선교사 스크랜턴의 이화학당을 시발로 보고 있다. 이화학당은 이화여고의 전신이다. 이화학당에 대학과정이 설치된 것은 1910년이다. 성균관대는 전혀 뿌리가 다른 조선왕조의 유생교육기구에 기대어 600년을 자랑한다. 숭실대도 사정은  비슷하다. 사실 구한말의 기록은 정확하지 않다. 관리가 잘 되지 않아 사라진 자료가 많다.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날조된 자료도 있다. 이런 연유로 대학 역사에 관한 시시비비를 가리기가 만만치 않다. 또 비교 방법이 각양각색이다  고등교육의 기준을 어디로 잡느냐에 따라서도 순위가 달라진다.  다른 학교의 역사 부풀리기에는 별 관심이 없다. 문제는 그로 인해 고대 1백년이 갖는 역사적 또는 시대적 의미가 훼손되거나 가려진다는 데에 있다. 내년에 안암동산에서는 대대적인 1백주년 행사가 열릴 것이다. 한국 최초의 민족사학이 한 세기를 넘어가는 역사적 행사임에도 일부 학교들이 역사 부풀리기 편법을 동원해  미리 1백주년 행사를 해 버렸기 때문에  그 의미가 퇴색할 지도 모른다.

'역사란 무엇인가'를 저술한 에드워드 핼릿 카는 과거의 역사가 현재를 그리고 현재가  미래를 좌우한다고 피력하고 있다. 많은 나라들이 조금이라도 더 유리하게 역사를 쓰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본이 한일 합방 이후 가장 먼저 한 작업은 우리의 역사를 폄하한 것이다. 사색당파를 강조하고 임나일본부설를 조작하는 등의 방법으로 조선은  식민지가 될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왜곡한 역사의 이름아래 정당화했다. 최근에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사를 자신의 역사로 편입한 사실도 장래 국가 이익을 겨냥한 정치적 포석이다. 이처럼 역사는 미래의 운명을 좌우한다.이제는 우리도 우리의 역사를 분명하게 정리할 때가 됐다.  그동안에는 우리에게 불이익이 생기더라도 상대의 역사왜곡에 참견하지 않았다. 고대 특유의 선비정신 탓이다.

더 이상은 안된다. 1백주년 시점에서 확실하게 정리해 두지 않으면 영원히 바로 잡지 못한다. 분명하게 선언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고려대학교는 최초의 민족 고등교육기관 라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1905년 2월22일자  황성신문 보도를 보면  “이 나라 최초의 고등교육기관인 보성전문이 탄생하니 기대하시라”라는 기록도 있다. 또 보성전문은 당시 가장 오래된 직업학교인 한성법률학교를 합병했다. 그 역사까지 포함하면 고려대학교는 이미 오래전에 1백년을 넘겼을 것이다. 구멍가게 같은 병원까지 학교로 인정한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외국인이 세운 것이지 우리의 것은 아니었다. 더욱 강조하고 싶은 것은 고려대학의 석탑은 돌 하나 하나에 온민족의 국권회복을 위한 열망이 서려있다는 대목이다.

또 교육을 통해 인재를 양성해  빼앗긴 주권을 되찾겠다는 민족의 분명한 목적에 따라 설립된 학교이다. 구한말 학교들은 대부분 전도와 가난구휼을 목적으로 외국선교사들이 설립했는데 이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고대 1백년은 민족사학의 역사이자 한 많고 사연 많은 우리 근대사 그 자체이다. 개교1백주년을 맞아 민족사의 1백년을 정리하고 앞으로 1천년을 대비하는 청사진을 세우자.

김대호· 미국 코리아 프레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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